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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내음 Jan 15. 2024

겨울 일요일 오후 그리고 떡집

작은 행복 연구소 ep.1

일요일 오후. 바깥은 어제 소한 이후로 다시 영하 10도로 치닫고 있었다. 지난 주 대학 원서 접수가 끝난 민재의 큰 딸은 어젯밤 내내 뭘 하는지 잠을 자지 않더니 지금 세상 모르고 자고 있고 둘째는 고2가 되더니 민재 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되어 아침부터 학원과 스터디 카페를 오가고 있었다.

민재와 윤정은 적막이 싫어 TV를 틀어놓고 있었지만 보고 있지는 않았다. 작년 까지 큰 딸의 고 3 수험 생활 때문에 전쟁같았던 주말에 비해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여유가 익숙치 않았다.



“갑자기 떡 먹고 싶지 않아?”



윤정은 민재에게 불쑥 말을 걸었다.



“오~ 좋지. 나이 드나봐. 빵보다 떡이 더 좋아져”



민재는 먼저 외출의 빌미를 만들어준 윤정이 고마웠다. 왜냐하면 아직은 주말에 민재 자신만의 스케쥴로 어디를 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회사일 관련한 것이 아니면 주말에는 집에 5분 대기조 처럼 출동 대기를 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아내인 윤정이 맛집을 가자고 하던가 첫째인 연아가 뭘 집에 놓고와서 가져다 달라고 하던가 둘째인 지아가 학원에서 픽업을 해달라고 하던가 주말엔 가족들의 각종 부름에 대응을 해주어야 행복했다. 아마 옛날 민재가 해외에서 바쁘게 주말도 없이 일을 할적에 가족들에게 아빠로서 제대로 역할을 못해준 것이 죄책감으로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민재는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 이렇게 주말에 아빠를 찾는 가족들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민재와 윤정은 밖을 나섰다. 추웠지만 하늘은 정말 맑았고 무엇보다 민재는 쌀쌀하지만 청량한 겨율 냄새가 콧 속으로 확 들어와서 좋았다. 네비게이션 안내대로 10분쯤 운전을 하자 고층 빌딩속 작은 전통시장 골목이 나왔다. 골목 안 쪽에 흰 연기가 나오는 가게가 보였는데 누가봐도 나 떡집이오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루떡과 인절미, 가래떡 그리고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블루베리 설기를 샀다. 그리고 결재할떄 전통시장이다 보니 10% 할인이 되는 상품권으로 살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빨리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떡을 맛보기 위해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 왔다.



식탁위에 올려놓은 떡과 창밖으로 보이는 추운 아파트 마당의 풍경은 민재에게 묘한 안정을 주었다. 20년이 넘게 회사원으로 살았지만 언제나 일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월요병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민재는 떡을 한입 더 베어물고 춥지만 왠지 따뜻해 보이는 아파트 놀이터 마당을 다시 쳐다보며 일요일 오후를 다시 머리속에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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