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나를 때렸습니다. 작고 초라해질 때면 마음으로 나를 때리고 심지어 그 고운 손으로도 나는 나를 아프게 하지요. 하지만 자해는 내가 나쁜 사람이라서 또는 멍청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꾹꾹 눌러 왔던 크고 작은 상처가 덧났을 때, 너무 아파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때 나는 타인을 비난하기 보다는 안전한 자해를 선택할 뿐입니다. 타인을 통제하는 것에 비해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그나마 수월하기 때문이죠. 나는 알고 보면 얼마나 선량한 사람입니까?
하지만 나는 나에게 선하지 않습니다. 자해는 자신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내가 강하지 못해서 그래", "겨우 이딴 일로 힘들어하면 어떻게", "난 너무 형편없어", "아무도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 거야"라고 끊임없이 자책을 하며 나는 결국 쓰러지고 밟히게 되는데요. 안타깝게도 나를 무너지게 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나'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을 해치지 않게 될까요? 자책을 피하는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은 회피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거나 공격의 화살을 타인에게 돌리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물론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장기적인 해결책은 아니겠지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회피가 무력해지고 원망의 화살이 방향을 바꿔 다시 나를 아프게 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결국 상처투성이가 되겠죠. 누가 나를 위로해 줄까요? 나는 어떤 기대를 하고 있습니까? 이제 그만 버티는 건 어떨까요? 사실은 약해지고 싶은 마음을. 마음껏 울어버리고 싶은 기분을. 그런데 어떤 이는 힘든 마음을 알아채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니까요. 그래서 꽤 오랜 시간 회피, 원망 심지어는 자해라는 방식으로 타인과 나를 괴롭히며 먼 길을 돌아갑니다.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그간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애써온 나, 이제는 힘들다고 말해도 될까요? 나약하고 비겁하고 실수투성이면 어때요? 못생기고 느릿하면 좀 어떤가요? 길가에 풀잎을 봅니다. 예쁘고 잘나서 햇살이 비추고 강해서 비바람이 몰아칠까요. 때 되면 피어나는 민들레도 수없이 밟히고 뜯기지만 기어코 노란 꽃을 피워내지 않습니까. 봄바람을 타고서 날아오르는 민들레 꽃씨는 또한 얼마나 경이로운가요?
그간 힘들었겠다. 억울했겠구나. 아무도 몰라줘서 얼마나 화가 났을까. 이제는 알아주세요. 그게 뭐 어렵습니까. 내 가슴에 손바닥을 살포시 올려놓아보세요. 손바닥에서 뜨거운 기운이 내 가슴 깊이 전해지는 게 느껴집니다. 나는 또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요. 나 아니면 누가 나를 이렇게 아파해줄까요. 어째서 나는 그간 몰라줬을까요. 왜 누군가 나를 함부로 하도록 내버려 뒀을까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넓은 손바닥을 가슴에 올려놓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 나는 충분히 잘해 왔다고. 내가 행복해지기를. 내가 더욱 건강해지기를.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편안해지기를. 그러니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지 않겠노라고. 다시는 나를 외면하지 않겠노라고. 나를 아프게 하는 나에게 말해봅니다. 나약함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강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