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16부작)
■ 작품 정보:
1. 편성 tvN(2018.12.01.~), 토일 오후 9:00 방영
2. 연출 안길호, 극본 송재정
3. 제작 스튜디오드래곤, 초록뱀미디어
4. 시청률 9.9%
5. 회당 제작비 약 18억
■ 로그라인
투자회사 대표인 ‘유진우(현빈)’가 비즈니스로 스페인 그라나다에 방문하고 ‘정희주(박신혜)’가 운영하는 오래된 호스텔에 묵게 되면서 기묘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 스마트 렌즈를 통해 게임에 접속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또 하나의 세계, 즉 증강현실(AR: Augment Reality)을 소재로 한다.
■ 인물관계도
■ 강점 및 특징
1. '유진우'라는 캐릭터의 뚜렷한 욕망과 목표
개인적으로 캐릭터를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으며, 동시에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욕망은 한 사람의 삶의 방식과 그 사람의 성격을, 혹은 색깔을 결정한다. 때문에 캐릭터가 욕망을 드러낼 때, 시청자들은 대개 직관적으로 그 욕망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욕망이 뚜렷하게 제시될수록, 다른 캐릭터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정 캐릭터만의 매력은 더욱 부각된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속 '유진우'의 욕망은 '경쟁심 위에 얹어진 복수심'이다. 어릴 적부터 지기 싫었던 친구 '차형석', 자신의 아내를 빼앗어 갔기에 더욱이 져서는 안 되는 상대 차형석. 그에게 패러다임을 뒤바꿀 기회를 뺏기고 싶지 않아 하는 욕망. 나아가 그를 짓밟아 버리고 이 게임의 승자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 이는 극 중 초반 제시되는 유진우의 욕망이다. 유진우의 모든 행동의 동기는 이 복수심이다. 간결하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은 더욱 쉽고 명확하게 유진우라는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그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캐릭터의 능력치마저 확보되어 있으니 유진우는 참으로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서사의 초반부터 유진우라는 캐릭터에게 뚜렷한 목표가 주어지는 것도 시청자들이 서사를 쉽게 따라가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인이다. 드라마 전반에 걸쳐진 유진우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드라마 초반에 제시되는 목표는 '차형석보다 먼저 정세주가 만든 게임 특허권을 사는 것'. 그리고 드라마 후반부를 이끄는 목표는 '정세주를 찾기 위해 게임의 퀘스트를 깨는 것'이다. 특히 '퀘스트 깨기'라는 형식상의 장치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캐릭터를 가시적으로 보여주어 캐릭터의 목표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 준다. 인물의 목표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앞으로 전개될 서사를 예측할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한다. 인물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과 재미를 쫓는 즐거움을 주는 것. 이 두 가지가 시청 여부를 결정짓는 극 중 초반에 제시된다는 점은 이 드라마의 강점임에 분명하다.
2. 소재의 참신성 및 다양한 타겟층을 포괄할 수 있는 소재
나로 하여금 이 드라마를 보게 한 가장 큰 요인은 현빈도 아니고, <비밀의 숲>을 연출한 안길호 감독 때문도 아니었다. 오롯이 증강현실(AR)이라는 소재를 과연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 궁금증, 그리고 전작 <W>를 집필한 송재정 작가의 상상력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나는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증강현실 게임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라는 점, 즉 소재의 참신함은 이 드라마를 여타 다른 드라마와 구분 짓는 가장 큰 강점이다.
소재와 관련해서 조금 흥미로웠던 점은 이 소재에 대한 흥미가 드라마에 가장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10대 남성들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었고, 더불어 드라마의 주력 시청자로 꼽히는 40대 여성의 관심을 얻는 데에도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는 제작진이 기획 때부터 염두에 둔 '투 트랙 전략'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는데, 게임과 증강현실(AR)이라는 참신한 소재와 현빈과 박신혜라는 카드(아마도 로맨스를 염두에 둔)를 적절히 잘 엮어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3. 기타
원작이 존재하지 않는 순수 창작물이라는 점이 몰입도를 높인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원작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방송이 끝날 때마다 시청자들은 앞으로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최근 웹툰, 웹소설, 리메이크 등 원작이 있는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었음을 고려할 때 순수 창작물로서의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더 다양한 해석과 기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지닌다.
