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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 Sep 09. 2023

#21. 세 번째 도약

4년 반을 보낸 회사를 뒤로하고 3번째 전직을 합니다.

about 1600 days


일본에 온 지도 2500일이 넘어갔습니다.

7년 가까이 되어가는 일본생활 중 4년 반정도의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던 직장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역마살이 가득한 본인에게 4년 반의 시간 동안을 같은 직장, 같은 부서에서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이 회사가 가지고 있었던 숨은 매력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느 회사처럼 세련되지도 않았고, 첨단 기술에 앞장서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팀도 아니었으며, 매끼 프랑스 코스요리를 먹어도 통장 잔고가 줄어들지 않을 만큼 많은 급여를 주는 회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생활 2500일 중 1600일 이상을 이 회사에서 보낼 수 있었고, 그동안의 시간은 제법 의미가 있고 즐거웠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이직을 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SEON : 이런 데이터량이라면 elasticsearch를 도입해 보는 것도 좋아.
회사 : 오키 해봐.


SEON : 각 서버의 데이터를 한 곳에 모으려면 Fluentd + KAFKA를 이용해 보는 건 어때.
회사 : 좋아. 정리해서 품의 올려줘


SEON : AP구조가 너무 집중되어 있어. 이참에 마이크로서비스를 도입해보고 싶은데.
회사 : 궈궈


SEON : 리모트 근무 제도를 도입할 생각은 없어? 된다면 삿포로로 이사 가고 싶은데
회사 : 다음 달부터 우리 회사도 리모트 근무를 도입합니다.


안돼.라는 말보단 해봅시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았던 회사였습니다.

덕분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제안에 의해 도입된 리모트 근무로 인해 어릴 적부터 동경했던 일본의 설국(雪国:유키구니)에서 살면서 계속해서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일 자발적 잔업을 하면서 250대가 넘는 서버(정확히는 클라우드 서버 인스턴스)를 만지며 설정하고 개발하면서 즐거운 업무를 보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과거형


예전부터 리모트 근무를 위한 툴을 서비스하는 회사였으므로, 3년 전 망할 역병이 유행하던 시점부터 매출은 급격히 늘어갔고, 회사도 꽤나 부유해졌습니다.

충실하게 준비해 왔던 상장도 눈에 보일 정도로 긍정적인 부분에서 많은 성장을 보였던 최근 3년이었습니다.

직원도 3배 이상 늘었고 회사의 규모도 첫 입사했을 당시와 비교해서 전혀 다른 회사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변화해 갔습니다.


하지만.

해봅시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점점 줄어가고 꼭 해야 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합니다.

아이디어를 내며 회의를 하던 분위기는 점점 지시 사항을 쏟아내는 자리로 변해갔으며, Role을 분산해서 위험도를 줄이고 권한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했던 분위기는 점차 몇몇의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폐쇄적이고 수동적인 환경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리모트 워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여러 제안들을 받으며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파격적이었던 리모트 근무 제도도 도입했던 임원들이 점점 직원들을 믿지 않기 시작하는 듯 일일이 보고 하도록 룰을 추가하더니 결국 지방 근무자들을 제외하고는 부분 리모트 근무 제도(주 2일은 출근, 나머지 리모트)로 바꾸게 됩니다.


여러 가지 기술 시도를 장려하면서 시도했던 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새로운 시도에는 심사가 필요하고 몇 단계를 거쳐야 진행이 가능하도록 규칙이 바뀌게 됩니다.

시도를 하게 되면 반드시 책임자 및 관리자를 붙여야 하고 그 위치는 임원들로 한정해 버립니다.

각자 서로를 신뢰하며 지내던 회사의 분위기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규칙을 만들어 통제하려는 분위기가 점점 짙어지며 저는 사직을 결정합니다.


2023년 3월


메일로 부서장들에게 메일을 보냅니다.

