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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 Nov 06. 2020

[D-2] 작별 준비

이사 준비 완료.

이삿짐센터 이야기


지난달 (10월 7일) 이삿짐센터와 계약을 했다.


정가제가 일반적인 일본에서 흔하지 않게 쇼부(? : 가격 흥정)를 봐야 하는 것들이 몇몇 있다.

그중 하나가 이삿짐 센터인데, 같은 거리에 같은 짐으로 이사를 해도 이삿짐센터마다 이삿짐 가격이 다르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뭐 일반적이긴 한데 일본도 똑같은 흥정을 해야 한다는 게 의외로 나에게는 위화감이 들었다.


나의 경우는 꽤 장거리의 이사이기 때문에 가격에 꽤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치바 카시와에서 홋카이도 삿포로까지의 이송 거리는 대략 1100KM이다. 

더군다나 나는 시대에 역행하는 맥시멀 리스트(maximalist)를 지향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 짐이 매우 많다.

사실 물건을 이것저것 사는 것보다 버리지 못하는 병에 걸려 있어 쓸데없는 짐들이 많다.


그런 관계로 이사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일단 여기저기 알아본 이삿짐센터 중 평판이 좋은 4개의 회사를 골라 전화를 걸어 견적을 신청했고 1개의 회사는 전화로 견적을 받기로 했으며, 나머지 3개의 회사는 직접 방문하여 견적을 받기로 했다. 


A회사 : 전화로 집에 있는 주요 물건을 하나하나 알려준 후 받은 견적은 19만 엔
B회사 : 방문 후 받은 견적은 37만 엔 (3톤 트럭 + 자가 포장)
C회사 : 방문 후 받은 견적은 40만 엔 (4톤 트럭 + 자가 포장)
             단, 지금까지 앞으로 견적 받을 회사들을 취소한다면 27만 엔
D회사 : C회사의 사탕발림으로 인해 견적 취소


A회사의 경우는 보통 전화로 낮은 가격으로 책정 후, 이사 당일에 트럭이 모자라다는 핑계로 돈을 더 받는 식으로 운영하는 전형적인 타입이라고 한다. 

이외로 골치 아픈 타입이라 피하는 것이 좋다고들 한다.


B회사의 경우는 꽤 유명한 회사였는데 담당자가 의욕도 크게 없었고 가격 흥정도 아예 하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 전화가 와서 조금은 흥정하려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위의 C회사가 워낙 가격을 내려버려서 포기한 듯 보였다.


B회사 : 지난주 견적 작성한 XXX라고 해. 결정은 했어?
SEON : 응, 그 이후로 방문한 회사가 제시한 가격이 마음에 들어 계약하려고.
B회사 : 그 회사가 제시한 금액이 얼마야? 30만 엔?
SEON : 아니
B회사 : 25만 엔?
SEON : 아니
B회사 : 아.. 우리에겐 무리야. 
SEON : 응 안녕.


C회사의 경우도 일본에선 상당히 유명한 회사인데도 가격 흥정에 꽤 공격적인 모습으로 어떻게든 자기 회사에서 이사하게 만드는 모습이 의외로 신기했다.


C회사의 경우는 견적 신청을 할 때 
C회사 : 견적하러 갈 건데 언제쯤 괜찮아?
SEON : 내일 오후 4시 어때.
C회사 : 혹시 그전에 다른 회사들도 견적 짜러 오는 건가?
SEON : 응, 일단 두 회사가 오기로 했어.
C회사 : 그 두 회사가 오는 시간에 나도 같이 견적 짜줄게. 그때로 하자
SEON : 싫어.
C회사 : 칫..


일본에서는 블로그나 유튜브에 이삿짐 센터로부터 받는 견적을 최대한 싸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연재하고 업로드할 정도로 각 회사들의 경쟁이 꽤나 활발하게 일어나는 모양이다.

아는 일본인 친구도 되도록이면 그 회사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놓고 견적을 짜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해주긴 했지만 내 경우는 뭔가 같은 철장 안에 모아놓고 닭싸움을 시키는 것 같아 크게 내키지 않았다.


일단 결과적으로는 40만 엔으로 받았던 초기 견적 (뭐.. 일단 크게 부른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전에 조사했던 내용으로는 대충 35만 엔에서 40만 엔 사이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수긍을 한 상태였다.)으로 부터 27만 엔까지 내릴 수 있게 되어 만족스러웠다.


코로나로 현재 직장을 잃은 상태입니다.


좀 더 깎아보자.

그 돈으로 초밥을 한 접시 더 먹을 수 있잖아.


같이 지내고 있는 사촌 동생이 흥정을 한다.

한참 고민을 하던 그 이삿짐센터 영업 사원은 25만 엔을 부른다.


C회사 : 그럼 이삿짐 싸는 시간을 미지정으로 하고, 짐은 너네가 싸는 것을 조건으로 25만 엔에 하자                   대신 이후 다른 회사로부터 견적을 받지 않는다고 약속해줘.
             이것도 사실 팀장한테 보고 해야 해서 될지 안될지도 몰라.


아.. 뭔가 이케저케 하면 더 될 것 같은데..

마음속에 악마는 20만 엔으로 내려보자고 속삭이기 시작한다.


