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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힘힘 Ahimhim Jan 17. 2019

SKY캐슬(스카이캐슬, 2019)

책 <쌤통의 심리학>과 함께 곁들여 본, 드라마 <SKY캐슬>





■ 제목: SKY캐슬(20부작, 원래 16부작이었으나 첫 화 방영 전 4회 연장)

■ 작품 정보: 

    1. 편성 JTBC(2018.11.23. ~), 금토 오후 11:00 방영

    2. 연출 조현탁(마녀보감, 하녀들, 후아유 등 연출), 극본 유현미(각시탈, 골든크로스 등 집필)

    3. 제작 드라마하우스, HB엔터테인먼트

    4. 최고 시청률 19.2%(2019.01.17 기준)


■ 로그라인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 안에서 남편은 왕으로, 제 자식은 천하제일 왕자와 공주로 키우고 싶은 명문가 출신 사모님들의 리얼한 욕망 이야기.


■ 인물관계도

출처: JTBC 공식 홈페이지



■ 강점 및 특징


1. 인간에게 가장 위협적인 정서, '공포'를 자극하다

   르네상스기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그의 저서 <수상록>에서 "공포는 그 힘들고 고생스러움이 다른 재앙들보다 더욱 심하다", "공포는 죽음보다 더 참아낼 수 없이 괴로운 일"이라고 말하며 '공포'가 인간의 보편 정서 중 가장 위협적이고 강렬함을 암시했다.

   공포는 생존과 직결된 감정이다. 즉,  '공포'는 시청자들이 아주 직관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다. 또한 오늘날 한국 사회는 공포가 수반하는 감정인 '두려움'과 '불안'이 만연해 있는 사회다. 가령 경제 및 취업 불황, 혐오범죄, 묻지 마 살인 등 우리는 '공포'라는 감정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적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공포 장르를 소비하는 시청자들의 심리는 앞서 언급한 감정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두려움과 불안함이라는 추상적 감정은 특정 인물과 서사로, 즉 '뚜렷한 공포'로 구현된다. 이때 시청자들은 그것이 구체적으로 다뤄지고 해소되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 막연하게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의 해소. 이는 시청자들이 공포라는 장르를 소비하는 하나의 심리적 요인이 될 수 있다.


드라마 <SKY캐슬> 속 인물들이 느끼는 공포는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공포다.


   이런 맥락에서 드라마 <SKY캐슬>은 우리 사회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공포를 자극한다. 경쟁에 대한 공포. 실패 혹은 낙오에 대한 공포. 노오력(노력)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특정 영역에 대한 공포(부, 학벌, 사회적 지위 등). 계층 하락에 대한 공포. 특히 서사를 이끌어 가는 '엄마들'의 욕망은 강렬하게 드러날수록 욕망이 실현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한다. 자식에게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물려줘야 한다는 공포,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공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 한 문제에 오르내리는 등수와 등급을 불안해하는 그 자식들의 공포도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공포다.  

   시청자들은 각자가 지닌 공포감을 인물들에게 투사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서사를 헤쳐 나가는 모습을 통해 때로는 연민을, 때로는 통쾌함을 느낀다. 막연했던 공포감이 특정한 감정으로 구체화될 때, 시청자들은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런 공포 기제를 적극 활용한 것을 시청자들로 하여금 <SKY캐슬>에 열광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으로 꼽고 싶다.



2.  카타르시스의 기저에는 '쌤통 심리'가 있다


[1] 쌤통 심리, 그리고 <SKY캐슬>

   최근 1월 9일 자 한국일보 기사 <"저렇게까지..." SKY캐슬 사교육, 욕하면서도 따라 한다>를 읽은 적이 있다. 이 기사에서는 드라마 <SKY캐슬>의 인기 비결을 '부모들의 전쟁 같은 뒷바라지를 욕하면서도, 동시에 여건만 된다면 따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상류층 그들만의 리그’에 끼고 싶은 욕망이 시청률 견인에 한 몫하고 있으며, 욕하면서도 동경하고 감정 이입하는 역설적인 사회 현상이 <SKY캐슬>에 열광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드라마 속 인물의 욕망과 시청자들의 욕망이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은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이자 명백한 성공의 지표다. 여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단지 이러한 욕망의 상호작용만으로 드라마에 대한 전국민적인 반응을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무언가를 고민하다 접하게 된 책이 있었으니, 바로 Richard H. Smith의 저서 <쌤통의 심리학(The Joy of Pain)>이다.

책 <쌤통의 심리학>의 귀여운 표지!


