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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 Jan 28. 2020

#16. 하루 in japan

오랜만입니다. 최근 살아가는 하루 일상을 써 내려가 봅니다.

AM 04:57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 알람 소리는 여전히 정이 가지 않는다.

어제 자기 전 틀어놓았던 유튜브 화면은 "동영상이 일시 중지되었습니다. 이어서 시청하시겠어요?"라는 글귀와 함께 멈춰있다.


매일 아침마다 보게 되는 글귀지만,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동영상이 일시 중지되었어요. 이어서 시청하시겠어요?" 라던가

"동영상이 일시 중지되었습니다. 이어서 시청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더 자연스럽지 않나?


함박스테이크를 명이나물이 싸서 먹는 느낌이 드는 문구라는 생각을 하면서 출근 준비를 위해 1층으로 내려간다.


아참.. 알람 꺼야지..


나만 이렇게 설정해 놓고 사는 건 아니겠지....?

일본의 목조 건물은 아무리 신축건물이라고 해도 겨울에는 밖보다 안이 더 추울 때가 많다.

더군다나 2층 집은 밤새도록 차가운 공기가 몽땅 아래로 내려가버려서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갈 때마다 1도씩 내려가는 유니크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무려 일본 생활 4년 차를 향해 달려가는 내가 아니겠는가.

자기 전 새벽 4시 반부터 히터가 동작하도록 예약을 해둔 덕에 이제는 춥지 않은 아침을 맞이 할 수 있다.

더불어 올라가는 전기세는 잊기로 하자.


AM 05:50

출근 준비를 마치고 야후 날씨 앱을 켜서 날씨를 확인한다.

오후 2시쯤 비가 올 가능성이 있다고 예보에 나와있지만, 출퇴근 시간대에는 비가 오지 않으므로 안심이다.

지하철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게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서는 25분.

택시로는 15분.

버스로는 30분(???)

자전거로는 10분이다.


'6시 15분 구간 쾌속을 탈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면서 무료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놓는다.

도쿄에서는 보기 힘든  24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넓은 자전거 주차장이 우리 동네에 있다는 게 새삼 고마워진다. 


아침 6시경 지하철을 탄다고 여유 있는 출근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주요 역만 정차하고 다른 역은 그대로 지나쳐버리는 '구간 쾌속'의 경우에는 모든 역을 정차하는 '보통'보다 고작 5분 정도 일찍 도착할 수 있지만 거기에 타는 사람들은 2배가 넘는다.


그래도 자연스럽게 '구간 쾌속'을 타고 싶은 욕구는 무슨 근거인지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5분 > 짜부)


아침 6시 15분에서 30분 사이의 지하철을 타도 앉아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린지는 오래다.

앉아서 가기는커녕 짜부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게 더 현실적인 바람일것이다.


문득 일본인 친구의 대화가 생각이 떠오른다.


나 : 넌 출퇴근할 때 지하철에서 앉아올 수 있어?
그 친구 : 무슨 꿈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앉아서 올 수 있느냐가 아니라 짜부가 되느냐 안되느냐로 물어봐야지.


그나마 아침 6시 반쯤 타는 지하철에는 비교적 짜부가 덜 되는 자리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안심이다. 가끔 돼지꿈을 꾸는 날에는 자리가 있는 날도 한 달에 하루 정도는 있다. 그 돼지꿈을 두 번 정도 꾸는 날에는 자리가 없어도 다음 역에서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내리는 경우도 있어서 하늘에 감사하며 앉아 가는 경우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있다. (물론 옆에 앉은 아저씨의 입냄새가 너무 심한 경우는 서서 가는 편이 나을수도 있다.)


오늘은 역시 자리가 없지만 내가 선점할 수 있는 자리가 꽤나 많다. 

가장 가운데로 가서 백팩을 선반에 올린다. 가장 가운데에 서있으면 그나마 짜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 하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인간들의 본성이 그런 건지.. 대부분은 입구 쪽에 물려서 서있기 때문이다. 


전자책 리더기를 꺼내 책을 읽는다. 환승역인 아키하바라까진 30분 정도 걸리니 왕복 1시간 동안은 비교적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리디 북스에서 구입한 리더기와 아마존에서 구입한 리더기 두 대가 있지만 대부분은 한국 책을 읽는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에서 구입한 킨들은 무료로 일본 책들을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으나, 항상 자기 전에 보기 때문에 얼마 읽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린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환승을 위해 걷는다.

도쿄의 아침은 전 국민이 경보 대회를 하는 모양이다.


아침 지하철 역의 걷는 사람들의 평균 속도는 20KM/h 이상일지도 모른다.

가끔 전력질주를 하는 반칙도 한다.

한 사람이 그렇게 뛰면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뛴다.


왜?


떠나려는 지하철 안에서 창문에 얼굴이 눌린채 나를 쳐다보고 있다.

