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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스 May 31. 2021

5월의 시

많은 이름이 붙는 달이긴 하지만

5월입니다

5월은 여러 기쁘고 즐거운 날도 많고 많은 수식이 붙는 달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벅찬 날이 있다면 오늘, 노동자의 날이라 생각합니다.


근로를 노동이라고 발음하면 빨갱이냐는 이야기를 듣는 때도 있었습니다.  이상 빨갱이의 논리가 힘이 많이 줄어든 세상이라지만, 아직 세상에 근간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근간은  바다 하늘 나무입니다 그러니까 농사를 짓는 일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무언갈 만들어 주는 노동이 다른 하나입니다.


치켜세워준다고 해도 손사래를 치겠지만, 무시하지 말란  말입니다. 근간을 존중히 하지 않고 어떻게 홀로 살아서 좋은 옷에 좋은 잔에 좋은 술을 마시겠습니까.


안타까움으로만 맺어지면  되는 죽음들이 너무나 많습.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됩니다. 달라진 것도 이렇게 없어도 되나  만큼 죽어갑니다.


마치 죽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노동이란 이름이 버티고  있습니다. 죽어서 바치는 꽃보다는 살아서 보는 드는 꽃이 오만배는  이쁠 것이라 올라오는 감정을 다시 누르고 그래도 꽃은 피어야 하니까, 5월의 시를 올립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송경동


2014년 1월 2일

캄보디아 프놈펜 남서쪽 카나디아 공단

한국계 기업 ‘약진통상’ 정문 앞

봉제노동자 백여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최저임금을 올려달라고 127개 공장이 파업 중이었다


공단 내 다른 한국 기업인

‘인터내셔널 패션로얄’ 노동자 피룬도 춤을 추고 있었다

하루 평균 열 시간 일하며

부자를 위해 비싼 옷을 만든다는 피룬의

월수입은 130달러, 한화로 14만원

한 시간 잔업수당 50센트 의료수당 5달러

아침 7시 출근을 한 번이라도 어기면 나오지 않는

보너스 5달러 교통비 5달러를 포함해서다


“나도 ‘꿈’이라는 것을 가져보고 싶다”

서른한 살 여공 파비도

댄싱 파업에 참가한 까닭이었다

네댓 명이 함께 사는 쪽방 월세가 40달러

식비 60달러 십 년을 일했지만 남은 건 200달러 빚뿐

그것도 육개월에서 일 년 단위 비정규직

지난 이년 동안 카나디아 공단에서

영양실조로 작업 중 쓰러진 봉제노동자 4,000명


춤추는 노동자를 향해

트럭 열대에 나눠 타고 온 헌병들이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한 건 오후 3시 30분

약진통상 공장 부지를 나눠 쓰는 911 공수부대원들도

쪽문을 열고 나왔다 911부대 차프소포튼 소장은

약진통상 지분을 가지고 있다

울부짖는 소리 끌려가는 소리가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다음 날 분노한 카나디아 공단 노동자 만 명이

오전부터 거리를 가득 메웠다. 아침 8시

내무부를 향한 시위대가 이백 미터쯤 전진했을 때

총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다섯 명이 죽고

삼십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피룬의 오른쪽 다리에도

총알이 박혔다 가까운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의사는 없고 간호사들은 치료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 시각, 시위와 관계없이 병원을 찾은 한 여성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했으나 거부당했다 이 여성은

되돌아가는 길에 숨졌다 단층집 옥상에서

시위를 구경하던 폭은 외쪽과 오른쪽 발목

오른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다 오토바이 택시 기사 세론은

손님을 기다리던 중에 총을 맞았다 생선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임산부도 총을 맞았다 분노한 노동자들이

병원을 향해 돌을 투척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주재 한국 대사관은

유혈사태 전 ‘긴급 서한’을 통해

“정체불명 아웃사이더들의 불법 행동”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없을 시

“캄보디아 내 한국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효과가 우려된다”고

캄보디아 정보와 정치권의 강력한 개입을 요청했다

캄보디아에서 2012년 기준 한국은 중국을 제치고

캄보디아 투자국 1위 한국 대사관이 1월 6일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치안안전정보’ 안내문에 따르면

“현지 수경사령부와도 접촉해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캄보디아 국가대테러위원장과 접촉하고 내무부, 법무부, 경찰청 등 주요 기관에

우리 기업의 안전과 피해를 막아달라는 취지의 협조 공문을 발송했다”

이렇게 캄보디아 정부를 재빨리 설득해

“금번 상황을 심각히 고려하고 신속히 대처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자신들 공이라고 자평했다 캄보디아 군 병력이

