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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Oct 21. 2019

장모님, 거긴 좋아요?




그날도 이런 날씨였다. 코스모스가 바람에 허둥대는 오늘 같은. 느닷없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지만 장모님은 이미 돌아가셨다. 망연자실해 있는 처남을 대신해 사위들이 나서 빈소를 차렸다. 고임새 하나 없이 사진만 놓 낯선 가톨릭 예식. '통공(通功)의 기도' 한 가운데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먼 처가 쪽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담담함이 되레 아팠다. 그 와중에 ‘출근?’ 또 ‘부고는?하는 겨야 할 일상이 자꾸 올라 내가 의연한 건지 무심한 건지 혼란스러웠다.  


사흘 내내 상주와 조문객 사이에서 시뻘건 육개장을 먹었다. 꼬박꼬박 끼니는 잘도 돌아왔다. 나는 목 언저리에 고인 미지근한 물기를 없애려 맨밥을 삼켰다. 개강이 다가온 아카데미에는 복도 한쪽에 기대서서 사정을 알렸다. 맑은 돋움체 폰트로 '돌아가셨다'고 쓰는 게 싫어 나답지 않게 직접 통화를 했다. 자꾸 목소리가 흔들렸다. 마침 눈에 이웃을 배하는 상복 입은 아내의 뒷모습이 들어와 간신히 말을 마쳤다. 발인 아침. 국화만 준비된 반듯한 연도(煉禱). 나는 묵례로만 이별할 수 없어 내 방식대로 두 번 절했다. 사진 속 장모님이 희미하게 웃었다.


한 달이 지났다. 하필 그사이 장모님 생신이 돌아왔다. 백화점에서 보낸 작은 꽃바구니와 생일축하 카드를 읽다 아내는 무너져 내렸다. 짧게 쓴 한 줄 문장. "행복한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경황없이 떠난 장모 앞으로 영문도 모른 체 도착한 생일 카드. 나는 그 행간에서 오래 서성거렸다. 오열하다 잠든 아내를 보며 어미를 잃은 세상 모든 것들의 심정을 아렸다. 슬픔이 이토록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고 성가시고 집요하고 난데없는 줄 그제야 알았다. 아내가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장모님은 나를 '○○씨'라고 불렀다. 직장 동료였던 아내가 친정에 내 이름을 마구 불러대 장모님도 어느새 따라 하셨다. 나는 괜히 그 어감을 좋아했다. 호칭만 따뜻한 게 아니었다. 장모님은 가난한 막내 사위가 기죽지 않도록 애쓰셨다. 명절날, 사위들끼리 화투판이라도 벌어지면 오가며 내게 버릴 패를 넌지시 알려주곤 하셨다. 그래도 늘 나만 잃었다. 이제 편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화투판에 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나는 아내가 예전처럼 단단한 눈빛으로 어서 돌아왔으면 했다.



나는 시간이 더디 흐르는 호숫가에서 카누 오형제의 얘기를 들었다. 여기 물과 바람과 카누는 오랜 친구라서 말수가 그리 많진 않았다.


아카데에서 춘천 행을 공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49재 날. 처가는 불교식 예식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동네 성당에서 열리는 연미사에 이름을 올리고 함께 추도하기로 했단다. 어떻게 하지. 나는 장례를 치르느라 첫 수업에 빠졌다. 밀라노 출장으로 한 번 더 결석했다. 이번은 과제가 딸린 답사. 세 번 이상 빠지면 수료가 안된다고 했다. 아카데미 일정에 참석해야 했다. ‘장모님도 이해하시겠지’ '나는 성당도 안 나가잖아' 아침 일찍 아내는 친정으로 나는 춘천으로 각각 출발했다.  


춘천의 가을은 아름다웠다. 의암호 물레 길에서 타는 카누. 가을볕을 듬뿍 받은 강물은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햇빛이 얼마나 찬란한지 채송화 씨앗 같은 주근깨가 날아와 주르륵 얼굴에 박히는 듯했다. 닭갈비는 부드럽고 구봉산 카페엔 웃음소리가 넘쳤다. 사람들은 너나도 저마다의 리즈 시절 춘천을 소환했다. 빛바랜 청춘과 정직했던 민낯이 불려 나왔다.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누군가는 그림자라도 팔 기세다. 나는 평소보다 더 들떴다.  



소설 속 인물들의 납작한 엉덩이를 데워주느라 아궁이 윗벽이 검게 그을렸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괜히 앞마당을 서성거렸다.

                                                                                                                                                                        

느지막하게 도착한 마지막 행선지, 김유정 이야기 집. 금병산 자락에 겸손하게 들어선 초가 지붕이 다정했다. 여기는 이 마을에서 삼 년 정도 살다 세상을 떠난 김유정의 삶과 문학을 시청각 전시물로 만나게 해 놓았다. 구식 전화기를 드니 누군가 읽어주는 김유정의 《봄봄》 이 흘러나왔다. 김유정이 누웠음 직한 흙마루 방엔 세상을 뜨기 며칠 전 친구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가 있었다.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이렇게 시작한 편지는 "요즘 나는 가끔 울면서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심정이다." 라고 끝맺었다. 마지막 구절이 덜컥 가슴에 걸렸다. 하얗게 누운 장모님. 명치 끝에 얹힌 장모님이 보였다.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혼자였다. 주위는 어느새 깜깜해졌다. 주차장으로 버스를 찾아 터벅터벅 걸어오는 길. 목덜미가 서늘해 옷을 여미다 올려다본 저녁 하늘에 별이 보였다. 아내가 궁금해졌다. 추도미사는 끝났겠지. 별을 보며 "장모님, 어때요. 춘천보다 좋아요?" 라고 물어봤다. 그러 눈앞이 자기 뿌예졌다. 나는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밤길 아스팔트 위를 구르는 돌멩이를 세게 걷어찼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멀리서 황구만 컹컹 짖었다.














*통공(通功) Communion of Saints

가톨릭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기도와 희생과 선행으로 서로 도울 수 있다는 믿음      






posted by 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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