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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Jan 03. 2018

답정너,
위로와 격려가 필요해.

    유독 힘든 학기였다. 코스모스 졸업이라 남들 3학년 2학기 다니는 것을 4학년 1학기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도 여간 자연스럽지 못해 까끌까끌한 새 옷을 입은 듯 입에 붙지 않았다. 마케팅 대행사에 다니느라 세 개의 학기를 휴학한 탓이다. 이 때 가장 많이 휴학한다고 한다. 내 동기들도, 선배들도 이 시기에 한 번씩은 휴학을 하고 휴식을 취하거나 본격적으로 꿈을 찾거나 스펙을 쌓았다. 아마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들이 그때 느꼈던 상념들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학기 내내 폭격기처럼 퍼붓는 과제 폭탄, 뒷통수의 연속인 팀플들, 쉬지 않고 보는 시험들이 학적정보에 빼곡히 기록되어 알파벳으로 산출되고 있다. 아직 결과를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는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싶긴 하나. 솔직히 아주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B+도 감사할 지경이다. (글을 한창 쓰고 있는데 성적이 나왔다. 올B+일 뻔 했는데 C+ 두 개가 끼어들어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C+을 보니 짜증이 솟구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마케팅이냐 화학공학이냐 그 갈림길 사이에 서자 고민만 깊어질 뿐 뾰족하게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다짐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교수님께서 S전자에 다니는 선배님과의 자리를 마련해주셨다. 정확히 말하면 "취업 특강"으로, S전자에 관심이 있는 학과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 질문을 하고 답변을 주는 시간을 가졌다. 블라인드 채용이 과연 우리들에게 유리한 제도인가, 우리 학교의 인지도가 얼마나 '구린가'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우리 학교는 인서울 라인에 겨우 드는 수준이다. 명문도 아닌데 그렇다고 공부를 아예 안 해본 수준도 아니기에 학우들은 항상 불안감에 떨고 있다) 거의 무의미한, 현실을 알려달라지만 실상은 나를 위로해 달라는, 답정너 질문들이었다. 


    짊어지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 내 무게에 짓눌려 남의 짐을 보지 못하는 것일 뿐 모두에게는 각자만의 무게가 있는 법이다. 조금이라도 그 무게를 덜고자, 이미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니작은 위로라도 받고자 함은 생존본능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미 취업 시장에 나가기도 전에 몇 천 만원 단위의 학자금 대출금을 쌓아두고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부모님의 커다란 빚더미에 눈치를 보고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대학 입시 실패가 가져온 실망감과 성공에 대한 갈망, 중압감을 한꺼번에 견디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감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아르바이트로 번 그 몇 푼은 쥐도새도 모르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버린다. 물질과 성공에 대한 욕구보다, 안정감을 더 느끼고 싶은 것이 지금 우리 대학생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취업에 성공한다고 해서 꼭 안정감을 느끼란 법도 없고, 금방 잘릴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미래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취업특강을 통해 얻은 정보라고는, 전공 학점이 중요하며 우리 학교가 그렇게까지 무시받는 학교는 아니라는 것 뿐이었다. 사실 이건 취업을 조금이라도 준비해보았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흔한 이야기다. 하지만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학우들의 표정은 한층 맑아졌고 의욕으로 눈빛이 반짝였다. 이들에게, 아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고가 아닌 확신과 위로와 격려가 아닐까. 나조차도 남을 위로하거나 격려할 새가 없는 요즘, 다 힘든 마당에 내 힘듦을 봐달라고 징징거릴 수는 없는데 힘들어 죽을 것 같을 때, 더 답정너스러운 질문을 던져 위로와 확신을 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답정너스러운 질문은 어쩌면 견디기 힘든 불안감과 중압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는 생존본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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