   <쌤통의 심리학>은 '자존감이 위협당하는 경험을 해본 영역(혹은 자존감이 낮은 영역)'에서 우리는 '쌤통 심리'를 더 잘 경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쌤통 심리는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피해와 기쁨이 더해진 감정)', 즉 타인의 고통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의미한다. 이 책은 거북하게 생각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주목한다. 나는 이 책의 주장에 근거해 <SKY캐슬>의 또 다른 성공 요인으로 드라마가 '쌤통 심리'의  카타르시스를 추동한 것을 꼽고 싶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 '부'와 '학벌'이라는 두 영역에서 수없이 자존감을 위협당해 왔다. 이 두 가지는 우리가 그동안 '행복'의 척도라고 수없이 학습당해온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수많은 좌절을 경험해 온 영역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SKY캐슬>은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 모든 요소들을 보유하고 있으나 행복하지는 못한, 행복한 척 연기하고 있는 캐슬 속 인물들을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심리적인 이득인 '쌤통 심리'를 경험하게 한다. 병원 실세인 남편과 전교 1등 딸을 두었지만 진정한 '내 편' 하나 없는 한서진, 서울 의대를 합격했지만 가정의 파탄을 맞이한 영재네 가족, 그리고 각각의 이유로 행복한 듯 위선을 펼치고 있는 그 외의 인물들. 이들을 보며 우리는 삐딱해 보이지만 분명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2] '쌤통 심리'를 마음껏 느낄 수 있게 조성된 환경

   <쌤통의 심리학>의 저자는 미디어가 '쌤통 심리'를 활용하는 양상을 '휴밀리테인먼트(Humilitainment)'라는 단어를 차용해 설명한다. 휴밀리테인먼트는 휴밀리에이트(Humilitate)와 오락을 뜻하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의 합성어로, 연예인이 망신당하는 것을 재미 요소로 삼는 콘텐츠를 의미한다. 책의 저자는 이와 같은 콘텐츠를 시청하는 동기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 망신당하는 출연자들에 비해 자신이 조금 더 낫다는 자부심을 얻게 되는 것. 둘째, 정당한 이유로 망신당하는 인물을 보며 자신의 불편한 쾌감을 정의로운 혐오감으로 감출 수 있다는 것.


 <SKY캐슬> 속 인물들은 누구나 하나쯤 지탄받을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쌤통 심리는 '정의'의 측면에서 지탄받을만한 요인을 가지고 있을 때 더 적극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즉, 인물이 당하는 망신이 '자업자득'이라 판단될 때, '당해도 싸', 혹은 '쌤통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개인을 이기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SKY캐슬> 속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이 지탄받을만한 요인 및 결함을 지니고 있다. 쌤통 심리를 마음껏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 환경 속에서 캐슬 인물들의 지위가 떨어지는 것을 보며 우리는 묘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이때 느끼는 즐거움은 죄책감 없이 누릴 수 있는 강렬한 카타르시스로 다가온다.


[3]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 그리고 쌤통 심리

   <쌤통의 심리학>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대목 하나.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이 어딘가 불편해 보이고 외면하고 싶은 이 '쌤통 심리'를 정당화하고 극대화시킨다는 것이다.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은 종종 어떤 불행이 응당한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초래한다. 이러한 믿음에 대한 욕구가 '불행'을 외재적 요인이 아닌 내재적인 요인을 탓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은 불행에 대한 객관적 이유를 제공해 준다. 불행에 객관적 이유가 생길 때, 우리는 훨씬 더 열성적으로 개인을 비난할 수 있다. 이때 비난이 주는 쾌감은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이 정당화시켜준 것이니 역시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이들을 비난하는 심리에는 어떠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는가?

   이 대목은 <SKY캐슬> 속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 혜나를 비난하며 얻는 쾌감 뒤에는 '상황이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그 노력과 선한 마음에 대한 보상이 있었을 거야'라는 믿음이. 한서진을 비난하는 마음 뒤에는 '아무리 상황이 시궁창 같아도 그렇지 거짓 인생을 살아갈 궁리 보단 정당한 노력을 했다면 더 나은 인생을 살았을 거야' 하는 믿음이. 예서를 비난하는 마음 뒤에는 '욕심부리지 않고 겸손하게 노력했다면, 인성을 갖췄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거야'라는 믿음이 있지 않은가. 인물들에 대한 비난은 이들이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에서 위배된 삶을 살았기에 '당할만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정말로 세상이 공정한지에 대해 말이다.


[4] 쌤통 심리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

   쌤통 심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므로 억지로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최대한 감정이 생겨날 가능성을 줄일 수는 있는데, 저자는 '기질을 짐작하지 말고 상황을 파악'하면 쌤통 심리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모범생의 실패를 알게 됐을 때 느끼는 즐거움을 측정한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참가자들 중 절반은 모범생의 실패에 대한 기사를 읽은 후, 자신에게 중요한 여러 가치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한 참가자들은 자존감이 낮을수록 모범생의 실패를 더 통쾌하게 느낀 반면, 가치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참가자들은 사회적 비교의 불쾌한 영향을 적게 받아 모범생의 불운을 그다지 통쾌히 여기지 않았다.