회사 규칙상, 퇴직 1달 전에 통보하고 그대로 퇴사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내가 담당하고 있는 시스템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인수인계를 최소 2달 이상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옛정도 있고 하니 넉넉하게 기간을 잡고 통보할 생각입니다.


이러저러해서 사직을 하고자 합니다.
2023년 7월 말까지 근무하는 것으로 하며, 연차 소화를 위해 실직적 업무는 2023년 6월 말까지로 할 수 있도록 조정해 주세요.


각 부서장들은 메일에 답장으로 면담을 요청합니다.


3명의 부서장들과 약 12회에 걸쳐 면담을 진행했고 스케줄상 7월 말까지 업무를 진행하고 8월에 연차 소화를 진행하기를 원하는 요청을 받아들여 8월 말에 퇴사를 하기로 결정됩니다.

회사 측에는 12월까지 근무하는 것으로 원했지만, 거절한 뒤 협의에 협의를 통해 8월까지로 협의를 했습니다.


SEON : 유감스러운 메일을 보내서 참 미안하네.
친한 리더 : 지금까지 너가 고생한 걸 알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해. 나도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라 너를 붙잡을 마음은 없어. 우리 잡담이나 하자고.


형식적으로 잡힌 리더와의 퇴사 재고 면담(퇴사..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래?라는 목적의 질척거리는 면담 제도 : 무려 3차까지 있었...)은 그냥 서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수다만 떱니다.

그 리더는 이 회사 창업 멤버임에도 불구하고 급변한 회사의 분위기에 불만이 많은 것을 보니 꽤나 힘든 모양입니다. 오히려 내가 상담을 해주고 있는 모습도 자주 연출됩니다.


친한 리더 : 회사는 알아보고 있어?
SEON : 응, 여러 회사들하고 면담 중이야.
친한 리더 : 괜찮은 회사로 들어가면 나도 좀 델꼬가.
SEON : 너가 일본사람이잖어. 너가 좋은 회사 가서 외국인인 나를 델꼬가야지. 여기 일본이야 임마.



3번째 이직 활동 : 을이 아닌 갑의 입장으로


퇴사 메일 이후 약 5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회사의 면접을 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충분히 많은 면접을 보고 최근 일본의 기업 트렌드도 느껴보고, 되도록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많은 부분을 충족시키는 기업으로 입사할 생각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일을 해야만 일본에서 살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영주권을 받거나 귀화하지 않는 이상) 적지 않은 압박감을 가져야 하는 게 사실이지만, 5개월 동안은 적어도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상태이고 그 5개월 동안 조건에 맞는 직장을 찾지 못한다면 내가 문제가 있거나 일본의 기업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므로 더 이상 일본의 기업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올해로 만 45세의 나이가 된 외국국적 늙은 개발자임에도 불구하고 비빌 수 있는 문고리는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약 7년의 얕은 일본 회사 경험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험과 더불어 시니어로써 충분한 대우를 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현재 직종과는 약간 떨어져 있는 직종에서도 충분히 고려해 주고 적극적으로 채용하려는 모습이 많았습니다.


다만 나이와 경력 때문인지 단순한 개발직보다는 관리직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 고민이 많았던 전직활동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되도록 골치 아픈 관리직은 맡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부분과 회사에서 원하는 부분을 절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포기는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직을 위해 스스로 정해놓은 조건은 이랬습니다.


1. 풀 리모트 근무 (필요에 따라 본사 출근은 OK)
2. 개발과 서비스 환경이 클라우드 환경이어야 할 것.
3. 관리만 하는 메니징 분야는 NOT OK
4. 사원의 나이대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회사여야 할 것. 
5. 자사 서비스 또는 컨설팅(아키텍처만) 업무가 메인이어야 할 것.
6. 영업이나 파견은 NOT OK
7. 일본 기업 문화를 가진 회사여야 할 것.

과거에 비해 바뀐 조건이 있다면 리모트 근무를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부분과 컨설팅 부분이 추가된 정도입니다.

