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중동스러움'에 관하여 - SeMA, 《고향》展

중동현대미술전 《고향》전 리뷰 #1,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

by 정미

SeMA 중동현대미술전 《고향》,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2019.11.27-2020.03.08.


관람시간 : 화-금 10AM – 8PM

토, 일, 공휴일 10AM – 6PM (2020년 3월부터 7PM)

매주 월요일 정기휴관(1월 1일 휴관)

관람료: 무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고향》전의 포스터



(1) 전시의 중동스러움에 관하여.

중동의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고향》전이 막을 올렸습니다. 필자의 석사학위 논문은 탈식민주의와 비서구권의 미술 축제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필자는 전시에 대해 남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동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영토는 아닐 것입니다. 물론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공포, 테러의 이미지로서는 익숙한 땅이지만 말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중동을 접할 기회는 많았으나, 중동 지역에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는 드물었을 것입니다. 미디어의 개입 없이중동 목소리를 듣는 것은 낯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가 더욱 기대됩니다.


무니라 알 솔, <믿음으로부터 비롯된 청결 (Cleanliness Comes From Faith)>, 2019, 메탈, 와이어, 종이컵, 전구, 네온설치.


이번 전시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동스럽다”입니다. 필자의 예상보다 작품의 수도 많았고, 작품들이 다루는 영역도 다양했고, 전시의 규모도 컸기 때문에, 한마디로 전시를 요약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굳이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전시는 전반적으로 필자의 머릿속에 있는 “중동스러움”이 잘 구현된 전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전시는 중동이라는 낯선 땅을 다루는 전시이나, 중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다면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습니다. 그만큼 전시 전반적으로예상된’, ‘중동적인작품들이 주를 이룹니다. 그러나 “중동스러운 전시”를 꼭 좋은 전시라고만 할 수는 없겠죠. (물론 꼭 나쁜 전시라고도 할 수도 없습니다.)


하딤 알리, <이단자를 위한 'ㅇ', 지하드를 위한 'ㅈ' (I for Infidel, J for Jihad)>, 2019, 단채널 비디오, 포스터, 인쇄물, 16'13".


올해 2월 필자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지역을 2주일 남짓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행을 계기로 제가 예상한 중동 지역과 실제 중동 간의 간극이 매우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지역으로 ‘중동’이라는 거대한 영토에 대해 단편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한국을 통해 ‘아시아’를 정의하는 것과 비슷한 오류를 범하는 일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긴 합니다.)


여행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주변에 많은 이들이 이 여행을 만류하였습니다. 일단 분쟁지역이고, 사람들이 험악할 것이며, 필자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더욱이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물론 여행을 하는 동안 여성이기 때문에 혹은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느끼는 두려움과 불쾌함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지역은 생각보다 안전했고, 그곳의 사람들도 제 예상보다 훨씬 따뜻했습니다. 제가 방문한 지역들은 분쟁이 진행 중인 곳이었기 때문에 거리에서 무장한 군인들을 자주 볼 수 있었고, 가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사람들 간의 기싸움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땅은 일상이 영위되는 곳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중동에 대하여 시종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그들은 주로 ‘이 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라는 입장을 밝히곤 하였습니다. 물론 중동은 세계가 주목하는 영토 분쟁 지역이자, 극우 종교 세력들에 의하여 많은 이들이 희생되는 위험한 땅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그들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하게 되며, 가까이서 중동을 보니, 더욱더 선명하게 제가 생각한 ‘중동스러움’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고, 또 오염되어 있는지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제가 상상했던 땅과는 조금은 다른 공간이었습니다.


아델 아비딘, <청소(Cleansing)>, 2018, 옷, 작가 및 타닛갤러리 제공.


다시 전시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재밌는 작품들이 서울의 땅을 밟았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한 작품들도 꽤 됩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는 필자의 예상에 빗나가기보다, 필자의 예상과 맞아떨어지는 작품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중동에서 일어나는 사회, 역사적인 이슈들을 주로 다루는 작품들이 다수이며, 작품은 우리가 소위중동적이라 생각하는 것과 부합하는 요소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제면에서는 당연히 국제 사회 속에서 ‘중동’의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소재들을 다루는 작품이 많았고, ‘중동’을 연상시키는 색을 사용하거나 이국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아랍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중동 미술’에 대한 기대와 일치하는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에 작품 감상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가 중동 현대 미술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소개하기보다는 관람객들에게 이미 익숙한중동 부합할 만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하젬 하브, <땅의 지도(Map of Land)> 연작 중 일부. 나무 판 위에 사진 콜라주, 120x200cm.


어쩌면 필자인 저 자신이 이미 그들이 직접 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섬세한 중동의 목소리들을 놓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필자에게 각인된 중동과 다른 중동을 받아들일만한 열린 마음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죠.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아쉬움은 남지만, 좀처럼 만나기 힘든 작품들을 한 미술관 안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전시는 내년 3월까지 넉넉하게 지속됩니다. 필자 개인적으로 느끼는 아쉬움과는 무관하게, 이번 전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꼭 봤으면 하는 좋은 작품들이 꽤 많습니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혹은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며 서울을 찾은 중동 현대미술 작가들과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장시간의 비행을 견디고 이 땅의 관객들을 마주하게 된 작품들을 더 많은 이들이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전시에 대한 여러분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듣고 싶습니다. :)



*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