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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힘힘 Ahimhim Jan 25. 2019

오티스의 비밀상담소(Sex Education,2019)

Netflix 신작 이모저모

최근 넷플릭스가 열!일! 하여 볼 드라마가 많아진 가운데,

오랜만에 편안하고 재미까지 있는 콘텐츠를 만나게 되었으니 바로 <오티스의 비밀상담소(Sex Education)> 다.

포스터에 대문짝 만하게 'Sex' 가 쓰여있지만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이 드라마가 섹스로 어그로 끄는 방식은 다른 그 어떤 드라마의 것보다 마음에 든다.


표면상으로는 10대 고딩들이 나오는 하이틴 성장물이다.

하지만 기존의 하이틴물과 다른 것이 있는데, 바로 '10대들의 성'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경직되어 있지 않다. 곤란해하며 외면하려는 모습도 없다. 그렇다고 점잖게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는 그 누구도 제대로 잘 알려주지 않는 '10대들의 성'에 대한 고민을 주인공 '오티스'를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성'이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10대들의 고민이 함께 녹아져 있다. 몸은 컸지만 아직 마음은 여린, 상처를 마주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청소년 들의 이야기. <오티스의 비밀상담소>는 그동안 너무 어른들의 시각에서만 다루어진 '성'을 10대들의 언어로 정의 내려간다.


제각각 다른 고민과 상처를 가지고 있는 드라마 속 인물들! 때문에 한 명 한 명 모두 애정이 간다.


개인적으로 '치유'가 담긴 서사를 좋아하는데,

아주 건강한 방법으로 각자의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와 관계 맺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참 편안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런 드라마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리뷰. 스타트!




■ 오티스의 비밀상담소(Sex Education, 8부작)
■ 작품 정보:
1. 배급: NETFLIX
2. 분류: 영국 드라마

3. 크리에이터: Laurie Nunn 
4. 제작사: Eleven
5. 출연: 에이사 버터필드(Asa Butterfield), 질리언 앤더슨(Gillian Anderson), 은쿠티 가트와(Ncuti Gatawa),  엠마 맥케이(Emma Mackey), 코너 스윈델스(Connor Swindells), 케다 윌리엄 스티얼링(Kedar Williams-Stirling)


등장인물:

주요 등장인물들! 왼쪽부터 차례대로 동정남에 성 상담사 엄마를 둔 주인공 오티스, 오티스와 함께 성 상담소를 차리게 되는 메이브, 그리고 오티스와 어릴 적부터 친구이며 게이인 에릭
메이브의 남자친구이자 전교 회장+수영 엘리트 잭슨, 오티스의 당찬 썸녀 올라, 교장선생님의 아들이지만 반항아+엄청 큰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애덤!


■ 로그라인
성 상담사 엄마를 둔 동정남 고등학생 오티스가 학교 친구 메이브와 함께 학교에서 성 상담소를 차리며 벌어지는 이야기.



■ 강점 및 특징


1. '남자답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

   주인공 오티스는 '남자다움'의 전형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캐릭터다. 왜소한 몸집에 또래 남자애들이 흔히 하는 자위 한 번 한 적이 없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오티스에게는 남자 주인공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그 흔한 능력(외모, 돈, 학벌 등의 스펙) 하나 없다. 대신 오티스는 상대방의 고민을 이해하고 함께 고민할 줄 아는 '공감능력'을 자신의 무기로 내세운다.

   그동안 남자 주인공들은 여성들이 꿈꾸는 남성상을 더러 대변해 왔다. 공감 잘하는 남자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던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가지지 못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남성, 즉 여자다움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남자다운 남자가 인기를 얻어왔다. 때문에 공감 잘하는 남자에 대한 판타지보다는 돈 많고 외모 및 신체적 조건이 좋은,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남자에 대한 판타지가 더 우세했다. '공감'은 그동안 여자 주인공의 '여자스러운' 남자 사람 친구들이 담당해 온 작은 역할이었다.

오티스! 너의 그 편견 없고 배려심 넘치는 모습이 너무 좋앗

   하지만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오늘날 많은 여성들은 공감 잘하는 남자, 아니 '공감'이란 것을 할 줄 아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의 전형은 이미 변하고 있다. '마초'같이 가부장적이고 남성다움의 권위를 강요하는 남자는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매력을 잃은 지 오래다. 공감은 더 이상 여자다움의 특징이 아니다.

   오티스 같은 캐릭터(남자 주인공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어쩌면 제작진에게 모험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티스는 남성다움의 전형에서 벗어난 캐릭터도 얼마든지 성공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그래서 더욱 이 드라마가, 오티스가 반갑다. 앞으로 더 다양한 남성 캐릭터가 나올 수 있는 초석을 다진 오티스에게, 그리고 바뀌고 있는 트렌드를 빠르게 읽어낸 제작진에게 격한 박수를!


2. What kind of 'man' do you want to be?

   <오티스의 비밀상담소>는 10대들에 의한, 10대들의 고민을 다룬 드라마다. 하지만 어린 고딩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그 고민의 내용도 어리지 않다. 드라마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 질문 뒤에는 그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편견에 맞서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방해하는 나의 상처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따른다. 이 질문과 고민은 나이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질문에 답하는 것을 방해하는 트라우마는 우리가 지금도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공통의 과제다.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의 외도로 인한 트라우마로 자신의 남성성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오티스를 이해할 수 있다. 상처로 인한 혼란을 극복해 가는 오티스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다.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시행착오를 겪는 에릭에게 그 아버지가 묻는 질문은 비단 에릭에게만 해당되는 질문이 아니다. "What kind of man do you want to be?" 이 질문은 스스로를 정의 내리기 위해 애써본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이자, 누군가에게는 지금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일 것이다.

