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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 3

단편소설

1650년경 신성로마제국의 어느 도시, 나는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고 성장하다가 스무살때 부모를 모두 여의고 고아원으로 보내져서 자랐다. 그곳에서 몇년을 보내던 중 자식을 잃은 어느 하층민에게 양자로 넘어가 지금까지 사는 중이다. 나같은 사람들은 그 수는 많지 않으나 허다했었던 문맹의 하층민들이 세상에 눈을 뜨는데 일조하게 된다.


부스럭 소리에 잠을 깼다. 창 덧문 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전혀 없는 걸 보니 아직 컴컴한 새벽이다. 어머니께서 또 외출중이신가보다. 나는 덜 깬 목소리로 소용도 없을 군소리를 건낸다.


“엄니, 새벽기도?”


“그려”


“위험한데 그냥 집에서 하시지…”


“이럴 때일 수록 정성을 들여야지 인석아, 너같은 녀석들 정신차리라고 신께서 더 화내시는겨.”


“에이 엄니, 요새 시대가 어느 시댄데 신을…”


“시대는 무슨 얼어죽을… 니들은 그래서 안돼.”


“엄니, 제작년에 전쟁 끝나고 조약 맺었다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이젠 칼뱅교도 이단취급 안받아요, 그리고 우리 신성로마제국도 이제 도시마다 군주님께서 알아서 주권행사 하는 세상이라니까요.”


“아이고 이놈아, 신도 없고 황제도 없으니 세상 참 잘도 돌아가겠다, 말세여 말세… 잠이나 더 자 인석아!”



배움이 전혀 없는 인생을 사셨던 어머니지만 당신의 넋두리엔 일면 일리가 있었다. 말이 ‘신성로마제국’이지 이젠 더이상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스럽지도 않으며 ‘제국’도 아닌 나라가 된 것이다. 본의인지 알 수 없는 말을 그렇게 던져놓으신 어머니는 오늘도 위험속으로 사라지셨다. 말려봐야 소용 있겠는가, 벌써 6개월째 하루도 빠짐없이 저러신다.


그런데 신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왜 신은 아버지를 벌하셨을까? 아버지는 동료들 가운데서도 가장 신실한 분이셨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헌금을 과분하게 꼬박꼬박 내셨었다. 그리고 매일 밤, 긴 시간의 기도를 빼먹지 않으셨다. 집안의 행복을 바라는 이기적인 기도도 아니었다. 욕심많은 세상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길 바란다는, 그저 당신의 뜻을 잘 몰라 따르지 못함에 자비를 배풀어 달라는 내용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아버지도 결국 세상을 뜨셨다.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아들인 나는 일주일 내내 서서히 손발로부터 온 몸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가슴이 무너졌다. 평생을 신앙심 하나로 사시며 나를 입양하셨던 아버지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다니, 그럴 순 없는 것이었다. 어제는 아버지의 절친인 옆집 아저씨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뜨셨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지난 한달동안만도 마을에서 백여명 넘게 죽어가는 중이다. 이러다 죄다 죽게 생겼다. 누구는 그걸 신의 형벌이라 하고 누구는 사탄의 저주라 하고 누구는 그냥 역병일 뿐이라고 한다. 그럴 줄 알았다. 신의 뜻인지 사탄의 뜻인지 역병인지 자신들 편한대로 결정한다. 그저 약해빠진 스스로를 더 위로해 줄 수 있는 관념을 택할 뿐인 게다.


흑사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미 300여년 전이었던 1300년대 중반, 지금보다 훨씬 끔찍한 때가 있었다 한다. 신앙심이 지금보다 훨씬 깊었던 그 시절엔 사탄의 형벌이나 역병이 아닌 신의 심판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흑사병 이전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전례없던 추위와 기근 때문이다. 폭우도 잦아 강이 범람하기 다반사였고 폭풍과 폭설로 인한 추위와 악천후로 연이은 흉작이 발생했었다. 식량값은 급기야 5배 이상 폭등했고 영주와 기사들은 하층민들의 비상식량마저 강제로 빼앗아갔다.

