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날들 2

단편소설

고조 할아버지는 생전에 단짝친구였던 파올로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하셨었다. 돌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며, 귀족의 후원을 받았다면 도나텔로 선생의 뺨을 쳤을 거라고도 했다. 친구 파올로가 중앙성당 돔 건설에 참여하여 낙사한 후 할아버지는 늘 기도했었다, 그가 천국에서나마 신께서 앉을 의자를 깎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러던 할아버지도 결국은 친구 파올로를 따라 떠나셨다. 파올로는 돔의 벽돌을 쌓다가, 할아버지는 돔 위의 첨탑을 쌓다가… 30년만에 만났을 그들은 정말 천국에서 재회했을까? 할아버지는 당신이 천국에 갈 거라는 확신을 늘 품고 사셨다. 평생 성당을 쌓는 돌을 만져오셨고 법 없이도 사실만한 성품의 소유자셨다. 평생 돌만 깎던 노동자에게 무슨 특별한 꿈이 있었을까, 흑사병에 걸리지 않고 제 명에 죽거나 죽어서 천국가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난 그런 할아버지의 세대를 이해한다.


이해가 안되는 건 그 세대가 아닌 오히려 지금의 세대다. 그 고조 할아버지가 낙사하신지 100여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다. 로마의 판테온을 재탄생시키고 그림에도 고대의 원근을 집어넣은 입체감이 경이롭다 여긴지 얼마나 됐다고, 이젠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술렁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한다. 예술품들이 뭔 죄더냐. 예술의 아름다움마저 주판알 팅겨 떨어지는 돈과 권력의 계산서에 포함된 상품가에 불과했던 것일까? 이게 예술의 민낯인 걸까?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나의 아버지가 젊었을 적,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 바로 몇년 전, 제노바에 살던 콜롬부스라는 사람이 저 서쪽나라의 후원을 받아 배를 타고 먼 바다를 지나 무슨 커다란 땅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파문의 시작이었다.

지난 시절 고대 로마의 문화를 재탄생시켰던 건 사실 따지고보면 결국 돈줄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으로 들여온 그 지역 새로운 문물들 속에서 요행스럽게 눈에 띈 건 다름아닌 우리들의 선조였던 고대 로마의 흔적 것이었던 것이다. 이념이 다르다 해서 조상들의 것을 외면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오래전 일인데다 넓은 세상에 대한 눈트임은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시켰고 문물의 발전은 그 시대의 위대함을 비로소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곧 돈으로 연결됐다. 고대의 재탄생은 그러니까 삼박자 사박자가 탁탁 들어맞는 시대의 부르스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콜롬부스라는 사람이 돈줄의 방향을 틀었다고 난리가 난 거다. 이러다 우리들의 지중해 상권은 끝장 난 거 아니냐, 이제 서쪽 바다쪽으로 돈줄이 터지는 거 아니냐, 이제 세상의 패권이 스페인을 비롯한 북서쪽으로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 아니냐 별별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하긴 십자군 원정이 끝난지도 벌써 200여년이 지났고 이후 지금까지 단물을 쭉쭉 빨아댔으니 그 바닥이 서서히 드러나는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잘난 고대를 재탄생시켰다는 건 역설적으로는 우리의 시대가 그만큼 못났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며 복고의 유행은 오리지널보다 길게 이어질 수 없는 게 세상 이치다. 반복은 곧 지겨움이기도 하니까...


언젠가 아버지는 콜롬부스 이야기를 하며 내게 말했다, 세상이 곧 망하거나 신께서 세상에 올 때가 된 것 같은 느낌이고… 불안함이라는 심리적 기제는 불길한 사건의 연속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콜롬부스가 새로운 땅을 발견하기 불과 6개월 전, 이 땅에선 이미 큰 별이 떨어졌었다. 우리 피렌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명으로 꼽히던 로렌초(il magnifico) 대공께서 지병으로 사망했던 것이다.

그것도 마흔을 갓넘기고 죽다니, 도나텔로 선생만큼만 살았어도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었을 인물이 일찍 죽은 것부터가 뭔가 심상치 않았다.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그를 이어 권좌에 오른 피에로는 무능하기 짝이 없었고 프랑스의 위협에 이렇다 할 묘수도 부려보지 못한 채 항복을 선언해버린 것이다. 로렌초 대공의 통치력에 익숙해져있던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백성들은 그 못난 피에로를 용서하지 못했고 시민혁명을 일으켜 메디치가를 통채로 추방시켜 버렸다. 통치자의 가족을 희생시켰던 피렌체는 그 댓가로 어정쩡한 공화정을 떠안아야만했다.