■ 아쉬운 점
1. '정희주'에게도 '검'을 허락하라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12화까지 방영한 시점이다. 지금 이 시점, 가장 아쉬운 점은 정희주의 '역할'이 아직까지 미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한 나의 가설은 두 가지다. 마지막 반전 혹은 극적인 서사를 위해 정희주를 히든카드로 남겨두었다는 것이 첫 번째고, 이 드라마가 유진우라는 한 인물의 원맨쇼이며 정희주는 단지 로맨스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두 번째다. 하지만 두 가지 가설 모두 실망스러울 뿐이다. 둘 중 무엇 하나도 정희주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희주라는 인물의 활용도에 대해 묻고 싶다. 게임 속 등장하는 정희주를 닮은 캐릭터 '엠마'가 '힐러(Healer)'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드라마 서사 속 정희주의 역할도 유진우를 치유하는 포지션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힐러의 사전적 의미는 게임 캐릭터 중에 공격하는 캐릭터의 보조 역할을 하는 캐릭터이며, 힐러는 회복 계열 마법을 사용해 파티 사냥에서 파티원들의 소모되는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한다(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하지만 공격하는 캐릭터를 '보조'한다는 의미가 수동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12화까지 방영된 지금, 수동적인 힐러 정희주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유진우가 이끄는 대로 무턱대고 끌려다니고 있는 듯 보인다.
7화에서 정희주와 유진우는 마지막 만남으로부터 1년이 지난 뒤 재회하게 된다. 유진우는 지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열심히 레벨업을 해 총을 손에 쥐게 된 반면, 정희주는 자신에게 주어진 100억을 가지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을 뿐이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진우가 강해진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정희주에게 나타난 변화는 시청자들에게 아무런 흥미를 주지 못한 채 캐릭터에 대한 흥미조차 잃어버리게 만든다. 언젠가는 정희주의 매력이 나타나겠지. 7화까지 기다렸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일까, 아니면 높아진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일까. 개인적으로는 7화를 기점으로 정희주라는 캐릭터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히 하락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희주도 동생의 행방에 대한 자신만의 단서를 찾아냈다면 어땠을까. 우연한 계기로 정희주도 게임에 접속하게 돼 유진우만큼 힐러로서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일구어냈다면 어땠을까. 분명 극 중 '엠마'라는 캐릭터는 서사 후반부의 치트키(cheat key: 게임을 유리하게 하려고 만든 문장이나 프로그램,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적 속성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 속성을 얻게 되기까지 정희주의 여정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공격수를 보조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회복 마법을 사용해 아군의 체력을 회복시켜줄 수도 있지만, 손에 검을 쥐고 아군의 체력이 손상되지 않게 수비하며 적의 공격을 방어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그림은 정희주가 직접 검을 들고 유진우와 함께 퀘스트를 깨 가는 그림이었다. 남은 최종 퀘스트라도 공격수인 유진우와 힐러인 정희주가 함께 해결해 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2. '고유라'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모든 캐릭터는 존재의 이유를 지닌다. 모든 설정 또한 분명한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 하지만 '고유라'라는 캐릭터는 12화까지 그 존재의 이유가 불분명하다. 처음엔 유진우의 충동적인 성격을 설명하기 위한 캐릭터인 줄 알았으나(유진우는 전처와 죽마고우 차형석의 배신으로 방황하던 도중 고유라를 만나 충동적으로 결혼했다), 지금까지 구축된 유진우라는 캐릭터는 충동적이기보다는 치밀하고 계산적이다. 그의 방황을 설명하기 위한 이유에서라면 굳이 '고유라'라는 캐릭터를 추가할 필요는 없다. 또한 빌런으로서의 캐릭터라고 하기에는 극 중 차병준 교수가 너무나도 막강한 빌런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그 존재감은 미미하기만 하다. 목적성을 잃은 캐릭터는 몰입을 방해할 뿐이다. 고유라라는 캐릭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조금 더 강한, 그렇기에 더 매력적인 빌런으로 만들어주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참고]
10대 아들도 TV 앞에 앉혔다…AR 게임 드라마의 마력, 이지운, 동아일보(2018.12.18.)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vs. <남자친구>, 임언영, 여성조선(2019.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