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룬스타 Jun 25. 2018

나의 인디게임 개발 회고록 2탄 - 4

인디게임 '레인드롭 팝' 개발기

4부. 레인드롭 팝 제작기 1


게임을 만들기 시작해서 출시까지 총 1년이 걸린 컬러레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수많은 의사 결정의 순간을 맞닥뜨렸고, 그때마다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었지만,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그 당시 발생했던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했던 여러 가지 방법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게임 테스트를 통해 테스터의 의견과 반응을 모으고 게임을 개선시키는데 기여했던 경험과 여전히 내공이 부족하여 작업내용을 정밀하게 계획하지 못해 문제가 되었던 경험 등을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배운 점을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게임 제작에 대한 생각에 더해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한 가지 걱정은 게임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다루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해보지 않았거나 잘 모르는 상태라면 이해하기 어렵거나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게임 제작 과정의 디테일 한 부분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면 역시나 지루할 것이다. 한계가 있겠지만 최대한 쉽고 이해하기 쉽게 상황을 설명하고 전달해보도록 노력하겠다.

 

물론 자세한 이야기를 생략하고 개략적으로 회고록을 작성할 수도 있겠으나 이 회고록 작성의 목적 중에는 프로젝트의 여정을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것 이외에도 나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하는 작업도 포함하고 있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포인트가 존재한다고 해도 다루고 가야 할 것 같다.





# 최초 테스트 버전과 테스트에 대한 나의 생각


처음 컬러레인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부족한 시간 탓에 BIC Festival에 출품만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여겼었다. 그래서 게임의 여러 가지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에 긴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고 오직 강재봉과 나의 판단에만 의지해서 결정하고 만들어야 했다.


출품에 간신히 성공하고 보니 제출했던 버전을 가지고 외부인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강재봉과 나의 자체 판단으로는 나름의 가능성을 보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 게임을 어떻게 생각할지가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BIC Festival 제출 버전의 모습 (2017.06)


테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경험상 외부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테스트는 게임이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소한 게임 시작부터 게임 오버까지 한 사이클을 완벽하게 플레이할 수 있고, 그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는 데에 무리가 없을 만큼은 제작이 돼있는 시점에서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테스터들이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 제공하는 피드백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게임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는지, 게임의 규칙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는지, 게임을 이용하는데 불편함은 없었는지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스트 가능한 집단이 있다면 매우 아껴서 사용해야 하고 제한된 기회를 잘 이용하기 위해 버전의 완성도가 최대한 높으면 좋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더불어 정말 중요한 테스트 피드백은 매우 비판적이거나 나쁜 감정 표현에서 나오기도 하기에 강한 비판을 들을지라도 방어적으로 변명하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고 테스터의 의견과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계속해서 경청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보통 제작자가 변명 혹은 설명하려고 하는 순간 게임에 대한 느낌이나 의견을 전달하던 일을 멈추고 입을 닫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현시점에서 우리에겐 한 번의 마감을 거쳐 잘 다듬어진 상태의 버전이 준비되어 있었고, 제작자로서 테스트에 임하는 자세도 다시 한번 되뇌었으므로 적당한 테스트 대상을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시점이 온 것이다.





# 체이닝 탄생 스토리 - 테스트를 통한 개선의 경험 


때마침 가끔 모이는 이전 직장 사람들의 저녁 약속 모임이 잡혀있었다. 그래서 여기서 최초의 평가를 받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로 게임의 코어 플레이를 만들던 사람들이었고, 게임 플레이 자체를 분석적으로 보는 수준이 매우 높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에 게임의 평가를 받기에 적절한 기회였다.


그래서 점점 더워지기 시작하던 초여름 무렵의 저녁에 테스트 버전을 가지고 모임에 나갔다. 이 날 테스트를 통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의견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의미 있었다고 생각했던 피드백이 기본 플레이 자체는 재미있는데 이 액션들을 응용해서 할 수 있는 고급 플레이가 전혀 없어서 금방 질린다는 의견이었다.


이때 가능했던 기본 플레이라고는 빗방울의 색에 맞춰 터뜨리거나, 원하는 색이 없을 경우 다른 색을 던져서 색깔을 바꿔 터뜨리는 행위가 전부였고, 어떤 응용 가능한 심화 플레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금방 질려버린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평화로운 마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같은 색을 던져서 터뜨리거나, 다른 색을 던져서 색을 바꿔 터뜨리면 마을에 또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물론 다음날에는 또 비가 올 예정이다.


