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za Jul 18. 2023

안되면 결혼하면 되지

아빠만의 위로법

여자 직업 1위 공무원 

이것마저 안 되면 결혼도 못할 것 같은데요


매일 힘들게 학원을 가고, 메말라가는 딸을 보며 부모님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공부를 대신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미안함. 그래도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따뜻한 밥을 해주는 것과 힘내라는 말 뿐이었을 거다.


새벽에 6시쯤 일어나서 학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7시쯤 일어나시는데,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었는지 눈을 비비며 내 방으로 들어왔다. 공부는 잘 되고 있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일상적인 것을 물어봤다. 나는 그 질문에 ‘공부는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하고, 밥도 잘 챙겨 먹고 있다’라고 말씀드렸다. ‘고생 많고 해볼 수 있는 만큼 해보고 아빠가 3년은 밀어줄게! 걱정마!’라는 말에 나에게 위로를 해주려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의 힘내라는 위로가 나에게는 속상함이 되었다. 그동안 딸이 공부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3년이나 밀어준다고 한 건가? 라며 속으로 자기를 비하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말하는 아빠의 뒷이야기. ‘공주! 안되면 결혼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걱정마! 학원 잘 다녀와라’라고 등을 토닥거리며 방을 나갔다. 근데 아빠의 그 말에 속으로 ‘나는 얼굴도 안 예쁘고, 성격도 안 좋은데’라며, 그 말을 곱씹었다.


나도 아무렇지 않게 짐을 챙겨 여느 때처럼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그 당시 겨울이라 새벽 6시는 칠흑 같은 암흑이었고, 날은 추우니 날씨마저 나를 외롭게 했다. 날씨와 내 상황이 아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생각하기 딱 좋은 환경. 그러니 내 상황을 더 신파로 몰아갔다. 마음이 더 울적하고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믿을 수 없었다. 우리 아빠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아빠는 어릴 때부터 ‘너희가 결혼 할 때에는 맞벌이 시대다. 공주 꼭 일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결혼 안하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며 항상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길 바라왔다. 그런데 얼마나 내가 못나보였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나는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아빠가 그 말을 했다는 사실이 속상하기보다 항상 잘하는 딸이 아닌 것 같아 더 눈물이 났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은 내 기억 속에 공부가 아주 잘 됐던 날로 기억된다. 아마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랬던 것 같다. 아침에 아빠가 말한 그 기억들을 가슴에 품고 책상에 앉아서 반드시 자랑스러운 딸이 되자며 나를 그쳤던 것 같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한 그 시기에 어떤 말이든 나의 자격지심으로 받아들였던 시기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 편안하게 가지라는 아빠의 의도를 알 수 있으나, 그때의 나에게는 한없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던 말이었던 그 시간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후 4시만 되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