동네 골목에 3층짜리 갤러리 카페가 들어섰다. 2층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가난한) 골목길 (살림을) 풍경을 통창 너머로 (적나라하게) 느긋하게 (내려다) 볼 수 있다. 옆집 지붕 기와와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며 고추 그리고 장독대 같은 추억의 풍경들.
위 문단 괄호 안의 단어는 골목길 감상을 방해한다. 잊었던 (혹은 처음 보는) 골목길 풍경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기거나 SNS에 올릴 사진을 찍는 갤러리들의 시선을 불편하게 한다. 십여 년 전이라면 나도 아마 저 괄호를 말끔히 지우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동인천 일대 동네 매력에 이끌려 이곳저곳을 산책했다. 인천에 오래 살면서도 이렇게 낡은데 매력적인 곳이 있다는 걸 뒤늦게 발견하곤 시간이 날 때마다 골목골목을 누볐다. 사진도 찍고 친구들도 데리고 가서 마치 낯선 도시를 여행하듯 돌아다녔다.
오래된 도시, 오래된 건물 그리고 잊었던 기억들은 마치 겨울날 오후의 햇살처럼 나를 따뜻하게 반기는 듯해서 ‘이렇게 그대로 있어줘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화수동의 작은 주택 사진을 찍다가 오래 잊을 수 없는 표정을 만나게 되었다.
낡고 작고 특이한 그 집 대문을 사진 찍는데 마침 그 문으로 나오는 여성분과 시선이 마주쳤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말없이 바라보는 그분의 질책과 원망스러운 표정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 표정은 2016년 북성포구 갯벌 매립을 찬성하는 시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평생 만석동에서 굴을 까던 주민이었다.
“당신들은 가끔 와서 사진 찍기 좋으니까 이런 풍경 없어지면 안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평생 냄새나고 낡아빠진 여기서 살았어. 매립해서 좋은 환경에서 살자는데 왜 반대해.”
지금 나는 동인천 구도심 주택에 살고 있다. 여행자의 시선과 주민의 시선이 같을 수 없다. 산책자에겐 추억의 장소이지만 주민에게는 현실의 공간이다. 그 두 시선이 만나도 어색하고 불편하지 않을 수 있는 높이를 맞춰야 한다. 그게 구도심 재생의 시작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