삿포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삿포로의 회사도 충분히 입사가 가능했지만, 되도록 도쿄의 회사에 입사해 활동 반경을 최대한 넓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리모트 근무를 하면서 얻는 장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 장점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부분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내 근무 환경은 내가 만든다.  (스파게티 전선 좀..)


가끔 회사로 출근할 때는 일반석으로 예약한 비행기를 자비로 프리미엄석(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도 편도당 1~2만 원이기 때문에 출장당 대충 4~5만으로 비즈니스석으로 출근하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고.


ANA 프리미엄석으로 출근하는 삿포로 직장인


돈 들여서 워케이션을 한다고들 하지만, 뭔가 나는 굳이 일부러 하지 않아도 되는 느낌도 들고.

1박당 15만 원까지 회사에서 지원해 준답니다. : 도쿄 긴시초


거기에 출장비용이 하루에 5만 원씩 나오는데 굳이 포기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자사 서비스만 하는 회사에서 컨설팅까지 넓힌 이유는 일본의 IT파이 중 70%가 SI분야가가 차지하고 있으며, 단순히 파견으로 인식되는 SI가 아닌 기업 간에 수평적 입장에서 컨설팅을 하는 부분도 좋은 기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자사 서비스만 하는 회사가 무조건 트렌드에 맞는 개발 환경을 갖춘다던가 좋은 개발 문화, 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7년의 일본 생활동안 알게 되었고, 피라미드식의 몇 단계를 거친 하청 구조의 SI만 존재하는 게 아닌 것도 지인 일본인등을 통해 알게 되었던 부분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위의 조건으로 약 4개월 동안 구인 정보를 찾고 여러 회사와 면담을 가진 결과 50개 정도의 회사에 입사 지원을 하게 됩니다.


50여 개의 지원중 서류탈락은 6개였으며, 40여 개의 회사에서 최종면접까지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서류 탈락의 이유는 리모트 근무이기는 하지만 관동지역에 한해 살고 있는 근무자를 대상으로 한다던지, 곧 리모트 근무를 폐지할 예정이므로 도쿄로 와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면접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으며, 지원한 회사 모두 실제 출근을 하지 않는 리모트 근무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면접 형태도 단순히 캐주얼면담 - 서류 - 1,2,3, n차 면접 - 오퍼 면담 식의 정형적인 부분이 아닌 온라인 면접을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면접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1일 근무 체험을 통한 면접(실제로 급여도 줍니다.)이라던지, 온라인 화이트보드를 이용해 프로젝트 기획 면접을 본다던가, 온라인 툴을 이용해 페어 프로그래밍 면접을 진행하는 방식등은 나름대로 신선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캐주얼 면담을 포함한 면접의 회수는 약 150회 정도였습니다.

약 4개월 동안 거의 매일 약 2개 이상의 회사와 면접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예전 같았으면 고통스러웠을 법도 한데, 마음을 편하게 먹고 [안되면 어쩔 수 없지 뭐] 식의 스스로의 압박감을 지운 상태에서 진행을 했더니 꽤 재미있었던 경험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약 십 수개의 회사 중 한 개를 결정한 뒤 나머지 회사에게 입사 거절 연락을 해야만 했던 상황이 제일 고통스러웠습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리모트 근무 체제에서 기존처럼 출근하는 방식으로 많이 전환되는 추세이긴 합니다만, 반대로 도입 후 매출이 오르거나 효율이 오른 회사들은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되는 장점을 활용해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경우도 제법 있어 보입니다.


수많은 기업들과 면접을 보는 동안 교통비는 전혀 들지 않았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teams, 구글의 meet, Zoom을 이용해 대면 면접을 진행했고, 연락 수단은 구인 사이트인 green, 메일을 통해서 주고받았습니다.



2023년 7월
SEON님

담당자 00입니다.
이번에 대단히 기쁜 답변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연이 되어 정말로 다행입니다.

부디 우리 회사 (신규) 사업에 힘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메인으로 담당한 업무는 서버 개발자로 지내왔습니다.

