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는 구내 매점으로 향했다. 요새 캔에 들은 밀크티에 맛을 들여 거의 매일 1일 1캔 하고 있다. 구내 매점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민재는 밀크티가 있는 냉장고 선반 위치를 잘 알고 있었기에 능숙하게 사람들 사이를 헤쳐 정확한 위치로 나아갔다. 선반에는 수많은 캔음료가 놓여 있었지만 민재는 늘 마시던 황갈색 밀크티 캔을 집어 들었다. 민재가 캔을 집어 계산대로 가려는데 앞에 민재보다 10센치는 커보이는 사내가 민재의 앞을 가로 막았다.
“저..저기”
“죄송합니다”
민재는 사내를 지나치려고 빠르게 영혼없는 ‘지나갈께요’ 의미의 죄송합니다를 내뱉고 사내와 진열대 틈을 비집고 지나가려고 했다. 그러던 찰나 사내가 갑자기 민재의 점퍼 어깨 부분을 잡더니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민재는 사내의 강한 힘에 놀라 반사적으로 진열대 옆 부분을 잡았다. 그러자 진열대가 휘청하면서 민재와 사내쪽으로 진열되어 있던 과자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민재와 사내는 떨어지는 과자들과 함께 바닥에 뒹굴었다
“뭐 하는 거에요?”
민재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하며 사내의 얼굴을 보다가 그 눈이 시야에 들어왔다. 흰자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민재는 순간 이 사내로부터 도망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공포스러웠다.
민재는 바닥에 떨어진 것들 중 비교적 딱딱해 보이는 알루미늄 같은 포장의 비타민 상자를 짚어 있는 힘껏 사내의 얼굴을 내리쳤다.
“퍽, 퍽”
사내는 생각보다 민첩했다. 팔을 들어 민재의 공격을 막아냈다. 리바이스 같은 청자켓을 입고 있었는데 알루미늄 박스가 별로 타격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때리는 민재가 느끼기에는 그 자켓은 마치 갑옷과 같았다.
사내는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민재에게 달려들었다. 민재고 180정도로 작은 키가 아닌데 사내는 정말 잠실 100층 빌딩 같은 느낌으로 민재를 눌렀다. 민재는 숨이 막혔다. 그러나 민재는 자신의 힘이 사내에게 택도 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그때까지 악착같이 들고 있었던 밀크티 캔을 든 왼손은 더 이상 밀크티를 쥐고 있지 못했다. 밀크티를 던지고 양손으로 사내의 팔을 쥐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내는 민재에게서 떨어져 밀크티 캔이 굴러가고 있는 구석쪽으로 몸을 날렸다. 민재는 그런 사내의 뒷모습을 언뜻 보았지만 그 순간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눈을뜨자 매점 사장님 얼굴이 보였다.
“괜찮아요? 이게 뭔 난리야”
“으 으음.”
민재는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매점 사장 뒤에 아까 민재와 격투를 벌였던 사내가 들어왔다.
“미..미안합니다. 그 밀크티 캔이 1등 당첨 캔이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나중에 알고보니 사내는 이강인 데뷔 개막전 직관 항공권과 입장권이 상품으로 걸린 음료업체 프로모션 때문에 그날 10캔도 넘게 그 밀크티를 샀다고 한다. 그러던중 민재가 밀크티 캔을 집는걸 보았는데 마지막 1캔만 더사면 1등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꼭 민재가 먼저 짚은 그 캔을 11번째로 사려고 했다가 이 소동을 피운 것이었다.
‘어휴…이제 밀크티 끊어야 겠다’
민재는 결국 손에 넣은 밀크티를 마시는데 맛이 왠지 쓰게 느껴졌다. 아마 민재 생에 마지막 캔이여서 그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