모든 시대는 그에 걸맞는 인물을 탄생시키기 마련이다. 정치, 경제, 종교… 둥지 잃은 새마냥 뭐 하나 제대로 안정적이지 못했던 그 시절, 때마침 한 수도사가 등장하여 이전엔 감히 입에 담지도 못했을 가시돗힌 말들을 쏟아내며 군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사보나롤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받아들이기엔 왠지 모를 불편함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딱히 부정할 수도 없는 촌철살인이었으며 팩트폭력이었다. 맞다, 원래 서민들은 그런 말투에 자극받는다. 듣자하니 그 옛날 단테 선생이 남겼다던 상상여행기도 우리같은 서민들이 알아먹기 딱 좋은 말투로 쓰여졌다지. 여튼 한때는 혼란스러운 걸 유독 싫어하셨던 아버지도 그를 단단히 믿었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뒤늦게나마 마음이 변하신 건 그의 지나친 금욕주의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으셨기 때문이었다. 보수적이고 신앙심이 두터웠던 나의 아버지마저 종교의 순수성을 강조하던 그에게 거부감을 느꼈다면 세상이 변하긴 변한 것이다. 사보나롤라는 교회가 가장 먼저 하늘의 벌을 받을 거라고까지 말했다가 결국 광장 한가운데서 화형당했다.

그로부터 5년 후, 못난 피에로도 망명지에서 죽었다. 이렇다 할 지도자 없어 공황장애 걸리기 직전이었던 백성들은 피에로의 동생이었던 줄리아노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마도 로렌초 대공의 태평성대가 다시 오기를 바랬을 것이다.  


여튼 백성들의 혀는 사보나롤라의 화형식 이후로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교회와 의회는 민중들의 입놀림을 점점 심하게 억압하려 했고 그러면 그럴 수록 민중들은 세상의 곧 폭발할 것 같은 비밀들에 대해서 수만가지 뒷말들을 몰래 속삭거렸다. 로렌초 대공께서 세상을 뜬지 6개월만에 콜롬부스가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피에로는 바보짓을 하고 정체 모를 사보나롤라까지 정신줄을 뒤흔들었던 시간들…

불안함과 온갖 뒷말들은 못난 피에로의 죽음과 그보다는 좀 나아 보이는 줄리아노의 등장으로 얼추 정리되는 듯 보였다. 때마침 같은 해에 줄리아노의 형이었던 조반니가 로마에서 교황님(레오 10세)이 되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겹경사였다. 그 해에는 그러니까 큰 경사가 많았다.

게다가 못난 피에로 이후 20여년의 공화정 시절동안 서기장과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마키아벨리 선생이 그의 사상을 메디치가에 헌정하여 새시대의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도 바로 같은 해였다. 새로운 동력에 방향타까지,이제 피렌체는 다시 일어설 일만 남았다. 일어설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 호재는 5년을 채우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내 나이 스무살때, 쥐죽은 듯 평화롭게 보이던 세상은 아버지의 예언같은 걱정대로 역사 이래 없었던 빅뉴스를 터뜨렸다. 내용인 즉슨 교황님께서 로마의 베드로 성당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벌부(대사)를 발행했는데 저 윗동네에 사는 성직자인지 교수인지 하는 마틴 루터라는 인물이 뚜껑이 열려서 교회 여기저기에 대자보를 붙이고 다녔단다.

그런데 그 메세지가 2주만에 온 땅에 퍼지면서 난리가 난 것이다. 교황님도 화가 단단히 나셨고 그를 파문하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이 대자보 내용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썩거렸다는 거다. 불현듯 사보나롤라가 20년전 내렸던 경고가 떠올랐다. 그는 진짜로 신이 보낸 선지자였을까 아니면 사탄의 아바타였을까? 그런데 지금 그보다 훨씬 센 사람이 등장하다니, 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보나롤라는 고작 우리 나라만을 들썩이게 했지만 북쪽 나라 루터의 대자보는 온 땅을 뒤흔들었다. 이러다 같은 믿음의 후손들끼리 또다른 십자군전쟁을 치루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 참에 신이 진짜로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판결문을 들고 내려와 누가 옳은지 망치질 세번만 해주고 사라지셔도 좋겠다 싶었다.