이번에 이직을 하면서 클라우드 아키텍터로 전향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원은 약 1500명 정도로 지금까지 지내온 회사보다 규모가 큰 편이며, 규모가 큰 회사임에도 기본적으로 풀 리모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므로 지금까지 겪어왔던 여느 회사보다 보안에 대해서는 준비가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연봉도 제법 올라서 앞으로 가게 될 여행비용에 제법 많은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면접관 : 지금 회사에서 얼마 받는 중이야?
SEON : 100원 정도 받고 있어.
면접관 : 입사하면 얼마 받고 싶은 게야?
SEON : 130원에 맞춰줘.
면접관 : 그름 150원에 쇼부봅시다.
SEON : 사장님! 충성을 다하겠읍미다!


Good Bye ~not bad Bye~


그래도 일본 생활의 절반 이상을 함께 보내게 된 회사였고.

초기였지만 나의 노빠꾸 제안에도 가감 없이 지원해 주었던 회사였기에 뒷맛이 씁쓸한 퇴직은 되지 않아 그것도 그것 나름의 다행히 아닐까 생각됩니다.


7월 중순 이후 인수인계를 위해 10일 정도 도쿄에 가게 되었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환송회랍시고 술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하고, 매달 한 번씩 있는 리모트 회식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자유롭게 원격으로 술을 마시는 자리)에도 퇴직 이후에도 계속 초대를 해주기로 하는 등, 다들 웃으면서 퇴직을 축하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저 잔에는 [퇴직 기념!]이라는 글자가 세겨져있답니다.

팀에서는 후지산을 조각한 하이볼 잔을 퇴직 선물로 준비해 줘서 또 다른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이볼잔에 새겨진 글씨에 [00 회사 00팀 일동]이라고 쓰지 않고 [00팀 일동]이라고 써서 회사에 대한 소심한 반항도 희미하게 느껴져서 잔을 볼 때마다 피식피식 웃기도 합니다.


회사가 변하면서 실망감이 커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많은 기억에 남는 회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나쁜 안녕이 아닌 좋은 안녕이어서.



작가님이 마지막 글을 쓴 지 5xx 일이 넘었어요!

어느 날 브런치로부터 위와 같은 내용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글을 못 쓸 정도로 바쁘게 살진 않았습니다.

글을 쓸 여유가 없을 정도로 마음이 피폐해지지도 않았구요.


오히려 일하는 날은 근무시간이 14시간이 넘을 정도로 마음껏 일을 하기도 했고.

덕분에 야근수당이 월급의 절반이상이나 되는 금액을 받으며,

그 돈으로 홋카이도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동네에서 하는 픽사(pixar) 전시회도 가기도 하고 : 픽사중에서는 월-e가 최고임.
동네에서 열리는 마츠리도 구경 가고 (1년에 한 번 열리는 요사코이 소란)
홋카이도 끝자락도 가서 석양도 보고 : 키타미 사로마호
동네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 나카지마 공원
삿포로에서 제일 높은 호텔에서 자보기도 하고
끝이 없는 눈길도 걸어보고 : 오비히로
어릴 적 교과서에서만 봤던 두루미도 보러 가고 : 토카치카와

망할 역병시절 여행업이 죽지 않도록 일본 정부에서 단행한 제도는 너무나 파격적이었습니다.

평소 1박 1인당 20만 원이 넘는 고급 호텔을 3~4만 원에 숙박이 가능하기도 했고, 

아예 공짜로 호텔에 숙박할 수 있는 곳이 있었으므로 삿포로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나 달콤한 기간이었습니다.

작년의 경우는 1년 중 4개월 정도를 호텔에서 생활할 정도로 역마살을 마음껏 쏟아냈으며, 항상 관광객으로 붐볐던 지역도 너무나도 쾌적하게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망할 역병이 종식(?)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삿포로는 순식간에 예전 관광도시로 돌아왔습니다.