   쌤통 심리가 주는 심리적 이득에 열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사회의 현실과 스스로의 가치관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SKY캐슬>의 목표는 왜곡된 욕망으로 가득 찬 우리 사회를 풍자하는 것이다. 풍자의 의미와 더불어 우리가 '쌤통 심리'를 마음껏 느끼도록 내버려 두는 이 사회에 대해서도, 우리는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3.  전형의 파괴: 여성 중년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파격과 새로운 유형의 악녀 등장

   오랜만에 열광하게 된 드라마라 그런지 자꾸만 포스팅이 길어진다. 앞서 제시한 두 가지가 심리적 측면에서의 분석이었다면, 세 번째 항목은 캐릭터의 전형에 관한 것이다. 먼저 여성 배우, 특히 여성 중년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가 이토록 흥행한다는 것은 가히 파격에 가깝다. 사랑에 목매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욕망만을 쫓는 여성 인물이 이렇게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 너무나도 기쁘다. 다만, 이 여성들의 욕망이 '모성' 혹은 '엄마로서의 욕망'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조금 아쉽다. 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더 다양한 욕망으로 움직이는 여성 캐릭터들이 앞으로 많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가 된다.


ㅅ..사랑합니다 배우님덜!


   이와 더불어 또 하나 반가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새로운 '악녀'의 등장이다. 관점에 따라 한서진을 악녀로 볼 수도, 김주영을 악녀로 볼 수도, 혜나를 악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 미디어에서 그려온 '악녀'는 대개 남성을 둘러싼 여성들의 경쟁에서 강한 욕망을 가진 여성으로 그려지거나, 혹은 섹슈얼리티로 남성을 위협하는 여성으로 그려져 왔다. 특히 전자의 경우에서 악녀는 남성의 사랑에 목을 매거나 질투에 사로잡혀 행동하는 여성으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SKY캐슬> 속 악녀들은 '남성'이 아닌 제각각의 욕망에 따라 악행을 저지른다. 이들이 '악녀'로서 주목받는 데는 악한 '여성'에 방점이 찍히기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자행하는 '악행'과 그들의 '욕망'에 방점이 찍힌다. 개인적으로는 '악녀'들이 그동안 한국 미디어로부터 구속당해 온 전형에서 벗어나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 참으로 반갑다.  악녀들이 앞으로 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 아쉬운 점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설정의 영향, 그리고 드라마의 책임

   <SKY캐슬>은 풍자를 자아내는 블랙 코미디를 표방한다. 학벌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자식들에 대한 엄마들의 집착, 통제, 영재 엄마 명주의 자살, 혜나의 죽음 등. 드라마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앞서 제시한 항목들을 꽤 극적으로 그려냈다.

   드라마가 지닌 영향력을 생각해 본다. 특히 지금 같이 많은 사람들이 <SKY캐슬>이라는 매개를 통해 여러 담론을 형성하는 상황에서는 그 파급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여기에 명주의 자살과 혜나의 죽음은 드라마의 시청률 견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과연 '죽음'이라는 연출적 선택을 했을 때, 그것이 미칠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을 면밀히 검토했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물론 오늘날 많은 시청자들은 <SKY캐슬>을 하나의 텍스트로서 소비하고 사유할만한 미디어 리터러시를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가 현실과 매우 맞닿아 있으며, 많은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인물들에게 몰입하고 있기에 자극적인 설정들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간과하기 어렵다. 돈만 있다면 김주영 같은 코디를 붙이고 싶다는 엄마들의 반응은 지극히 작은 예시일 뿐이다.

   김성수 평론가는 시청자들이 <SKY캐슬> 속 왜곡된 캐릭터 개개인에 몰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말을 거듭 곱씹어보게 된다. 전형적인 자수성가 드라마를 보여주는 차 교수와 한서진의 이야기가 개별적인 영웅담으로 끝난다면 드라마는 우리 시대에 악영향을 남기고 말 것이다. 이는 우리가 <SKY캐슬>에 열광하는 이유를 한번 쯤은 비판적으로 들여다 봐야 하는 이유다.  



이 포스팅의 마무리는 스카이캐슬 팀이 '혜나 추락사건'을 한 편의 영화처럼 만든

<4교시 추리영역>이라는 재미있는 영상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얼른 와라 금요일이여!


https://tv.naver.com/v/5056156




[참고]

<쌤통의 심리학>, Richard H. Smith(번역 이영아), 현암사, 2015.12.21.

"저렇게까지..." SKY캐슬 사교육, 욕하면서도 따라 한다, 강은영, 한국일보(2019.01.09.)

1%→8% 고공행진 'SKY 캐슬', 시청자 사로잡은 매력은, 김수정, 노컷뉴스(2018.12.11.)

<SKY캐슬> 모든 사진 출처: JTBC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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