특별 보호조치를 취한 공장 건물은


한국 공장이 유일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진압에 앞장선 훈센 총리의

‘총리 경호부대’와 ‘70여단’의 공개적인 후원국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훈센 총리의

경제 자문위원이었다 2011년 총리 경호부대가

2,800만 달러 기갑 장비를 도입할 때도

한국 정부가 지원했다 60여개 업체가 모인 한국봉제협회는

사태 후 좀 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캄보디아 의류생산자연합회를 움직여

통합야당 대표 삼랭시와 8개 노조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들어갔다


비슷한 때인 2014년 1월 9일

방글라데시 남부 치타공에 위치한 ‘영원무역’ 해외 공장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다른 수당들을 삭감해

도리어 전체 임금을 깎은 사측에 분노해

노동자들이 돌발 시위에 나섰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에 공장 열입곱개를 소유한 대기업

월급날인 그날, 경찰 발포로

갓 스무살 여성 노동자 파르빈 악타르가 죽고

십수명이 다쳤다 작년 말에 올랐다는

최저임금은 5,300타카, 한화로 7만원

오르기 전엔 4만원이었다 영원무역에서는

2011년 4월에도 경찰 발포로 세명이 죽고

250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방글라데시에선 2013년 4월

닭장 같은 한 봉제공장 건물이 붕괴해

노동자 1,235명이 압사당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파르빈 악타르가 죽은 날

새벽 6시 50분, 베트남 북부 타이응우옌성 옌빈

삼성전자 공장 신축현장에선

작업시간에 늦어 출입구를 뛰어넘는 한 노동자를

삼성보안서비스 용역들이 구타하고 전자충격봉으로 기절시켜

베트남 건설노동자 4,000명이 ‘폭동’을 일으킨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베트남 노동자들

최저임금은 12만원이었다


약진통상은,

캄보디아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두었다

서울 송파구에 작은 본사를 두고

다국적 노동자 23,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바나나리퍼블릭, 갭, 올드네이비 등

유명 브랜드 의류를 주문생산한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와 중국 베트남 엘살바도르에 공장을 두었다

본사 한국인 직원은 448명이고

현지 고용인은 52,530명이다

노스페이스를 생산하고 나이키 드을 주문생산한다


삼성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해외 공장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지 알 수조차 없다


수술을 두번 남겨둔 피룬은

당분간 춤을 출 수도

미싱을 밟을 수도 없다

그날 이후 피룬의 병신을 방문한 한국인은

취재진 몇 명 말고는 없었다


한국의 수출자유무역공단에서

이십여년 노동운동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아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사양산업이 도산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도산, 폐업, 해외 이전하는 봉제공장 전자공장 노동자들 곁에서

십수년 ‘빠이빠이’ 눈물바람이나 하며 살아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를

직접고용 정규직화하고 생산라인을 다시 돌리라고 싸워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이전하며 위장폐업한

기타 만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 복직을 요구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필리핀 수비크에 2조원을 들여 조선소를 세우고 비정규직 2만명을 고용한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에 맞서 싸우던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모든 게 경영상의 위기로 인한 정당한 정리해고이며 비정규직화라고

나아가 이젠 미래에 올 경영상의 위기로도 해고가 가능해야 한다고

오늘도 열심히 방망이를 두드리는 법 앞에서

속수무책 망연자실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정규직 자녀 우선채용에 합의하는

‘대공장 민주노조’를 위해

비정규직 확산과 우선 해고에 눈감는

‘대공장 민주노조’를 위해

이젠 해외여행깨나 다니는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 고용안정을 위해

한국 사회 중산층의 다수를 이루는

‘민주노총 정규직 조합원’들을 위해 힘써 살아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5.18 광주 학살에 분개해 해마다 망월동을 찾는

해마다 전태일 열사 기일에 맞춰 전국노동자대회를 찾는

용산 철거민 학살을 오늘도 잊을 수 없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1985년 구로동맹파업 기념사업일을 맡아하고

가끔 구로공단 산업화 관련 인터뷰에 응하기도 하는

다시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이 된 이곳에서

싼 전세 탓에 오도 가도 못하고 사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전 세계 부자 85명이

세계 인구 절반과 동일한 부를 소유한 이 지구별에서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나는 한국인이다

아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송경동이다

아니 나는 송경동이 아니다

나는 피룬이며 파비며 폭이며 세론이며

파르빈 악타르다

수없이 많은 이름이며

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

치욕이며 구경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

다시 쓰러짐이며 다시 일어섬이며

국경을 넘어선 폭동이며 연대이며

투쟁이며 항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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