거리에 사람도 많아지고, 매일매일이 거의 축제, 이벤트가 열려서 그냥 걸어서 산책만 해도 볼거리들이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교통비나 숙박비도 예전으로 돌아오거나 더 비싸지긴 했지만 반대로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그 나름대로의 또 다른 매력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필 받아서 야근으로 달린 다음 달에는 두둑한 야근 수당이 들어와서 제법 고급 호텔이나 개인 노천온천이 딸린 료칸을 간다던지, 먹는 방법도 모르는 코스 요리도 먹어보면서 천 엔짜리 라멘보다 얼마나 맛있는가 의미 없는 분석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만끽하고 있는 중입니다.

일본 생활 7년이 되어도 아직도 매일매일이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서 일상생활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아주 적절하게 상쇄시키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회사가 점점 네거티브 쪽으로 느껴지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 상태에서 글을 쓰게 된다면 분명 다크 한 분위기가 풀풀 풍기는 내용으로 가득 찰 것만 같았고.

여행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된다면 내 멋대로 설정한 브런치 스토리의 주제와도 썩 맞지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에 미루고 미루다 보니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번 글은 결국 네거티브 한 부분을 불가피하게 써 내려가야 되는 상황이 되었지만 

현재 내 상태가 또 다른 스텝으로 변경되는 시점에서조차 글을 써놓지 않는다면 영영 이곳에는 들어오지 않을 것만 같아서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일만 집중하고 쉬는 날에만 여행을 가다 보니 결국 연차가 40일이 꽉 찬 상태에서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지난달말부터 8월 전부를 쉬고 있는 중입니다.

(쉬는 기간 동안 쓴 글이지만 현재는 이미 새 직장에서 생활 중입니다.)

일본에 살면서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실업자가 아닌 상태에서 쉰 적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냥 시간에 맡겨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올해는 홋카이도도 기록적으로 덥기 때문에 어딜 가는 것도 무섭습니다.

코로나 제한이 모두 풀린 삿포로는 거리에 사람들이 몇십 배는 늘었습니다.

이제 한산하고 평온한 삿포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북적북적한 삿포로도 꽤 매력이 있으니 그걸로 된 겁니다.


항상 이렇게 글을 쓸 때마다 다음글은 좀 더 자주 써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하지만 

이미 게으름 세포가 온 뇌에 퍼져있으므로 언제 또 쓰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직장에서 생활을 다시 시작할 테니 느끼는 부분들을 정리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테니 그때 또 만나 뵙겠습니다.


<추가 분>

이 글은 8월 초에 적어놨던 글이었습니다.

현재, 이전 회사는 40일의 긴 연차를 다 써버리고 퇴사를 했으며, 새 직장에서 무사히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입사 첫날에는 그래도 대면을 하고 싶다는 공지를 받고 며칠 전 또 도쿄를 다녀왔습니다.

마침 8월 31일이 이전 직장의 마지막 날이었고, 9월 1일이 입사날이었기 때문에 이전 직장에 PC도 직접 반납할 겸 찾아가서 작별 인사도 하고, 팀원들이랑 또 술도 한잔하고 잘 마무리했습니다.


새로운 직장도 아직은 감을 잡아야 할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지만 시간이 도와줄 거라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경험한 일본의 기업들과 차이가 많이 날 정도로 체계가 잘 잡혀 있는 부분이 많아서 적응이 된다면 그때 다시 한번 글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삿포로는 한순간에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해의 길이는 급격하게 짧아지고 있고 밤의 기온은 한자리 숫자로 가려고 전력 질주 중입니다.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고 다가오는 가을에 좋은 일들만 다가오길 바라겠습니다.


작별 인사와 첫인사를 동시에 했던 도쿄 출장에서 돌아오는 하늘 길 : 하늘과 구름사진을 계속 찍을 수 있어 행복하다.





대문 사진 출처 : https://kr.freepik.com/free-vector/hand-drawn-flat-design-people-waving-illustration_21559261.htm#query=bye&position=0&from_view=search&track=s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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