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슨의 년 만의 국내 개인전, <새로운 사각지대 안에서>.
OLAFUR ELIASSON
Inside the new blind spots
June 15 – July 30, 2022 PKM Gallery
올라퍼 엘리아슨, 그는 “다재다능”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그러니까 “만재만능”한 것 같은 작가라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리는 동시대 미술 작가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엘리아슨의 손길이 닿으면, 사람들은 도심 한복판에서 북극의 빙하를 손으로 만져보고 (Ice Watch, 2014-2015) , 미술관 내부에 유유히 자리 잡은 자갈 길 위를 걷고, 흐르는 강물에 손을 담근다(Riverbed, 2014). 이끼의 냄새를 한껏 들이마시고(Moss Wall, 1994) 비 오는 날의 습한 날씨에 피부를 적시며 무지개를 감상한다(Beauty, 1998). 강과 바다는 녹색 빛으로 변하고(the Green River, 1998), 궁전 한가운데서는 거대한 폭포가 흐른다(Waterfall, 2016). 코펜하겐의 시민들은 미학적으로 설계된 세련된 다리를 건너고, (Circle Bridge, 2005) 아프리카 아이들은 보다 밝은 밤을 보낸다 (Little Sun Original, 2013-). 365일이 늘 흐린 런던에선, 200만 시민들이 인공 태양 아래서 담소를 나누거나 독서를 하거나 춤을 춘다. (The weather preject, 2003)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가'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예술가인 동시에 보다 건강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전방위로 노력하는 '이상주의자'이자 방대한 업적을 남기고 있는 '행동주의자' 이기 때문이다. 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엘리아슨에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술가’에게 주는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현재는 건축학자, 공학자, 디자이너, 공예가 등 백여 명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엘리아슨 스튜디오' 공동체를 운영하는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스튜디오 직원들은 유기농 재료로 직업 요리하며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한다.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음식 실험기는 쿡북을 출간되기도 했는데,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스튜디오에서 요리하던 요리사들이 독립하여 식당을 열었다고 한다. 이러나저러나 그는 지치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지속 가능한' 실천을 모색하고 있는 활발한 예술가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5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의 제목은 "새로운 사각지대 안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우리의 감각으로 포착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주목한다. 전시에서는 이번 개인전을 위하여 제작된 여러 점의 설치 작업들과 엘리아슨이 엄선한 주요 출판물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다.
갤러리 1에 들어서면 작가의 회화 작업 7점과 함께 설치된 <감성의 플레어 바라보기>를 마주할 수 있다. ‘플레어’란 렌즈 플레어 현상을 지칭한다. 흔히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태양이나 달의 모습을 담고자 할 때, 사진 주변에 밝은 점이나 빔 형태의 빛이 함께 찍히곤 한다. 이를 렌즈 플레어 현상이라고 하는데, 흔히 사진이나 영상에서 렌즈 플레어 현상은 제거 대상이다. 그러나 엘리아슨은 ‘감성적’이라는 수식어를 이용하여 플레어를 바라보도록 유도하여, 폐기 대상이었던 ‘오류’를 과감하게 미학적 핵심 탐구 대상으로 치환한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떤 것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해야 할지 훈련받는다. 예를 들어 수학 문제집을 펼치면 '정답'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우리의 감각은 답이 옳았는가 혹은 틀렸는가에 집중된다. 수식의 정교함이나, 혹은 긴 풀이 과정을 거쳐 답이 나오는 그 순간의 오묘한 아름다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영화를 볼 때는 결말이 중요하다. 관객들은 얼마나 빠르고 명쾌한 속도로 통쾌한 결말에 도달하는가에 집중한다. 미장센 하나하나에 집중한다거나, 장면의 흐름과 음악의 적절성에 감각을 몰두하는 것은 슬기롭지 못한 행위다.
그러나 엘리아슨의 작업은 '답'보다 수식 자체의 경이감이나 문제를 이루는 문장 속 단어나 어휘에 마음을 쏟아내는 듯하다. 그의 작업은 영화 자체가 주는 서사에 몰두하기보다 장면 속에서 간과해야 할 요소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격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엘리아슨의 작업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사소하게" 여기도록 훈련된 대상에 대하여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 삶에서, '사소해도 좋다' 혹은 '지나쳐도 좋다'라는 영역들이 실로 그러한가에 대하여 되묻게 된다.
갤러리 2에는 관람객들이 예상하는 ‘엘리아슨’스러운 작업을 만날 수 있다. 갤러리 2의 주요 작업으로 <당신의 폴리아모리 영역>을 꼽을 수 있다. <당신의 폴리아모리 영역>은 이번 전시의 꽃과 같다. 조명등 하나를 중심으로 정십면체, 정팔면체, 정사면체, 정육면체, 그리고 정십이면체가 하나의 조각으로 빛을 발한다. 하나의 광원이 각 도형을 거쳐 수십 개의 빛의 파편을 만들어낸다. 투과와 반사가 동시에 일어나는 세 개의 색유리들은 관람객이 서 있는 장소와 시선의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빛을 반사한다.
전시장을 메우고 있는 빛은 무엇 하나 일관되지 않다. 관객들을 시선을 집중할 하나의 스포트라이트가 존재하지 않는, 무작위로 흩어진 파편들 앞에 서 있을 뿐이다.
<당신의 폴리아모리 영역> 은 지금 살고 있던 집에 처음 이사 오던 날을 떠오르게 했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온 새 동네 근처 수영장을 검색했었다. 가장 가까운 수영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수영을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수영장이었다. 조금 망설여졌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초여름의 풀 내음이 거리를 가득 메우기 시작할 무렵, 물속에 뛰어들고 싶다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수영장을 방문했었다.
수영장 입구부터 샤워실, 그리고 수영장을 이용하는 내내 나는 좀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낯선 느낌에 휩싸였었다. 손으로 열지 않아도 되는 자동문,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 양옆으로 조금 더 넓게 설계된 샤워공간과 낮게 설치되어 있는 샤워기까지. '당연하다'라고 느꼈던 공간들이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때 불현듯 우리가 '자연스럽게' 이용하던 공간은 누군가를 배제한 채 설계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인지할 수 있었다. 새로 이사 간 동네의 수영장을 이용하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가 얼마나 '눈에 보이는', '정상'의 신체를 가진 이들에게 익숙하게 제작되었는가를 일깨워주었다. 분명히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살아가던 이들에 대하여 새로이 감각하던 시간이었다.
사각지대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우리가 좀처럼 사유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익숙한 시야'에 포착되지 않는 공간을 의미할 테다. 우리는 마치 핀 조명으로 대상을 비추듯 세상을 감각한다. 그러나 엘리아슨 익숙한 방식으로만 세상을 본다면 결국 우리 마음에는 어두운 사각지대가 늘어날 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전시는 무작위로 펼쳐진 빛의 파편을 바라보듯, 우리 삶의 다양한 부분을 감각하기 시작하자고 손을 건넨다.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영역에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고. 기꺼이 새로운 감각으로 세상을 지각하고자 할 때, 감추어진 다양한 존재들에 대하여 보다 분명하게 지각하기 시작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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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the new blind spots
June 15 – July 30, 2022 PKM Gallery
전시는 이번 주 주말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