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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Sep 29. 2016

의열단 독립운동 이야기를 그린
영화 <밀정>

부조리한 역사의 한 장면을 콜드 느와르로 그리다

<스포 있습니다>


밀정: 비밀리에 정탐하는 것 또는 그러한 사람을 일컫는 말.
        비슷한 단어: 간첩

올해 여름, 영화 <밀정>이 개봉했다. 포스터부터 엄청난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터라 보기로 결정하는데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보고 난 후 소감은 "역시"였다. 기분이 묘하게 나쁜 국뽕을 거하게 빨아재낀 망작이 되진 않을까 했던 우려가 단번에 날아갔다. 


의열단은 조선총독부 청사에 들어가 폭탄을 던진 것으로 역사 책에 등장한다. 실제 있었던 독립운동가들의 피와 열성이 서려있는 역사를 각색하여 나온 것이 바로 영화 밀정. 

영화에서는 의열단이 상해에서 폭탄을 제조해 경성까지 가지고 가 경찰청(총독부였나)에 터트리기까지의 사건과 인물 간 대립을 차갑고 격정적으로 그려냈다.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과 그의 오른팔 김우진(공유), 연계순(한지민) 등 의열단과 그들을 잡기 위해 파견된 밀정 이정출(송강호), 의열단 속의 밀정 사이에서 오가는 감정적 기류는 부조리의 끝을 달리던 일제 식민 시절의 부조리한 역사를 드러냈다.


이정출의 실제 모티프는 "황옥"으로, 실제로 있었던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각색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밀정이다. 실제로 황옥이 열사였던 것인지 일본 경찰로써 소임을 다했던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아직까지도 갈린다. 영화에서는 그가 의열단 밀정인 척 투입된 일본 경찰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의열단을 위하여 다시 밀정이 되는 이중 스파이가 되었다고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의 진짜 속내가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일제 식민시대처럼 부조리하고 암울한 상황에서 이정출이 왜 그렇게 행동하였는지, 그의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고, 그를 열사 혹은 매국노로 인정할만한지에 대해 꼭 짚어내야만 할까. 이정출의 행동의 의의보다는, 그렇게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이 영화를 읽어내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정출의 기회주의적 면모는 그가 살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 뿐. 물론 아무리 생존에 대한 욕구가 강력하다곤 하지만 매국노가 용서받을 순 없을 테지만 이 영화를 논할 때는 시대적 흐름에 중점을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감독은 한 매체의 인터뷰를 통해 "황옥이라는 인물이 친일파였는지 아님 위장친일파였는지를 파헤치기보다 그 시대의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의 행적이 더욱 흥미로웠다. 그래서 ‘밀정’에서 밀정은 중요하지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붉고 진한 혈액이 거무스름하게 보일 정도로 화면에서 색체를 뺐다. 전체적으로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 지배적이었고 화면의 색체는 느와르의 그것처럼 단단했다. 화면 색체를 주욱 뺀 것과 반대로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그러나 뜨겁고 생동감이 살아있었다. 색체와 스토리의 극단적 대비가 등장인물들의 열정이 더 뜨거워 보였다. 차가운 색체와 뜨거운 이야기의 만남 때문에 이 영화는 "차갑고도 뜨거운 영화"라고 불리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배경음악이다. 기차역에서 내려 일본 경찰과 대치하다가 의열단원들이 끌려가는 장면에 삽입된 "루이 암스트롱 - when you are smiling", 일본 고위직 군인, 경찰들이 모여 파티를 하는 도중 폭탄이 터지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장면에 삽입된 "모리스 라벨 - bolero", 엔딩 크레딧에 삽입된 "드보르작 - 슬라브 무곡"까지 적절한 타이밍에 장면을 극대화시켰다. 당시 시대와 같은 때에 발매된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은 미국의 재즈 문화의 발달과 평범한 듯한 그들의 빛나는 일상과 우리나라의 비참하고 슬픈 시대적 배경이 만나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볼레로는 원래 춤곡인데, 빠르기가 빨라지고, 조가 바뀌고, 악기 편성이 바뀌어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애절함이 담겼다. 이 음악은 이정출이 청사 안에 폭탄을 설치하고 폭탄이 마침내 터지는 장면까지 이어지는데, 이정출의 내면을 역설적으로 그려내어 통쾌함보다는 한 인간의 내면적 슬픔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아픔이 더 크게 느껴졌다.





원고를 작성한 것은 영화를 보고 난 직후인데, 요새 너무 바쁜 탓에 원고를 묵혀두기만 했다.

밀정의 내용과 감상이 퇴색될 때까지 묵혀둔 탓이 감상문을 제대로 쓸 수 없어 그냥 발행하기로 했다.

감상적이고 부드러운 글을 쓰고 싶은데, 감상문이라는 것을 거의 처음 쓰다시피 해서 그런지 너무나 낯설어 쓰기가 너무 싫었던 글이다. 그냥 이대로 영화를 보았던 기억을 남기기 위해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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