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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May 17. 2021

<시인이 될 수 없다면 시처럼 살라>

"시(詩)로 납치하다"

<시인이 될 수 없다면 시처럼 살라>
"시(詩)로 납치하다"

                                         해헌(海軒)

오늘은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신간 시집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류시화(1958~) 시인은 번역가로도 활약하고 있으며 젊은층에서 가장 선호
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였습니다.
많은 베스트셀러가 있는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등이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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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심장은 너무 작아서

                       잘라루딘 루미 (1207-1273)

‘내 심장은 너무 작아서
거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그 작은 심장 안에
이토록 큰 슬픔을 넣을 수 있습니까?’

신이 대답했다.
‘보라, 너의 눈은 더 작은데도
세상을 볼 수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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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증을 앓았던 시인 존 베리먼은 ‘나의 시가 이해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의
시는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시가 필요하다. 복잡한 삶에서
벗어나 나무들, 별들, 모든 것을 악기로 바꾸는 바람, 그리고 세상의 광대함과
만나기 위해.
루미의 시는 단순하고 깊다. 시련이 찾아왔을 때 그의 시는 위안을 준다. 누구나
슬픔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간다. 그 슬픔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 성장의 비탈일지도
모른다. 루미는 쓴다.

슬퍼하지 말라.
네가 잃은 것은 어떤 것이든
다른 형태로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심장 안에 아픔이 가득해도, 이 13세기 페르시아 시인이 말하고 있듯이, 단지 삶의
작은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 누군가가 양탄자를 때릴 때, 그 때림은
양탄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먼지를 털어 내기 위한 것이므로.

★ 더 푸른 풀

                     에린 핸슨(1995~)

건너편 풀이 더 푸른 이유가
그곳에 늘 비가 오기 때문이라면,

언제나 나눠 주는 사람이
사실은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면,

가장 환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
눈물 젖은 베개를 가지고 있고

당신이 아는 가장 용감한 사람이
사실은 두려움으로 마비된 사람이라면,

세상은 외로운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함께 있어서 보이지 않는것이라면,

자신은 진정한 안식처가 없으면서도
당신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라면,

어쩌면 그들의 풀이 더 푸르러 보이는 것은
그들이 그 색으로 칠했기 때문이라면,

다만 기억하라, 건너편에서는
당신의 풀이 더 푸르러 보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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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소리 내어 읽어야 좋다. 그때 시의 의미만이 아니라 시가 가진 울림과
언어의 향기가 전해진다. 시는 메시지 전달이 전부가 아니다.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면 산문을 택할 것이다. 시를 감상하는 좋은 방법은 그 시를 숨 쉬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늘 웃는다고 해서 그에게는 울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의
인생에는 눈물 흘릴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해서
두려움이 없다고 추측하지 말라.

우리는 삶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지만, 삶이 자신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은 간과한다.
삶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영웅이 되거나 불멸의 인간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으로 마비되어도 한 걸음씩 내딛고, 외로워도 사람들과 함께하라는 것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누라는 것.

★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팻 슈나이더(1934~)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가?
찻잔이 차를 담고 있는 일
의자가 튼튼하고 견고하게 서 있는 일
바닥이 신발 바닥을
혹은 발가락을 받아들이는 일
발바닥이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아는 일

나는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에 대해 생각한다.
옷들이 공손하게 옷장 안에서 기다리는 일
비누가 접시 위에서 조용히 말라 가는 일
수건이 등의 피부에서 물기를 빨아들이는 일
계단의 사랑스러운 반복
그보다 창문보다 너그러운 것이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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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사물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일상의 범위를 벗어난 것은 더
알아차리기 힘들다. 개미와 풀꽃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신의 존재도
알 수 없다고 독일의 사상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말했다.

우리는 평범한 것들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 무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지지해주는 것들과. 평범한 사물들의 미덕은 얼마나 융숭한가.
입어 줄 때까지 옷걸이에 걸려 있기를 마다하지 않는 바지, 더러운 발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양말, 어떤 입술에도 아부하는 숟가락의 매끄러움, 밤새
앉아 울어도 품어 주는 의자, 진짜 얼굴을 감추는 행위를 묵인하는 거울의
너그러움.... 그것은 사랑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사물들의 무한한 지원 없이 우리가 어떻게 하루하루를 빛나게 살 수 있는가?
그 지원 속에서도 밝게 살지 않는다면 잘못 아닌가? 어느 날 모든 사물들이
인내심을 잃고 반란을 일으킨다면, 의자가 엎어지고 거울이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을 거부한다면, 안경이 제멋대로 상을 왜곡시키고 찻주전자가 자기 학대로
주둥이를 막아 버린다면, 우리 삶은 아무것도 아니리라.

삶은 둘로 나뉜다.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거나, 어떤 것에서도 발견하지
못하거나. 주위의 사물을 통해 당신이 세상과 다시 사랑에 빠지는 그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전에는 어떻게 이것들을 못 볼 수가 있었지?’
평범한 것들에 대한 특별한 느낌, 일상성의 회복, 그리고 내 옆에 늘 있어 준 것들에
대한 감사, 이것이 이 시의 주제이고 우리 삶의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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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류시화시인의 엮음시집을 함께 감상하여 보았습니다.
서점가에서 시집으로 베스트셀러가 드문 것을 감안한다면 류시인의 시집이나 모음집은
늘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첫 번째 시는 페르시아의 시성이라 일컫는 잘라루딘 루미의 시였습니다. 예전에도 루미의
시는 여러 번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도 아주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영적인 통찰이 뛰어난 시인이자 영성가인데, 인간의 작은 심장 안에 어떻게 그렇게 큰
슬픔이 담길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류시화시인은 시인 존 베리먼의 말을 빌어
이야기합니다. 시는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고.
루미도 말하지요. 슬퍼하지 말라, 네가 잃은 것은 다른 형태로 네게 돌아올 것이라고.
13세기의 시인 루미는 현대의 인간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시는 호주의 아주 젊은 시인 에린 핸슨의 시였습니다. 항상 내 떡보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하지요. 핸슨의 시에서는 늘 건너편 풀이 더 푸르다고 합니다. 하지만 건너편
에서는 당신의 풀이 더 푸르게 여긴다고 하지요. 사람들은 남의 것이 더 좋아보이는
착각을 잘 하게 됩니다. 그러니 현재가 소중하고 현재 자기 가진 것을 소홀히 말아야
함을 이 시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저자는 시는 소리 내어 읽어야 좋다고 합니다.
시는 메시지 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시의 울림과 언어의 향기가 중요하다고 말이지요.
이 시도 의미도 있지만 푸른 풀을 발음할 때 느껴지는 울림이 저는 참 좋습니다.

마지막 시는 평범한 사물들에 대한 감상이 돋보이는 시였습니다. 찻잔이 차를 담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 양말이 발가락을 받아들이는 일, 옷들이 공손하게 옷장에서 기다리는
일, 계단의 사랑스러운 반복 등 너무나 무난한 일들이 시인은 사랑이며 인내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창문이 얼마나 너그러운가요? 볼 것 못 볼 것 모두 다 담아내고 스스로
평을 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사물들이 인내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킨다면 인간이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숟가락으로 밥을 떴는데 이를 숟가락이 흘려버린다면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겠지요? 컵이 물을 담아주지 않는다면 목마름을 해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시인들은 너무나 평범한 것조차 다른 시각으로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우리의 무딤을 일깨워줍니다. 짧은 시 3편을 읽고도 많은 것을 느끼고 새로운
감성을 만나게 되니 말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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