"What kind of 'man' do 'we' want to be?"


   더불어 눈여겨본 것은 드라마 속 인물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낙인'이다. 낙인이론이 말해주듯, 낙인은 낙인 지워진 사람의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그 사람의 삶을 낙인과 같은 삶으로 몰아간다. 범죄자라는 낙인이 결국 그 사람을 범죄자로 만드는 식이다. <오티스의 비밀상담소>는 이 사회적 낙인(조금 순화시켜 말하면 개인에게 가해지는 편견)이 인물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정의 내려가는데 얼마나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준다. 메이브는 머리가 좋지만 부모 없이 자란 사회 하층민에 걸레 같은 년이라는 낙인이 낮은 자존감을 만들어 낸다. 잭슨은 '엄친아'로서의 자신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중압감에 시달린다. 애덤 또한 '교장의 아들', 혹은 '성기가 큰 사람'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두 단어 중 그 어떤 단어도 '진짜 애덤'을 설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잭슨 같은 애가 날 좋아하겠어." "(메이브) 넌 나를 그냥 잭슨으로 봐주니까."

   하지만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의 인물들은 함께 연대함으로써 '나 답게 바로 서는' 과정을 견뎌낸다. 때문에 혼자 외롭게 일구어가는 성장이 아니다. 자신의 상처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지지하며 함께 일구어 가는 성장이다. 이들은 서로의 부정적인 낙인을 긍정적인 자기 인식으로 함께 재정의 해 간다. 낙인의 긍정적인 발현, 즉 '피그말리온 효과'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친구들로부터 받은 긍정적인 기대는 인물들로 하여금 그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드라마에서 그 결과는 '나 다운 모습으로 바로 서는' 인물들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I love the way I am!



3. <오티스의 비밀상담소>가 고민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ess)에 대하여

   작년 가을, 콘텐츠 선진 사례 학습차 영국을 방문했을 때 'Diversity Issue'에 대해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영국 미디어는 현실을 최대한 왜곡 없이 담아내고자 다양성을 특히나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 격인 영국의 오프콤(Ofcom)은 인종, 성별, 인종, 젠더, 나이 등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규제안까지 마련해 실행하고 있었다. 강연자는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 환경에서도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꼭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해야 하는지까지도 고민해야 한다는 강연자의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티스의 비밀상담소>는 가히 '영국스러운' 드라마다. 잭슨이 흑인 엄마와 백인인 또 다른 엄마를 두고 있는 것도, 에릭의 동성애적 성적 지향도, 그것을 바라보는 이성애자인 에릭 아버지의 시선도 '그저 서로 다르게' 그려질 뿐이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다름'을 느끼는 부분은 모두 다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흑인인 잭슨의 엄마가 백인이라는 것이, 그리고 엄마가 둘이라는 것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생소함을 다시금 생각해 보니, 많이 접해보지 못해 생소한 것일 뿐 분명히 존재하는 삶의 방식이며 가치관이었다. 생소함은 익숙하지 못해 느껴지는 서툼이다. 한 번 알게 되면 익숙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서로를 아는 만큼 우리는 다양한 삶을 존중할 수 있다. 그 다양한 삶의 한 가지 방식인 나 자신까지도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 미디어가 고민하는 미디어의 역할과 다양성 이슈는 참으로 부러운 대목이다. 누군가를 배제함으로써 상처 주지 않기 위해, 현실을 왜곡 없이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고민은 혐오로 물든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한 고민일 것이다.




■ 아쉬운 점


오티스에게 필요한 것은 시청자와의 밀당!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시청자들의 선택권이 부각되기 시작했을 때에는 에피소드 별로 독립된 이야기가 시청자의 선택을 많이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넷플릭스를 비롯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해 '콘텐츠를 몰아보는 경향(빈지워치:폭음, 폭식이라는 뜻의 빈 지 binge와 본다는 뜻의 워치 watch를 합쳐 만든 신조어로 휴일이나 주말, 방학 등 단기간에 TV 프로그램을 몰아서 보는 행위를 가리킴, 출처: 네이버 시사상식사전)'이 뚜렷해지면서 시청자를 끝까지 붙잡자 둘 수 있는 연속극이 더 유리해지고 있다.

   연속극은 강한 중동석으로 시청자들에게 콘텐츠를 찾아보게 만드는 동기를 제공한다. 다음 회차를 보게 만드는 강한 고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는 오티스가 친구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이야기가 하나의 에피소드를 구성한다. 에피소드와 에피소드를 이어주는 고리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오티스를 둘러싼 중심 사건이 아니기에 조금은 약하게 느껴졌다.

   8회에 걸친 전체 서사를 고려하면 오티스의 목표는 '아버지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위에 성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목표는 중심 갈등으로 그려지지 않으며, 오티스에게 상담받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엮는 큰 얼개 정도의 설정일 뿐이다. 물론 각 인물들의 고민이 시의성 있으며 충분히 의미 있기 때문에 각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구성하는 전개 방식이 더 알맞은 방식일 수 있다. 다만, 주인공인 오티스가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중심 서사를 마련해준다면 시청자 입장에서도 오티스를 팔로우하는 과정이 쉽고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티스의 역할과 그 비중이 조금 더 늘어나고, 그것이 중심 갈등을 이룬다면 시청자에게 더 쫀쫀한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모든 사진자료: IMDb,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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