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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za Jul 18. 2023

우연히 만난 친구

내 마음이 넉넉해야 되는 이유

마음의 여유가 없어

친구의 취업조차 축하해주지 못한 나


가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순간에 아는 사람을 만날 때가 간혹 있다. 그리고 내 삶에 만족하고 있을 때, 만나게 된다. 친구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비교를 하게 된다. 비교를 하면 내 처지가 순간 불쌍해진다. 그래서 친구를 안 만났고, 마주치기도 싫었다. 근데 간간히 들려오는 친구들의 취업 소식. 정말 좋은 일이고 축하해 줄 일인데, 내 처지가 떳떳하지 못하니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는 것이 어려웠다. 그렇게 옹졸함을 끝으로 가고 있는 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집에 도착할 때 쯤 누군가가 ‘자영아!’라고 나를 불렀다. 버스에서 나를 부를 사람이 없을 텐데, 익숙한 이름이 불려 뒤를 돌아봤다. 그랬더니 가장 친한 친구가 버스에 타고 있었다. 


친구가 취업을 했다는 3개월 전에 소식을 들었지만, 내가 공부한다고 만나서 축하해주지는 못했다. 버스에서 만난 친구는 멋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회사에 출근하는 직장인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멋있어보이던지. 직장인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나랑은 이제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취업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찌들어가는 직장인도 멋있어 보인다. 이 사회에 냉혹함을 본 것이겠지만, 그것이 뭔가 어른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랄까?


정말 오랜만에 친구랑 이야기하는 거라 즐거웠다. 하지만 약간 불편한 감정. 내 처지 때문에 불편한 걸까? 친구와 나를 계속 무의식적으로 비교했다. 그리고 나의 이런 꾸질 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싶지 않았다. 친구가 ‘공부는 잘 돼가?’라는 가볍게 이야기한 안부 인사가 나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보다 앞서나간 것 같은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친구는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이라 피곤해보였다. 내가 피곤에 찌는 것과 다른 느낌으로 느껴졌다. 그 다름에서 오는 어른 같은 분위기. 어른이라는 것은 무언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돈 버는 것에 찌드는 모습이 어른이라고 그 당시에 정의했던 것 같다. 나는 아직 대학교를 다니던 20살의 모습 그대로인데, 친구는 이제 사회초년생처럼 보이는 게 괜히 처량했다. ‘역시 사람은 비교를 하면 불행해져’라며 생각을 떨쳐버리려 노력했다.


수많은 책에서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는 말을 많이 봤다. 지금은 그 말에 동의를 하지만, 뭔가 한계를 넘어야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방향이 틀려도 되니 속도만큼은 빠르고 싶다. 남들보다 빠르고, 높이 올라가고 싶다. 그러나 내 뜻대로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 그렇게 나는 친구와 헤어지며 터벅터벅 집으로 올라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친구가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제대로 축하해줄 수 없는 내 현실. 친구가 부러워 자격지심이 드는 마음. 어쩌면 남들은 평범한 일상을 노력을 해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한 불확실성이 나를 무섭게 했다. 한번 불안함이 생기면,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쳤다. 그 불안함을 떨치기 위해서는 결국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여기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내일 눈을 뜨면 학원을 가서 공부를 한다. 하루하루 공부를 해서 쌓아간다는 그 힘으로 살아간다. 자기 믿음과 확신은 없더라도 부정적으로 삶을 대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결국 믿음과 확신을 만들어가며 하루하루 자신과 싸우는 것이 공시생의 길인 것 같다. 


공시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어쩌면 수행자의 길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갈고 닦으면서 원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하루하루 쌓아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에 위로 받으며 이겨나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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