게임 개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몇 가지가 있다. 대부분 신입 시절에 회사 선배들이 해주었던 이야기들인데 그중에 한 가지가 재미있는 게임은 어떤 목표도 없이 필드에 서 있는 허수아비만 때리고 놀아도 재미있다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게임이 가지고 있는 기본 액션의 재미와 깊이, 그리고 발견 가능성이라고 해석한다. 게임 내에 존재하는 단위 액션들이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 첫째 조건이고, 단위 액션들의 사용법을 달리하거나 서로 조합할 때마다 새로운 재미가 생겨나는 게임이 게임 플레이 영역에서만큼은 완성도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풀이해서 마음에 새기고 있다.


그리고 이 날 저녁 테스트를 통해 생긴 주요한 고민이 바로 이 응용 및 심화 플레이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날 들었던 질문 중에서 색깔을 바꿔서 터뜨리는 게 좋은지 그냥 터뜨리는 게 좋은지에 대한 것이 있었는데 사실 그 당시로서는 색깔을 바꿔서 터뜨리나 그냥 터뜨리나 특별히 다른 점이 없었다. 색을 바꿔 터뜨리는 행위는  원하는 색이 당장에 없을 경우 선택하는 차선책 정도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가 색을 바꿔 터뜨렸을 때 주변에 있는 같은 색의 빗방울도 함께 제거할 수 있게 해주면 색을 바꿔서 터뜨리는 행위가 의미 있어짐과 동시에 여로모로 응용 가능한 심화 플레이를 탄생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좌) 그러니까 색깔을 바꿔서 터뜨리면 정 없게 그냥 터지지 말고, (우) 근처에 있는 같은 색도 함께 터뜨려주면 우리 모두 기분이 좋잖아요?


이 모든 게 모임에서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고민하다가 떠올랐던 아이디어였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한 번에 해결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빨리 만들어서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에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실제 만들어서 게임을 플레이해보니 상황이 여유 있을 때는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색깔을 바꿔서 주변의 빗방울을 제거하는 동시에 고득점을 노릴 수 있는 플레이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색깔을 바꾸는 플레이가 계속해도 질리지 않고 재미있는 느낌까지 드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조금 더 게임성을 더해 색을 바꾼 횟수만큼 주변 빗방울을 터뜨릴 수 있다는 규칙까지 더해주니 게임의 재미가 더욱 풍성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메시도 울고갈 환상적인 체이닝 드리블


내가 믿는 신념 중에 좋은 아이디어는 하나의 문제가 아닌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다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 날 적용했던 해결책은 게임의 응용 플레이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의미 없었던 단위 액션을 가치 있는 것으로 재탄생시켜주기까지 했다.


이것이 현재 게임에 적용되어있는 체이닝의 탄생 스토리다. 외부인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를 통해 의미 있는 피드백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고민하여 더 깊고 재미있는 게임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체이닝은 현재 게임 내에서 가장 재미있는 플레이 요소라고 인정받고 있다.





# 마을 재건 컨텐츠의 험난한 여정


작업을 진행하면서 단순히 스테이지만을 클리어 해나가는 형태의 게임이라면 목표가 없어서 금방 질려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늘 있었다. 그래서 간단하게나마 게임 플레이 이외에 또 다른 재미를 줄 수 있도록 홍수에 잠긴 마을을 재건하는 이야기를 넣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미적 보상감’을 제공하고,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주요한 목표’를 제공하자는 위대한 목표를 세우고 작업에 들어갔다.