난 한때 이 땅과 이 시대에 태어나게 해 준 신께 무척 감사했던 적이 있었다. 내 주변에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장인들이 하도 많아서 말도 안되는 작품들을 실컷 볼 수 있었음을 감사히 여겼었다. 천국에서 인테리어를 담당했던 양반들이 환생을 했나 싶을 정도였다. 듣자하니 인간사에 이런 기술자들이 이렇게 많이 한 시대에 쏟아져 나온 건 처음일 거라 말들을 했었다. 그러니 내 고향 피렌체에 신이 특별한 은총을 내린 건 아닐까 적잖이 믿고 싶었다. 그런데 요샌 생각이 좀 달라졌다. 매우 혼란스럽다. 이게 천국인지 지옥인지, 우리가 세상의 중심인지 아닌지, 그동안 교회로부터 배웠던 많은 이야기들이 정말 맞는 말들인지 자꾸 의심이 반복된다. 


인간능력의 한계를 넘어 신의 대리인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윗세대의 수많은 능력자들은 우리 피렌체의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요새 내 또래 장인이라는 사람들의 그림을 보면 천재들이 다 어디로 갔나 의심이 들 정도다. 귀족의 저택내부를 청소하는 친구 뻬삐노는 저택 안에서 궁정화가들을 종종 마주친다. 나와 동년배나 다름없는 로쏘 피오렌티노씨나 폰토르모씨의 버려진 스케치도 수없이 보았다 했다. 뻬삐노가 들려주는 비밀에 싸여진 귀족들 뒷담화는 우리 작업장 저녁식사의 주메뉴거리였다. 요새 실내벽을 장식하는 그림은 어떠냐 물었더니 성인의 얼굴이 형체도 불분명하고 몸매도 삐딱하고 뭔가 비례도 안맞고 색깔도 영 칙칙해 보인다 했다.

성인들 초상뿐 아니라 귀족 초상화들도 어딘지 모르게 다들 표정들이 자신감도 없고 우울하기 짝이 없단다. 막말이지만 차라리 내 그림을 궁정에 몰래 걸어놓아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라 했다. 뻬삐노는 또 연회음악에서 부르는 노래도 말이 앞뒤가 안맞는 거 투성이라 했다. 알고보면 다 속물스럽고 저질스런 뜻인데 거기에 무슨 고상한 의미가 있느냥 혹은 종교적 가르침이 있느냥 애매모호한 가사들 천지라고 했다. 그의 말을 가만 듣자하니 음악이나 그림이나 갈 곳 잃고 해메는 지금의 시대와 아주 닮아있었다.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궁극의 아름다움이라며 입이 닳도록 찬양하던 비례와 엄숙함의 깊이는 과감히 버리지도 못하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디자인을 덧대는 잔재주가 난무하고 있다. 누구는 가볍게 변화를 주는 것도 보기 좋다지만 난 의미없는 잔재주인 것 같아 영 불만이다. 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요새 그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많단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피오렌티노씨도 폰토르모씨도 정신분열 증세가 다분하다고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종교적 거룩함도 천재적 테크닉도 없어보이는 그들은 그러면서도 먼 미래에 자신들의 비현실적인 표현들이 인정받는 시대가 도래할 거라 말하고 다닌단다. 아름다움과 한참 거리가 먼 그림들이 인정받는 시대라니, 그건 또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지옥이 오기라도 한단 말인가?…


윗세대 천재들의 신의 경지에 이르른 능력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이제 더 이상 신선한 게 없고, 그렇다고 그 위대한 철학적 예술적 깊이를 폄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자니 교회가 무섭고… 종교에 대한 미련과 세속에 대한 욕망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 내가 지금 사는 시대가 이런 게 맞다면 피렌체는 더이상 신의 간택된 나라가 아닌 것일까?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마틴 루터의 대자보 이후 30여년이 더 지나
교황은 교회의 분위기를 재정비하기 위해
트리엔트 공의회를 20여년간 지속한다.

 그리고 공의회가 모두 끝난 후
또 다시 100년이 더 지나
세상은 '충격'과 '허무'로 가득했던 우리시대의 이념을 ‘매너리즘’이라 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상해 보이던 그림은
300년도 더 지나
훨씬 더 이상한 스타일로 재탄생하여 달라진 세상을 증거한다.
그 정신분열증 예술가들의 헛소리 예언이 진짜 현실이 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날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