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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Oct 25. 2016

같은 곡, 다른 느낌

지휘자 손 끝에서 탄생하는 저마다의 작품 같은

같은 곡이라고 해도 어떤 지휘자가 지휘를 하느냐에 따라 곡의 분위기와 색깔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음악 애호가라는 거창한 칭호를 붙일 수 있을 정도로 필자가 유식한 것은 아니지만, 오케스트라에서 곡을 연주하는 아마추어 플룻 연주자로써 느낀 바에 대하여 소소하게 이야기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세계적인 명장들이 연주하는 곡들을 들어본다면 명장마다 저마다 생각하는 바와 해석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정명훈이 각각 지휘하는 베토벤 5번 교향곡을 들었을 때 느낀 감정의 색깔은 두 지휘자의 이름만큼이나 다르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베토벤 5번 교향곡을 연주할 때 관악기를 상대적으로 많이 배치했고, 정명훈은 현악기를 상대적으로 많이 배치했다. 악기 편성 뿐만 아니라 느림표의 길이나 빠르기, 셈여림표에 변화를 주며 같은 곡이라도 다른 느낌을 냈다. 같은 음을 연주하지만 연주자의 스타일에 따라 그 곡의 질감이 달라지기도 하며, 지휘자는 아주 꼼꼼하게 그 모든 것 하나하나 잡아내고 교정한다.


내년 겨울 정기 연주회를 준비하며 수십 번은 족히 들은 베토벤 5번 교향곡. 지금도 싸구려 이어폰을 노트북에 꽂고 1~4악장을 끊임없이 되풀이 중이다.


각기 다른 지휘자들이 연주한 영상 여러 가지를 찾아보며 문득, 얼마나 섬세하고 세심하며 예민하게 아주 작은 소리 하나까지 신경써야 전체적인 울림이 이렇게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를 더 풍부하게, 더 넓게 내는 관악기부터 활을 쓰는 정도에 따라 소리의 느낌이 달라지는 현악기까지 각자 맡은 소리의 질감을 아주 세심하게 컨트롤 해야만 개성이 생긴다. 같은 인생을 산다고 해도 아주 작은 디테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의 질감이 달라지는 것처럼.




현재 내가 처한 이 상황은 어쩌면 나만 처한 것도 아니고, 나만 겪는 어려움이나 행복도 아니리라. 그 모든 순간들에 대하여 아무 작더라도 내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오케스트라 같은 인생이 색깔을 띄게 되는 것 같다. 이 모든 일련의 어려움들은 부딪혀야만 내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할 수 없는 어떤 사람들도 함께 겪는 공통된 문제점 속에서 수 많은 답변을 자기 색깔에 맞게 선택 해야만 성장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그런 과정을 통해야만 자기만의 색깔을 더 확고히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어려운 일을 통해서만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지금 이 순간 아주 사소한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를 통해서 아주 작은 색채를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아주 세심한 컨트롤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하며, 그렇게 때문에 더더욱 생각이 모두 다듬어진 후에 말을 해야하므로 말도 조심히 해야겠다는 반성 섞인 생각까지 확장되었을 때 베토벤 5번 교향곡은 4악장을 힘 있게 달리고 있었다. 화려한 금관 악기와 새소리 같은 피콜로의 조화가 눈에 띄는 이 부분은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아주 촘촘하게 엮여 서로 소리를 주고 받는 그 치밀하고 단단한 구성 덕에 쉽게 질리지 않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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