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수, <기쁜 우리 젊은 날> 2022.
이야기, 외부화되지 않는 기억의 조각을 언어로 풀어내는 일.
박혜수, <기쁜 우리 젊은 날> 2022,
기억이 디지털 장치에 '외주화'되기 시작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미국의 페어필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 린다 헨켈은 인간의 기억력을 테스트하기 위하여 학생들을 데리고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30개의 작품을 기억해야 하는 과제를 받았습니다. 한 집단은 20초 간 감상한 뒤 바로 사진을 찍고, 나머지 집단은 30초 간 더 지켜보고 외우도록 했습니다. 결과는 사진을 찍지 않고 30초간 작업을 외우고자 했던 학생들이 보다 정확한 기억력을 보였습니다. 헨켈은 이를 ‘사진 상실 효과’라고 일컬었습니다. 사람들이 사진기를 드는 순간, 우리의 뇌는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받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의 뇌는 사진이 기억해 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억은 점차 디지털화되고 있습니다. ‘아웃소싱’ 이 삶의 내밀한 영역에도 파고들기 시작하자 우리의 '기억'과 '경험'도 아웃소싱의 계열에 가담하기 시작한 것이죠. 기억을 외주화하는 시대에 들어서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과 정보를 외부 장치에 위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추억을 보관하고 회상하는 일도 디지털 기기에 깊이 의존합니다. 최근 삼사 십 대 젊은이들이 싸이월드의 귀환을 두 팔 벌려 환영했던 이유도, 그들의 추억을 웹사이트에 외주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억을 디지털 기기에 저장하면 더 정확하고 선명하게 우리의 기억을 보존할 수 있을까요? 미 베릴리 매거진 로라 로커 편집장은 “SNS에 사진을 게재하는 순간, 내 경험은 내 것이 아니게 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SNS에 게재된 사진이란 “타인의 시선이라는 액자에 사진을 의식적으로 끼워 맞춘 것”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사람들이 디지털 기기에 추억의 순간을 담아두려고 할 때, 사람들은 추억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의하여 조작된 기억으로 왜곡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추억 역시 온전한 형태로 보존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기기가 우리의 기억을 대신하기 전, 우리가 가진 경험은 오롯이 우리 내부에 기입되는 기억이었다는 점이 다릅니다. 반면 디지털화된 기억들은 일종의 ‘타자 검열’을 거쳤을 가능성이 있죠.
'기억'을 외주화하는 흐름은 점차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점점 더 방대한 양의 기억들이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화되고 있죠. 그 흐름을 역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뭐, 기억을 오롯이 우리 신체의 영역에 한정해두는 것만이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디지털화되지 않은, 그러니까 남들에 의하여 검열되지 않은,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기억들은 특유의 온도와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혜수 작가는 이 지점에 주목합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속에 꼭꼭 숨겨둔 기억들을 언어로 풀어냅니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에 기록된 추억의 온도가 얼마나 높을 수 있는지, 혹은 그 향이 얼마나 진한가를 관람객들에게 선보입니다.
지난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나 너의 기억⟫전시의 피날레는 박혜수 작가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이었습니다. 전시의 순서를 따라 걷다 보면 전시장 말미에 이르러 박혜수 작가의 영상과 함미나 작가의 회화 작업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22년 1월, 작가는 옛 구로공단이 위치했던 독산동의 한 공장을 방문하여 공장 노동자들을 인터뷰했습니다. 함미나 작가의 회화 작업은 이들 인터뷰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나 너의 기억⟫ 전시 포스터
공장은 20-30년을 근무한 중년의 노동자들이 무표정하고 메마른 얼굴로 숙련된 노동을 반복하는 장소입니다. 박혜수 작가는 바로 이곳에서 노동자들의 첫사랑 추억을 영상과 회화 작업으로 녹여냈습니다. 초반 영상 속 노동자들의 얼굴은 건조합니다. 근무 중 작업복을 입고 인터뷰어 앞에 앉은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서려있다면, 그것이 더 어색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심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이들은 ‘첫사랑의 기억을 들려주세요’라는 질문을 받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함박 미소를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얼굴에도 자연히 미소가 번지기 시작합니다. 영상이 진행될수록 관람객들은 함께 웃음을 터뜨리기도, 혹은 동시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합니다.
작가는 거대한 역사에 집중하기보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역사를 이야기로 들려줍니다. 아주 내밀하고 사적인 역사, 그들의 신체와 정신에 기록된 개인의 서사를 듣다 보면 그 기억의 온기에 관람자들의 마음도 한껏 달아오릅니다.
인간에게 간직된 기억들은 인간 신체가 소멸하는 동시에 사라집니다. 한 인간의 죽음은 곧 한 인간이 품고 있던 무수히 많은 추억들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이것들은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집니다. 디지털화된 데이터는 무한하고 영원한 듯하지만, 인간이 보관하고 있는 추억은 취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작품 앞에 선 순간 사람에게 기입된 개인의 역사는, 인간이 연약하고 유약한 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어려 있는, 두텁게 먼지 쌓인 기억의 이야기들은 일상에 지친 관람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영상은 25분의 러닝타임이 무색할 만큼 빠르게 흡입력이 있고, 전시장을 이미 한 바퀴 둘러보고 온 관람객들은 영상 앞에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영상의 중간중간에는 노동의 현장과 다방의 풍경이 소리 없이 화면을 스칠 때면, 첫사랑 이야기의 애잔함이 더욱이 진하게 우려 나오는 듯합니다. 영상이 끝나갈 무렵이 되면 상록수를 연주하는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이 흘러나옵니다. 기타의 선율, 그리고 풍경을 응시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관람객들이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잔잔한 기타 연주와 말없이 바뀌는 풍경을 감상하는 동안, 단 한 명의 관람객도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 이후에야 관람객들은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묵혀있던 기억들은 언어화되어 청자들에게 마치 단편영화와 같은 임팩트를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디지털화된 기억 보다 인간의 뇌에 의한 기억이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기억하고 있는, 조각나 있고 온전치 못한 그 기억과 이야기가 주는 힘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타인의 프레임에 맞춰 검열되지 않은 인간의 기억들은 그 특유의 온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혜수 작가가 담아낸 이야기에는 기억을 디지털로 외주화할 수 없던 그 시절, 오롯이 개개인에게 저장되어 있던 기억의 향이 깊이 묻어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순간과 기억들이 사진과 영상,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디지털 기기로 저장됩니다. 유년기와 젊은 시절이 디지털에 고스란히 보관된 이들은 기억은 어떤 향기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 온기와 색감과 질감 자체가 전혀 다르겠지요. 어쩌면 젊은 시절의 추억을 디지털로 외주화하지 않은 세대는 이들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 기억의 질감과 온기를 느끼고 싶다면, 박혜수 작가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