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기 싫어 좀이 쑤시는 날에는
배에는 배꼽시계가 있듯이
나에게는 좀이 쑤시는 시간이 있다
매일 공부가 잘 되면 참 좋을 텐데, 그러기 쉽지 않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그렇겠지? 때로는 아침에 공부가 너무 잘 돼도 오후까지 공부가 잘되는 건 또 아니다. 하루하루 매초마다 마음이 바뀌는 모습에 더 짜증나기도 한다. 공부는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했던가? ‘이걸 참고 견디는 자가 왕관을 쓸 수 있겠지’라며 악으로 깡으로 버텨본다. 악과 깡은 우리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그 정도는 껌이지.
그러나 공무원 시험은 장기전이다. 아무리 깡과 악으로 버틴다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을 그런 식으로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악과 깡은 공부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나만의 환기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연구하기도 했다. 너무 공부가 안되고 좀이 쑤시면, 학원이나 도서관 주변을 많이 걸었다. 생각0보다 걷는 것이 잡념과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해도 안 될 때는 혼자 카페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나를 달래줬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서 생각을 해보면, 나라는 친구를 알아가고 키워나갔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힘들어하는지 그때는 어떻게 해주면 좋을지에 대해서 많이 연구하고 실천해봤던 것 같다. 나중에 수험 생활이 길어질 때는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를 했다. 그때는 도서관에 베란다 같은 쉼터가 있었는데, 아침에 거기에 앉아서 과일을 먹으며 영어 단어나 고사성어, 한자를 외우는 게 나의 낙이었다.
뭔가 하늘이 틔어 있고, 갇혀서 무언가를 하다가 밖에 하면 약간의 환기도 되고 기분이 좋았다. 퍽퍽하다고 느끼는 공시생활에서 유일한 낙이었다. 가끔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외롭게 느껴질 때면, 친구들과 전화를 하고 싶다가도 더 외로울까봐 괜히 참는다. 친구들의 평범한 일상이 괜히 나에게 자격지심이 될까봐. 같이 공시를 준비하는 친구들과는 가끔 연락을 해보면, 위로가 되긴 하지만 뭔가 공허함은 해결되지 않아 더 외로워졌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나 도서관이나 학원을 가는 길에 어디 팔려가는 사람마냥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조금 울고 나면 속에 있는 찌꺼기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 같아 마음이 풀렸다. 마음이 좀 풀리면 그 힘으로 또 공부를 해본다. 공부를 하는데, 뭔가 성적이 안 오르는 나를 보면 또 자괴감이 든다. 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
공시는 정적인 행위인데, 나의 마음은 왜 이렇게 요동치는지. 공부 하나가 이렇게도 자신의 마음을 잘 다져야하는 것인지를 왜 시작할 때는 몰랐을까? 그래도 인생을 살아 갈 때 매번 쉽지만은 않을 테니 지금부터 위기를 잘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거라며 정신교육을 시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교육을 스스로에게 하는데도 왜 이렇게 공부하는 건 힘들지?’ 라며 책상에 앉아서 오늘도 책을 억지로 나는 책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