사촌동생 : 사실 저 오빠가 워낙 너네 회사를 좋아해서 웬만하면 너희랑 계약을 하고 싶어 하는데 
                 뭔가 가격대가 마음에 들어하는 거 같지가 않아.
                 저 오빠는 20만 엔을 생각하고 있는데 현재 가격에서 조금만 더 내려주면 내가 오빠를
                 설득할 테니 어떻게 안될까?
C회사 : 그래? 음.... 그럼.... 음... 혹시 좋은 일 같은 거 없어?
             너네 둘 중에 곧 결혼을 한다던가, 좋은 직장으로 취직이 되어 삿포로로 가게 된다던가..


그리고 사촌동생은 말한다.


이번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었어. 좋은 일 따위 칫...


그리고 이사 비용은 23만 엔에 계약하기로 했다.


실제로 관광업에 종사하던 사촌동생은 불매운동 + 코로나로 지난 3월 회사가 없어지고 현재까지 실직상태이다.


직장을 잃고, 2만 엔을 얻었다.


짜잔~


    그래도 남는 게 있는지 잘 먹고 잘살라고 선물까지 주고 가신다.


이 회사는 견적만 받아도 쌀을 준단다. 자세히 보니 이와테 쌀?! 아하?


덕분에 아직까진 큰 문제없이 이사 준비 중이며, 행정 처리를 포함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상태이다.

그리고 내일 이 모든 짐은 1100KM가 떨어져 있는 삿포로로 실려갈 예정이다.


1층 거실에만 이 정도.. 2층은 GoTo 지옥중


작별 준비


4년간 살짝 나사가 빠진 중년 한국인을 큰 문제없이 품어준 이곳과 작별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귀찮음이 있다.


1. 일본 지방 이주 및 풀 원격 근무에 대한 회사와의 상담 (약 3번)

2. 후쿠오카, 아오모리, 니가타, 홋카이도중 살 곳 결정

3. 홋카이도로 결정 및 회사에 통보

4. 회사에서 2번의 이사회 진행, 그리고 통과

5. 인터넷으로 삿포로 이주 지역 검색

6. 삿포로로 가서 집 결정

7. 3번의 심사, 그 후 계약 ( 초기 비용 송금 : 30개월 할부로 할까 고민 중)

8. 이삿짐 센터 견적 신청(이때 견적 페이지에서 전화번호 입력하면 하루에 30개 회사에서 60통 이상씩 전화가 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9. 닭싸움. 그리고 이삿짐 센터 결정 ( 계약금 송금 : 역시 30개월 할부로 할까 고민 중)

10. 50개의 빈 박스, 종이테이프 3개, 대왕 이불 보쌈 보자기 3개 수령

11. 이삿짐 정리

12. 삿포로로 갈 비행기 예약

13. 전출 신고 (카시와 시약소)

14. 가스, 전기, 수도 해약 신청 (따로따로!)

15. 이사할 삿포로 쪽 가스, 전기, 수도 계약 신청 (따로따로!!)

------까지 진행


16. 이삿짐 보내기

17. 집 청소

18. 타치 아이 (그동안 집을 별 탈 없이 썼는지 관리회사에게 검사받는 시간 + 돈 뜯기는 날)

19. 삿포로 비행기 탑승

20. 아직 계약한 집에 못 들어가므로 부랑자 생활

21. 드디어 입주

22. 입주 타치 아이 (별 탈 없이 잘 쓰라고 교육받는 날 + 잘못하면 돈 뜯긴다고 잔소리 듣는 날)

23. 이삿짐 수령 (3일 만에 위의 사진의 판다 박스 받는 날)

24. 이삿짐 정리

25. 전입 신고 (14일 이내 안 하면 할부 200개월 정도의 벌금 발생)

26. 통장 주소 변경 (직접 가서)

27. 우체국 주소 변경 (전출 이후 이전 집으로 도착하는 우편물을 삿포로로 포워딩 + 요건 인터넷 가능)

28. 신용카드 주소 변경

29. 회사 사원 정보 변경 신청서 작성

30. 회사 원격 근무 보안 관련 계약서 작성

31. 재류카드에 변경된 주소가 찍힌 사진 회사로 전달


아마 이쯤 돼야 지금 살고 있는 주소가 내 정보에서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별이 두렵고 너무 아파서 반려동물도 키우지 못하고 연애도 하지 않는 나에게 작별 준비라는 것은 썩 하고 싶지 않은 귀찮은 일이다.

또 다른 (그리고 내가 그동안 동경했던) 생활이 시작되는 기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걸 하기 위한 과정들, 기존 정보는 지우고 새로운 정보로 덧대어 써 내려가는 과정은 조금은 슬프고 가슴이 아려오는 일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키워왔던 강아지가 생을 다해 헤어지고, 이후 7일 동안 쉬지 않고 떨어지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기 시작할 무렵 그 아픔을 메워주기 위해 새로 분양받은 강아지와 만났을 때와 같은 심정일지도 모른다.


눈앞에 있는 새로운 강아지를 바라보면 마냥 귀엽지만 한동안 작별했던 강아지와 겹쳐 보이는 시간을 보내야 하고, 새로운 강아지와의 또 다른 정을 쌓아가기 시작해서 다시 내 가족이 되기까지 또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처럼.


그냥 일본 한 구석에서 꼴랑 4년 살아오다가 이사하는 것에 온갖 붙일 것은 다 가져다 붙이는 글로 보이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제 늙음이라는 단어가 현실이 되는 것만 같은 30대 후반에 넘어와 새로운 경험을 느끼며 살아갔던 4년의 이곳은 나에게 있어서는 퍽이나 특별했다.


그렇게 때문에 한동안은 4년 동안 나를 품어준 이 곳과 새로운 생활을 보여줄 그곳이 함께 공존하는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fin kasi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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