최초 작성했던 플로우 차트에도 계획되어 있었던 마을관련 부분


실제 만들어진 결과물. 스테이지를 진행해서 보상을 얻으면 마을이 풍성해진다는 설정


완성을 해놓고 보니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획득한 보상이 마을을 점점 풍성하게 해준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못했으며, 테스트를 하던 테스터들이 보상을 받았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쳐버린다는 문제까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플레이어의 보상감을 더욱 올려줄 필요가 있었고, 보상을 얻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줄 방법을 찾을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무슨 보상을 받았는지 잘 보이지도 않고 그닥 기쁘지도 않음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분석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전작인 매드니스티어 라이브를 만들 때는 게임 제작 과정 전체가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모든 부분에서 시행착오를 격었었다면,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얻은 자산을 바탕으로 그렇게 큰 시행착오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심미적 보상감’과 ‘지속 가능한 목표 제시’를 위한 요소를 만들어보겠다고 뛰어든 미지의 영역에서 마침내 대혼란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첫 번째로 시도했던 방법은 현재 매우 조밀하게 한 화면 내에 모여있던 보상들을 여러 화면에 걸쳐서 큼직하고 눈에 띄게 변경해보는 것이었다. 몇 주에 걸쳐 한 화면에 모여있던 마을 보상들을 넓게 펼치는 작업을 진행했고 재배치된 마을 화면은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좁은 땅덩어리에 옹기종기 모여살지 말고 적당히 퍼져삽시다


일부 개선점이 있었지만, 원래 목표했던 미적 보상 감을 전달하는 데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인이 무엇일지 또다시 고민하며 시행착오를 겪다가 마을이 점점 건설되며 풍성해지고 있다는 보상감을 얻게 하는 데는 Before와 After의 차이가 확실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진리를 깨우친다고 하여, 그 상황을 타개할만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Before & After의 차이를 명확하게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해결법을 찾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해야 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했던 문제는 아직 보상을 얻지 않은 상태의 마을이 너무 비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플레이어가 마을을 쭉 돌아보며 게임을 클리어하면 이곳이 풍성하게 바뀌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야 장기적인 목표가 생길 텐데 그 점을 제시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좌) 처음의 상태가 (우) 점점 풍성해 질것이라는 기대감을 전혀 못주고 있다.


그래서 아직 완성하지 못한 마을의 상태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미완성되어 불편해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마침 이 즈음에 열심히 플레이하고 있었던 ‘꿈의 집’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이 게임이 매우 멋진 점은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나면 지저분했던 집이 점점 정리가 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데에 있었다. 허름하게 구성되어있는 집안의 물건들이 어떻게 더 예쁘게 변해갈지를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게임 플레이는 전형적인 Match-3 류의 퍼즐 게임이라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점점 집을 예쁘게 꾸며간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플레이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달성하려는 목표를 제대로 이루고 있는 게임이었다. 그래서 건방지게도 이 게임의 방식을 가져와서 적용해보기로 했다.


강재봉이여 모든 마을 보상에 등장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라. 방법은 모르겠으니 알아서 예쁘게 뽑아다오.


어느 정도 보상 감에 대한 진전은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의 문제는 작업자라고는 강재봉 하나밖에 없는 팀이 감당하기에는 작업량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완성하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추가로 많은 시도를 하던 끝에 아직 얻지 못한 보상에 회색 컬러를 칠해주는 간단한 처리를 더함으로써 이 모든 여정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이곳에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예고와 보상에 대한 기대감을 함께 줄 수 있는 해결책이었다.


다른 시도를 하느라 수개월을 허비했는데 단순한 회색 처리 하나로 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되돌아보니 마을 재건 컨텐츠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완성하기까지 들인 시간이 2017년 4월부터 현재의 형태로 굳어진 2018년 1월까지 약 10개월 정도였다. 대부분의 개발 기간 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현재의 형태가 최선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최초에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심미적 보상감, 마을 재건의 느낌을 완벽하게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의 역할은 하게 되었다고 느껴져서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어느샌가 최초의 리소스는 다 사라지고 새로 제작되어있다. 이것도 병이야.


겨울에 출시할 줄로 굳게 믿고 만들었던 얼음 지역.


물론 다음에도 이런 형태의 게임을 만들게 된다면 좀 더 나은 출발점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좋은 점도 있지만, 작업을 진행하며 비싼 수업료를 치른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이 부분이 일정 지연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음도 부인할 수 없다.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지 10년이 되어간다. 독립해서 내 것을 만들어보겠다고 버둥거린지는 3년이다. 여전히 부족하고 실수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경험 속에서 배우며 성장하는 중이다.


다음에 또 어떤 게임을 만들게 될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이렇게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쌓은 경험들은 우리를 0의 출발선이 아닌 15, 20의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게끔 해줄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최후의 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게임을 만들다 보면, 나의 유일한 꿈인 죽을 때까지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여건도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5부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인디게임 개발 회고록 2탄 -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