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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소년 Sep 14. 2016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더 이상 가만히 내버려두지 마라

 2011년 일본에서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에 의해 후쿠시마 현에 있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로 인해 엄청난 방사능이 대기 중으로 퍼져나갔고, 일본은 급기야 2012년 원자력발전소를 전면 폐쇄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방사능 유출로 인해 생긴 문제는 이웃나라인 우리에게도 무서운 공포로 다가왔다. 후쿠시마 '방사능 괴담'인지 실제 방사능 유출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었는지 모를 사건 사고에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흉흉한 소문에 의하면 방사능은 괴생물체를 낳고, 우리 몸에 잠재되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파고들지 모른다고 했다. 또 전문가들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것을 보며 우리는 그들에게 신뢰를 잃었고 안전하다는 말에도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방사능이 우리 몸에 잠재되어 있다는 말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공포감을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우리의 인생을 통째로 잡아먹을 괴이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도 복구 작업 중에 있는 후쿠시마는 아마도 평생 생명이 살아가선 안 될 땅으로 자리할 것이다.

 마찬가지 2011년, 진도 7.3에 달하는 강진이 터키를 흔들었다. 땅이 흔들리는 공포는 우리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터키에 사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 버렸다. 저승사자는 무엇이 그렇게 급했던 것이기에 그 많은 생명들을 데려갔던 것일까? 터키에 있던 수백 명의 생명은 땅 속에 묻히고, 물속에 떠내려갔다. 그 현장은 흡사 아비규환이라 부를 정도 였다. 집이 무너져 내리고 홍수에 마을이 휩쓸려 간다. 그 물살에는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우린 끝끝내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자연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끝없이 펼쳐진 대지와 바다. 또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의 광활함에 압도되어 절로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있다. 씨앗이 흙속에 양분을 먹고 자라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보는 건 또 어떤가? 생명의 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세상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가끔 잊고 사는 것이 있다. 아름다운 것일수록 그와 반대되는 이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살아가게 하며 지켜주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생명을 단 번에 위협할 공포도 존재한다. 위에 말한 두 지진 사건을 보라.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은 수많은 국가를 공포에 떨게 하고 후쿠시마를 지옥의 땅으로 만들어 버렸고, 터키에서 일어난 지진은 수백 명의 생명이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흙 속으로, 물 속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우리는 자연의 무서움을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외면하고 있다. 우리는 괜찮겠지,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 자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곧 또 언제 어디서 수소 폭발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고, 땅이 갈라지고 홍수가 우리를 덮쳐 생명의 끈을 끊어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세상을 통해 그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음에도 달라지는 것 없이 그렇게 살고 있었다.


 어제 저녁 경주에서 최고 5.8에 달하는 지진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인해 경상도 지역, 멀리는 강원도까지 흔들림이 느껴졌다고 한다. 지진이 주는 공포의 순간을 몸소 느꼈을 포항에 살고 있는 지인이 당시 상황을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의 시작은 지반을 흔드는 지진에 의해 천장에 올려둔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바닥으로 쏟아지눈 것으로 시작했다. 인형, 책, 프라모델 할것 없이 땅바닥에 무참히 처박혀버렸다. 영상은 떨어진 프라모델을 줌인하고는 시선을 옮겨 부엌을 비췄다. 부엌은 이미 접시들이 땅바닥에 유리조각인 채로 존재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은 영상에 담기지 않았어도 어떤 모습이었을지 충분히 짐작가는 상태였다. 진도 5.8의 지진은 한 가정을 부셔놓기 충분했다.

 창원에 사는 친구가 보내온 사진에는 지진의 흔들림에 집 주변 공터로 몰려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귀중품만을 챙기고 나온듯 다들 양손 한가득 무언가를 가득 쥐고 있었다. 이 사진에 담긴 그들은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서는 행할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지진의 여파가 닿지 않는 서울에 있어 운 좋게 그 공포를 피할 수 있었다. 사실 지진이 일어날 당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고,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아는 지인들이 보내온 사진과 언론매체가 당시 상황을 보여주기 전까지 나는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그렇게 심각한 줄도 몰랐다.

 내가 심각함을 깨달았던 순간은 우리 형이 내가 걱정된다고 문자를 보낸 뒤였다. 조금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전혀 연락하지 않는 우리의 연락에는 알 수 없는 심각함을 가지고 있었다. 형이 내게 괜찮느냐고 물어본 것은 마치 작전을 나가기 전의 군인이 유서를 쓰는 것 같다.


 하루가 지나고 속속들이 어제 상황에 대한 뉴스들이 올라왔다. 그중 가장 무서웠던 내용은 이것이었다.

 "가만히 있으라."

 2014년 수백 명의 학생과 주변인들을 바닷속에 묻어버린 그 한마디. 그 한마디가 또 우리에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학교에서 지진의 흔들림이 느껴지자 학생들이 놀라 밖으로 대피하려 하는 것을 어른들이 말렸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학생들을 그 흔들리는 건물 안에 가둬두었던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을 끔직하고 무서운 순간이었으리라.

 언론에 올라온 것 중에 이런 내용도 있었다. 학교가 흔들리는데 학부모들에게 학생들은 안전하다고 야간 자율학습 마치는 시간에 맞춰 귀가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놀랍고 무서웠다. 뉴스를 보면 볼수록 치가 떨렸다. 말 한마디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어른들은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수백 명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 학교는, 그 판단을 내린 사람은 알지 못했던 것일까? 알고 있었다면 왜 학생들을 학교에 붙잡아두었던 걸까? 그 사람은 감히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걸까?

 다행인 것은 학교의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온 용감한 학생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어른들보다 더 지혜롭고 훌륭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적어도 옳지 않은 것을 반대할 수 있는 뜨거운 불씨를 간직한 학생들이었다.

 더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에 지진으로 인한 부상자는 있었지만, 사상자는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잊어선 안 된다. 자연의 무서움을. 또 세월호의 잠긴 수많은 생명을,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죽어간 그 수많은 촛불들을.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던가? 과거에 당한 치욕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우린 그 세월호 앞에 죽어간 생명을 보고 무엇을 배웠는가? 위험한 상황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배웠던가? 도대체 우리는 수많은 생명을 가슴속에 묻은 채 무엇을 원망하고, 무엇에 눈물을 흘렸단 말인가?

 나는 정말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에도 건물 밖으로 뛰쳐나온 그 학생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앞으로 그 학생들이 만들어갈 세상이 또한 궁금하다. 그 용기를 간직한 채 살아가길 바란다면 욕심일까. 그래도 응원하겠다는 것이 내 순수한 마음이리라. 그들뿐만 아니라 모든 청춘들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가만히 있지 마라.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더 이상 가만히 내버려두지 마라. 제발 아무것도 가만히 있지 마라.'


 경주에, 한반도에 지진이 일어났다. 우리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는 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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