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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5. 2024

< 너에게 주고픈 아름다운 시(詩) >

< 너에게 주고픈 아름다운 시(詩) >    

  

                       해 헌(海軒) 강 일 송     


오늘 시집을 한 권 보려고 합니다. 시는 한 폭의 그림이기도 하고 한 곡의 노래이기도

하지요. 메마른 현대인의 삶속에 시 한편 읊조릴 수 있는 여유와 감성의 결이 남아

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집을 함께 보겠습니다.     

오늘 시집 중 4편 정도 고르고 시감상도 곁들여 보았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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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정 호 승(1950~)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정호승 시인은 1950년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고 1972년에 등단한

중견시인이지요.  그의 시 봄길을 읽다가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길이 끝나는 곳, 강물이 흐르다가 멈추며 새들이 날아가서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이 흩어져 사라져 버린 상황, 더한 것은 사랑마저 끝나버린

삭막한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봄길이 되고,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름길도, 가을길도, 겨울길도 아닌 봄길은 긴 어둠,

추위를 견디고 새로 피어나는 봄의 이미지를 말해주고 있지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많은 세상이라도, 스스로 길이 되어 주고, 봄이 되고, 사랑이 되어 주고

봄길처럼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아야겠다는 의지가 시를 읽고 생겨납니다.     

다음 시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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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하나 있었으면     


                            도 종 환(1954~)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 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은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 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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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는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의 시입니다.

‘벗’은 친구와는 약간 느낌이 다르지요. 뭔가 더 살갑고, 뭔가 더 애틋한 것이 벗입니다.

시인은 마음이 울적할 때나 마음이 어두워 올 때,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허할 때

꼭 넘어야 할 고개를 못 넘고 지쳐 있을 때,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가야만 할 때.

벗이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살이는 대부분 비슷하여 누구나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힘든 일을 겪고, 고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하고 억울한 일을 맞이합니다.

이 때 내 편이 되어 주고, 나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고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힘이 되는

벗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벗 하나 있으면 인생 잘 살아왔다는 반증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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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행    

 

                          정 호 승(1950~)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마음의 설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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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다 보면 한 채널 건너 홈쇼핑이고 홈쇼핑 중 유난히 여행상품이 많습니다.

현대인들은 여행을 하나의 휴식이자 힐링으로 생각하지요.  시인은 여행을 사람이 할 수

있는 곳은 마음 뿐이라고 합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사람 마음만큼 알기 어려운 곳도 없고,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변하여 본인도 자신의

마음을 알기 어렵지요. 그러니 독수리에 쪼아먹힌 내 심장이 먼지가 될 때까지의

억겁의 시간이 흘러도 마음은 영원한 오지입니다.


세상사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못 할 일도 없고, 안 될 일도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진짜 여행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다음 시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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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함에 대하여     


                           도 종 환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아련한 향기가 스미어 있다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살구꽃 위에 내린

맑고 환한 빛이 들어있다

강물도 저녁햇살을 안고 천천히 내려갈 땐

은은하게 몸을 움직인다

달빛도 벌레를 재워주는 나뭇잎 위를 건너갈 땐

은은한 걸음으로 간다

은은한 것들 아래서는 짐승도 순한 얼굴로 돌아온다

봄에 피는 꽃 중에는 은은한 꽃들이 많다

은은함이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꽃길을 따라

우리의 남은 생도 그런 빛깔로 흘러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손 잡고 은은하게 물들어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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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강렬함을 추구하고 짧은 시간에 해치우는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본질은 여유를 가지고 은근하게 이루어짐에 있지 않나 합니다.

시인은 꽃향기도 은은하고, 강물도 은은하게 흘러가고, 달빛조차 은은하게 움직

인다고 합니다.  짐승도 순하게 되며 봄꽃도 은은하다고 하지요.

은은함은 오히려 더 오래가지요, 서서히 물들게 되고 은근하게 지속이 됩니다.     

우리네 삶도 시인의 말처럼 은은하게 물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도 친구와도 은은한 향기가 배는 하루가 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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