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냐 주희냐
호칭에 대하여
대학장구의 저자 주희(朱熹)의 전통적 호칭은 주자(朱子)이다. 주자는 주 선생님이라는 뜻이어서 주희를 높이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주자보다 주희라고 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주자라고 하면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직 공자를 공구(孔丘)라고 하자는 사람은 없으니, 공자와 주자의 위상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주희라고 부르려니 불편한 점이 많다. 먼저 형평성을 맞추어 왕양명도 왕수인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워낙 왕양명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불러서 소통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중국 인물에 대한 호칭은 사람마다 다르다. 공자, 주자처럼 누구는 성에 선생님이라는 의미로 자(子)만 붙이기도 하고, 자사처럼 누구는 자(字)만 부르기도 하고, 왕양명처럼 누구는 성에 호를 붙이기도 한다. 북송의 다섯 선생으로 불리는 장재(張載)처럼 그냥 성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호칭을 일관성 있게 하자고 이 모든 사람을 성과 이름으로 바꿔 부르 자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개명이나 마찬가지라 역사성을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기존에 부르던 이름이 아니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생긴다.
중용의 저자라고 알려져 있는 인물은 자사(子思)인데, 자사는 공자의 손자로서 이름이 급伋이고 자字가 자사인데, 우리는 자사라고 부른다. 가끔 자사를 높이기 위해 자사자(子思子)라고 하는 경우는 있다. 한비자(韓非子)와 한자(韓子)의 경우, 한비자는 성과 이름을 다 말하고 자를 붙였고, 한자는 한유인데, 공자 주자 하듯이 한자라고 했다. 대유학당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비자가 한유의 인품보다 못해서 일부러 이름까지 붙여 한비자라고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비자라는 호칭은 고대에 만들어졌을 테니, 그저 한비자와 구분하기 위해 한유를 한자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자가 공자 반열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런가 하면, 뒤에 자를 붙이는 것도 모자라 앞에 자를 하나 더 붙이기도 한다. 바로 주자가 정자를 일컬어 자정자子程子라고 한 것이 그런 경우이다. 여기 자정자라고 해서 성 앞에 자를 하나 덧붙인 것에 대해서 대유학당에서는 주자가 자신이 사숙한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붙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단순히 자신과 특별한 관계 정도의 의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주자의 대학서문에 “子程子曰, 大學은 孔氏之遺書”라고 해서 공자를 공 씨라고 했기 때문이다. 정자가 먼저 ‘공씨지유서’라고 했는지 주자가 ‘공씨지유서’라고 말을 변형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자의 글 안에 있으니 주자가 직접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받아썼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주자가 자정자라고 한 것은 정자의 권위를 상당히 높이 쳤다는 의미로 읽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일관성 없는 호칭을 굳이 일관성 있게 하겠다고 주희니 왕수인이니 공급이니 이렇게 바꾸어 부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기존의 호칭에 아무리 존칭의 의미가 강하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단순한 기호의 의미일 뿐이다.
어차피 우리에게 그들의 호칭은 기호의 의미만 있을 뿐, 공자든 주자든, 자라는 호칭을 붙인다고 해서 그들을 나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굳이 전통적 호칭을 버리고 일관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다가 오히려 더 헷갈리게 된다. 그래서 오늘 이후로는 그동안 써왔던 일반적인 호칭을 사용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