인간은 극한 상황에 몰리면 그저 동물일 뿐이다. 길거리에 널브러진 배설물을 먹는 건 일상이었고 심지어 시체를 잘라 구워먹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 시절 사람들은 지금보다 위생관념이 더 없었다. 문둥병자들이나 죽은 사람들을 만졌던 예수는 몸의 청결보다 영혼의 순결을 강조했었고 그 뜻을 따르는 것이 곧 신앙의 척도이며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 깨끗할 리 없는 사람들의 몸뚱아리에서는 냄새가 진동했었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니 면역력이라는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십자군 전쟁 이후 실크로드를 타고 온 흑사병은 연이은 혹한기 대기근을 틈타 순식간에 세상을 집어삼켰다. 그러기를 무려 7년, 모든 나라는 집단맨붕에 빠졌다. 남쪽의 교황청부터 북쪽의 영국까지, 세상 절반의 사람들이 몰살당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흑사병에 걸린 사람만 죽는 게 아니었다. 여자들은 귀신에 잘 들린다 하여 억울하게 전염병의 원인으로 여겨져 화형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지금도 억울하게 지목되어 누명쓰는 경우를 ‘마녀사냥’이라 하는 걸 보면 근거없는 헛소문은 아닌 듯 싶다. 신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덧 신에 대한 야속함과 회의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천년을 굳건했던 신에 대한 믿음은 그렇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50년, 죽어야만, 아니 죽더라도 가기 힘든 천국이 아닌 이땅에서의 지상낙원을 꿈꾸는 이야기들이 세상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도시에서 끝나고 말았을 이런 수다꺼리는 50년된 인쇄술 덕분에 성벽을 넘고 국경선을 넘기 시작했다. 저 먼 땅 영국의 토마스 모어가 지상낙원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 바로 다음 해, 우리 신성로마제국의 루터 선생은 카톨릭을 분열시키는데 선봉장으로 나섰다. 천년을 지탱하던 거대한 강둑에 구멍을 뚫은 것이다. 그로부터 겨우 5년 후, 심지어 가진 건 신앙밖에 없었던 우리같은 농민들도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층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건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인 거다. 무엇이든 시작이 어렵지 한번 선례를 남기고 물꼬가 터지면 유행처럼 번지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층민들의 동요는 저 멀리 로마 교황청에까지 소식이 전달됐다.  베드로성당 초반공사를 한참 진행중이었던 교황청은 빠르게 변하는 민심을 다시 한번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너져가는 교회의 위신을 되찾게끔 하려면 성당 내부를 어떤 디자인으로 꾸며야 하는 건지 의견이 분분했었다. 일각에선 교회가 먼저 순수했던 과거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며 천년전 수도원 스타일을 원했던 성직자들도 있을 정도였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지속되던 20년동안 교황은 분분하던 의견들 속에 두마리 토끼를 다 잡기를 결정한다. 교회법은 더욱 엄중하게 그러나 교회는 더 화려하게… 성당의 내부조차 과거로 회귀하여 소박해지는 건 교회의 힘을 어필 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낼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리하여 베드로성당의 중반 이후 내부공사는 그 화려함으로 교회의 힘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자금은 충분했다, 면벌부로 모은 돈이 있었으므로...


농민들의 반란은 곧 진압됐지만 이후엔 왕과 농민들 사이에서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던 영주들까지 왕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영주들의 반란은 곧바로 시대의 트랜드가 되어 온 땅으로 퍼졌다. 처음엔 종교vs종교였던 싸움이 이내 교황vs왕, 왕vs영주, 영주vs영주의 싸움으로 확대되어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카톨릭 천년 내내 없었던 국제전이 시작된 것이다.

전쟁이 계속되는 30년동안 가난하고 자식없는 집안의 양자였던 나는 다행이 군대에 끌려가지 않았고 전쟁터가 아닌 생존의 터전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재확인하는 뉴스들을 몰래나마 접할 수 있었다.  

교회의 칸타타는 흔들리는 신앙심을 붙잡으려 애쓰는 가사들이 탄생하기 시작했고 무반주 교회합창이었던 모테트는 아예 마드리갈로 변화되어 일상을 노래하기 시작했으며 당연히 그 일상의 주인은 더이상 신이 아닌 ‘나’와 ‘자연’이었다. 새로이 건축되는 성당양식들에 대한 고민은 교황청의 것만이 아니었다. 과거로 회귀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는 우리 신성로마제국의 고민이기도 했다. 그러나 건축 테크닉을 절정에 올려놓았던 피렌체의 돔 기술을 당장 재현시킬 능력자도 없었고 그보다 작게 만들어봐야 자존심만 상할 일이었다. 그 이전의 고딕양식도 덩치가 커지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천정의 종적 횡적 압력을 석재기둥과 허약하기 짝이 없는 유리벽이 나눠서 지탱해야 하니 아무리 이전 스타일이라 해도 만만한 기술이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는 종교분열과 전쟁의 회오리 한복판에서 수백년을 보내다 보니 뭐 하나 제대로 하지도 못할 정도로 국력이 쇠약해졌다. 300여년 전 이미 프랑스에선 노틀담에 거대한 고딕을 완성시켰지만 우리는 쾰른에서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공사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공사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교황청을 따라하긴 싫지만 신앙심이 약해지는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는 건 구교에게든 신교에게든 마찬가지로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결국 내린 결론은 베드로성당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스타일이었다.