조금 전 거친숨을 내쉬며 옆으로 빠르게 지나쳤던 그 사람이다.


AM 07:20

회사에서 타임카드를 찍는다.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순도 100프로의 기계음이 나를 반겨준다.

우리 회사는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full flextime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물론 삶의 질(QOL:Quality of life)을 위해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는 업무 금지이다. 그 외의 시간에는 출퇴근이 자유롭고 하루 7시간 30분만 근무하면 된다. 정확히는 해당 달의 근무일 수 X 7.5시간만 근무하면 된다.


오늘 9시간 근무하고, 내일 6시간만 근무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


아침 7시 20분이지만 벌써 회사에는 4명 정도가 이미 출근해있다. 

대부분은 오전 10~11시를 넘겨 출근하지만, 영국인 친구인 "알렉스"의 경우에는 항상 오후 1시에 출근한다. 


집에서 직접 내린 커피를 들고 오는 날에는 바로 업무를 시작하고, 가끔 귀찮거나 약속이 있는 날에는 그냥 와서 스타벅스로 향한다. 

스타벅스의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Venti사이즈의 크기를 파는 커피숍이 이 근방에는 없기 때문이다. 


아침은 배가 고프므로 Venti사이즈의 커피가 필요하다.

 

회사 안에 있는 자유 업무 공간

대부분은 사무실에서 각자의 책상에서 업무를 하지만, 내 경우에는 프리 스페이스에 나와서 업무를 한다.

콕 틀어박혀 7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쭈그려 앉아서 하는 것보다는 이곳에서 서서 하다가 앉아서 하다가 소파에 기대서 하다가 하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 

건물의 한 층을 우리 회사가 모두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회사나 외부 사람과의 접촉도 없기 때문에 전용 카페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더군다나 음악 또한 멋대로 틀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아기가 아파서 쉬겠다는 다른 직원의 메일이 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가 답장을 한다.



이전 회사에서는 칸반(kanban) 형식으로 업무를 관리했다면, 이곳은 레드 마인(redmine)을 통한 티켓으로 업무를 관리한다. 리더나 담당자가 티켓을 만들어 업무를 요청하거나, 자신이 필요한 업무를 티켓으로 만들어 업무를 진행한다. 모든 티켓은 개발팀 전원에게 공개되어 업무 흐름을 보여주게 되며 이 흐름은 모두 메일로 보고가 된다. (덕분에 메일함은 꾸준히 매일 300통 이상씩 쌓이고 있지만..) 


딱히 정해진 형식은 없지만 3개월마다 회사 제품의 큰 업데이트가 있으므로 모든 업무 마일스톤은 3개월이 기준이 된다. 3개월짜리 스프린트를 가진 에자일 형식의 업무와 매우 흡사하게 진행된다.


난 어제 퇴근 전 미리 만들어놓은 티켓을 확인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PM 02:00

풀 플렉스 타임이기 때문에 정해진 점심시간은 없다.

그냥 배고프면 먹으러 가면 되기 때문에 되도록 붐비지 않는 시간인 2시 정도에 밥을 먹는다.

회사 입사 초기에는 항상 혼자 먹었기 때문에 (우리 회사 직원 중 95% 이상이 혼자 밥을 먹는다. ) 20분 정도 식사를 하고 남은 40분은 커피숍을 가서 책을 읽거나 공원 산책을 한다.


하지만 작년 가을부터는 영국인 친구 알렉스(Alex)와 일본인 친구 타이라(平)와 친해져서 3명이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세명 모두 햄버거를 매우 좋아하므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햄버거 집을 간다.


이 집 햄버거는 정말 걸작이다.
스튜를 먹기도 하고
회 정식을 먹기도 한다.


3명 다 일부러 맛있는 곳을 찾으면서 즐거움을 찾는 타입이라 음식 이야기를 자주 한다. 특히 타이라 같은 경우는 햄버거 집을 찾아다니면서 별을 매겨 정리하고 있을 정도로 마니아다.


이 두 명은 한국음식에 관심이 많아서 툭하면 한국음식 먹으러 가자고 조른다.

조만간 이 둘을 데리고 한국을 가야 할 것 같다. (실제로 2월에 가려고 계획까지 세웠었지만 비행기 값이 너무 비싸 잠시 미룬 상태이다.)


결국 이 둘을 데리고 일본에 있는 한국 요릿집으로.. [출연] 손 : 알렉스, 턱받이 : 타이라, 고기 쪽 손 : 직원분


PM 03:00

셋이서 수다를 떨면서 밥을 먹고 와서 양치를 하니 딱 3시다.

이제 퇴근시간까지 1 시간 남았다.

오늘 아침 고른 티켓의 업무를 굳이 오늘 마무리하지 않아도 되지만 되도록 끝내고 싶다.


카라사와에게 메일이 온다.

다음 주쯤 한잔 어때?


