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za Jul 18. 2023

나의 ID 카드 사원증

타인의 목에 걸고 있는 멋진 훈장

빼곡한 빌딩의 숲 사이를 지나 회사에 도착한다. 사람들은 사원증을 메고 있다. 회사를 들어가기 위해 회사 출입 게이트 앞에 줄을 서 있다. 하나 둘씩 사원증을 출입 게이트에 찍으며 회사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들. 종종 그런 회사에 출근하는 나를 상상해보곤 했다. 나도 사원증을 메고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회사를 함께 다닌다면, 내가 생각한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나는 이런 이미지들 때문에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싶었다. 쉽게 말하면 대기업, 공기업, 외국계 기업 같은 이런 회사 말이다. 내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싶었던 이유는 연봉이나 복지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그런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이 목에 걸고 있는 사원증을 가지고 싶었다. 그만큼 나에게 사원증이라는 것은 상징적인 느낌이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 사원증이라는 것은 이 사회에서 그동안 잘 살아왔다는 인증서처럼 보였다. 그 인증서가 있어야지만 사회에서 인정받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그리고 부모님도 나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어떤 스펙을 쌓아야 하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방법들을 찾아볼수록 지방 사립대를 다니는 내가 대기업에 가는 건 확률이 조금 낮아 보였다. 그래도 남들보다 많은 대외활동과 공모전 수상을 바탕으로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나도 용기를 얻었다. 일단 공모전, 대외활동, 봉사활동을 등 남들이 한다는 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스펙 쌓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4학년이 되었고, 그동안 내가 쌓은 스펙을 정리하며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대외활동들이 많았음에도 뭔가 자소서가 쉽게 써지지 않았다. 자소서는 항상 내 스펙이 어떤지 보다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그렇기에 ‘자신의 경험과 하고 싶은 직무를 연결해서 쓰시오’, ‘자신의 실패의 경험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말하시오’라는 질문들에 명확히 답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자소서를 쓰면 쓸수록 점점 사원증이 있는 좋은 회사에 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스스로 잘 쌓아왔다고 믿었던 스펙들이 무용지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단지 그 회사의 사원증이 가지고 싶었을 뿐, 입사해서 하고 싶은 일들이 없었다. 


그 때, 주변에서 하나둘 공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보였다. 공무원도 사원증처럼 공무원증이 있었다. 사원증을 얻지 못한다면 공무원증이라도 받아야할 것 같았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공무원에 대한 인식은 좋아보였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1등 직업이라고 불릴 만큼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막연한 취업 준비보다 공무원이 되는 방법은 명확했다. 공무원 시험 5과목을 잘 보기만 하면 누구나 공무원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공부는 혼자와의 싸움이니까, 나만 열심히 공부하면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내 나름대로 공시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특히 공무원은 좋은 직장에 갈 능력은 안 되고,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직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에게 마지막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좋은 직장의 사원증 대신 공무원증을 얻기로 결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기할 수 있는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