내부뿐만 아니라 성당의 얼굴인 파사드조차 곡선처리를 시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부벽화도 변했다. 신이 창조한 밝은 천국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꼭 전해야 하는 메세지에 해당되는 부분이 아니면 죄다 어둠침침한 색깔 투성이었다. 언젠가부턴 천사들 얼굴을 죄다 전쟁고아처럼 그리는게 유행이더니 이젠 색깔만 보면 성경이야기가 아니라 지옥이야기를 그린 착각이 들 정도다. 성인의 모습도 이젠 교회가 원하는 모습이 더이상 아니었다.

머리는 후광 대신 대머리가 자리를 잡았고 얼굴에 주름도 자글자글 하다. 그모습은 분명 하층민에 불과한 나의 미래 혹은 흑사병으로 죽었던 아버지나 옆집 아저씨와 똑같이 생긴 모습이며, 더이상 교회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살면서 직접 보고 경험했던 모습들이다. 그리고 그 성인들은 더이상 근엄하게 가부좌를 틀지 않고 종일 노동하는 하층민처럼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내부장식용 조각들도 변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옛날 세속이 춤을 췄던 헬레니즘이 재탄생했나 싶을 정도다. 운동성을 표현하는 것은 분명 시대의 산물이다. 정체돼있던 신앙보다 자유로운 주체성의 욕망인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신성로마제국이 배출시킨 위대한 케플러 선생도 이미 오래전 행성의 운동에 관한 새로운 이론으로 세상을 들썩이게 했다. 이 땅은 움직이지 않는다 고집하던 교회이론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 중이다. 20여년 전엔 저 남쪽 갈릴레이 선생이 재판장에 끌려갔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제 과학은 세상의 수면으로 나오고 있고, 반면 가라앉고 있는 교회는 과학을 짓누르려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난 느낀다, 세상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하고 있음을…

흑사병으로 수많은 존재들이 이유없이 죽어나가고, 전쟁은 서로 자신들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며 죽이고, 나는 그와중에 죽지않아 살아남고, 믿어왔던 천년의 신앙은 죽어가고, 난장판인 이곳이 아닌 저 하늘 위에서 운동중인 수많은 별들엔 우리가 모르는 엄청난 비밀이 있을 것 같고… ‘나’는 지금 어디에 어떤 의미로 서있는 것일까? 어머니는 이런 나를 보며 또 쓸 데없는 고민을 한다고 하시겠지만 존재에 관한 고민은 내가 친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지내던 어느 순간부터 길어졌다 짧아졌다를 반복하며 운명처럼 내 곁을 붙어다니던 그림자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꿈같은 소식을 들었다. 옆나라 베이컨 선생의 책 ‘앎의 새로운 도구’와 데카르트 선생의 책 ‘방법서설’을 고아원 원장님께서 몰래 입수했다는 소식을 간밤에 들은 것이다. 잠이 올 리 없었다. 온 밤을 뜬눈으로 뒤척이다 어머니가 새벽기도를 나가시기도 전에 일어나 부랴부랴 옷을 입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주무시는 어머니의 뒷전에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엄니,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나는 발에 불이 나도록 뛰었다. 뛰던 순간만큼은 혹시라도 흑사병에 감염되지 않을까 싶은 두려움조차 없었다. 정신이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육신이 살아있는들 무슨 소용이더냐 대뇌이며 죽어라 뛰었다. 그리고, 고아원에서 책을 받아넣은 순간엔 나도 모르게 이렇게 외쳐버렸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내던졌던 신의 존재를 나도 모르게 찾다니… 원장님께는 감사의 인사도 건성이었다. 멍한 기분도 잠시, 돌아오는 길에도 죽어라 뛰었다. 이젠 혹여 병원균이 나를 쫒아올까 두려웠다. 이 책들을 못읽고 죽으면 사탄의 대리인이라도 자처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오셨는지 이불을 개놓은 채 침대에 누워계셨다. 난 서둘러 다락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놓여져있던 낡은 고아원 성경책을 치우고 그 보물들을 펼쳤다. 감격스런 첫장을 읽고있는데 문밖에서 어머니가 날 큰소리로 부르셨다, 뭔가 불안한 감정과 울분이 섞인 목소리였다. 느낌이 쎄~했다. 순간, 앞이 캄캄해졌다. 문을 열고 마주친 어머니는 펑펑 울고계셨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당신의 손가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난 그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천년을 진리로 여겨지던 것이 무너지던 그 시대, 그 고아출신은 또다른 진리를 찾으려 많은 책들을 탐독했을 것이다. 그는 과연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그로부터 400년 가까이의 미래를 살고있는 지금의 우리들이 찾고자 하는 진리도 그 고아출신이 찾고자 했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진주는 진주인데 일그러진 진주가 만연했던 시대, 그래서 또다른 진짜 진주를 찾으려 또다른 여행을 시작하던 시대, 그 시대를 지금의 우리는 ‘바로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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