카라사와 씨는 58세로 우리 회사에서 나이가 두 번째로 많다. 

회사의 코퍼레이션 팀 리더를 담당하는 분이다. 

입사 후 가장 이야기를 많이 나눈 친구가 되었고, 한 달에 한 번은 꼭 같이 술 한잔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제는 한일 관계나 역사 이야기도 허물없이 나눌 정도로 편한 사이라 다음 주에 만나서 나눌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나와 카라사와 씨는 홋카이도 음식과 문화를 좋아해서 아마 이번에도 홋카이도 이자카야로 갈듯하다.


OK!라고 답장을 보내니 바로 일정을 공유한다.


일본 친구들은 항상 요렇게 일정을 공유한 단말이지..


PM 04:30

중간에 조금 문제가 있어 살짝 늦었지만 그래도 오늘의 목표치는 끝낸 듯하다.

7시쯤 출근한 타이라는 이미 집에 갔다. 오늘도 1시에 출근한 알렉스는 저 구석 소파에서 맥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30분 정도 업무를 더 했지만 상관없다. 오히려 나중에 일찍 가야 할 때 더 빨리 퇴근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나 부담이 없다. 


실제 1월 근무시간표.


메일로 [일일 업무보고]를 하고 돌아가면 된다. 

제목은 일일 업무보고 이지만 그것을 꼼꼼히 읽어보고 체크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 관리를 위해 스스로 정리하는 절차일 뿐이다. 

오늘 티켓을 완료했기 때문에 내일을 위해 2장정도 티켓을 만들어 놓고 가면 내일 업무 시작하기가 편하다.


4시 반에 집에 간다면 지하철도 비교적 붐비지 않고 아키하바라에서 집까지 앉아서 갈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마주친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오늘은 책 말고 유튜브로 영화나 봐야겠다. 작년에 소프트뱅크를 해지하고 바꾼 Biglobe는 유튜브를 볼 때 사용하는 데이터는 무제한 무료기 때문에 부담도 없다.  

덕분에 통신료가 한달에 6000엔에서 2500엔으로 줄어들었다.


good night


집에 와서 씻고 저녁밥을 만들어 먹고 나면 대충 정리하면 오후 7시쯤 된다. 

지난 주말 사다놓은 400g에 350엔짜리 돼지고기팩 2개 중 1개를 꺼내 제육볶음을 해서 먹었다.

일본에서의 상추는 비싸고 상태도 썩 좋지 않기 때문에 나는 샐러드잎(サラダ菜 : 양배추 일종)을 사서 쌈을 싸먹는다. 가격도 싸고 향이나 식감이 훨씬 훌륭하다.

8시까지 사촌동생과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면서 낄낄거리다가 동네 슈퍼에서 사 온 밀크 푸딩을 손에 쥐고 2층 각자 방으로 들어간다.


10시까지 독일어 공부를 하거나 토이 프로젝트를 만지작거리다가 침대 속으로 들어가 프로젝터를 켜고 유튜브를 틀어놓는다. 킨들을 켜고 일본 서적을 읽지만 어느 순간 기억을 잃는다.


동영상이 일시 중지되었습니다. 이어서 시청하시겠어요?





꽤 오랫동안 이곳을 방치해 둔 것 같습니다.

바쁘거나 정신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사실은 4~5개의 글을 이미 써놓은 것이 있습니다. 

다만, 당시 한일 관계가 꽤 좋지 않았고 써놓은 글이 이직에 대한 이야기와 일본의 한국계 회사에서 잠깐 느낀 부정적인 글들이 조금 섞여 있었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달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올리지 않았습니다.


글을 세심하게 써 내려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칫하면 한국계의 회사들을 비난하고 일본 회사의 좋은 점만을 표현하는 모습으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컸습니다.

애매모호한 자신의 신념으로 내뱉은 글들이 읽는 사람에게 왜곡되어 해석된다면 차라리 전달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4년 차로 접어든 일본 생활은 여전히 새롭습니다.

평소에 가졌던 일본에 대한 고정관념이 뒤집어지는 경험도 많이 했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을 보는 방식도 많이 풍부해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현재 근무하는 회사에는 한국인이 저 한명뿐인터라,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인 친구들이 걱정을 많이 해주었고 덕분이 더 많은 친구들이 생겼고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 좋은 일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이 곳에서 가끔은 기분 나쁜 일들이나 갈등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저는 40년 동안 살았던 한국생활보다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신칸센을 타고 아오모리(青森)에 가면서 2000엔짜리 도시락도 먹으면서 호사도 누리기도 하고, 새해 매년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에 가서 소원을 빌기도 하면서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써 내려가고 싶은 글들은 참 많은데 손이 잘 안 움직이네요. 하하. haha. ハハ

꾸준하지도 않은 글에 라이킷 눌러주시고 구독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요새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시끌시끌합니다. 

항상 건강 조심하세요. 건강이 재산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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