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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Aug 09. 2018

맑은 날, 해방촌, 단상

오늘 같이 날이 좋다면,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게 남산을 오르는 것이 제격일 테지만
오늘 같이 날이 덥다면, 아름다운 하늘을 만끽할 마음도 채우고 싶다면, 남산 중턱에서 멈추고 해방촌으로 가는 것도 좋을 테다.
쁘락삐룬 태풍이 북상하면서 서울의 구름을 모두 빨아간 지금이 기회인 것 같다.
몇 날 며칠 동안 내린 비에 서울이 말끔히 씻겨, 오랜만에 깨끗해진 공기를 마음껏 들이켜고 싶은 날. 흔치 않은 맑은 날이다.
집이 좋은 나는 물론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귀찮긴 하지만, 오늘은 조금 욕심을 내고 부지런을 떨어야 할 것만 같았다.
가을 하늘 같은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을 보며, '아 저게 원래 여름 하늘이구나.' 싶었다.

공부도 안 하고, 작품도 쓰지 않고, 차일피일할 일을 슬슬 미뤄가는 요즘에 대하여
비에 젖은 공기가 눅눅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해보면서, 의도치 않게 자아성찰을 했다.
비 온 뒤 수줍게 오색구름으로 얼굴을 가린 하늘을 보기 위해, 빛의 파장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 장광을 보기 위해, 
등줄기로 흐르는 땀 때문에 차마 남산은 오르지 못하겠으니 해방촌이라도 가야겠다 싶었던 것은
지금 나의 게으름과 무기력을 타파해줄 어떤 동기를 갈구하기 때문이리라.
결국 게으름은 나로부터 기인한 것이기에 나밖에 내쫓지 못할 것을,
예쁘게 화장을 하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발 아픈 구두를 신고 집 밖을 나와 청명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채우며
부단히 버스에 올라 해방촌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걷고 나서야 깨달았다.

대학교 4학년 2학기가 끝난 지금, 백수도 대학생도 아닌 지금 산모퉁이 어딘가에서
길을 나아가지도 않으면서 길을 잃었다고 징징대는 것이 과연 발전이고 성숙인가.

글도 쓰고

공부도 해야지.




한참 우울했던 날에 쓴 글이라서 그런지 참 오글오글하고 눅눅하다. 중소기업 마케팅직 몇 군데 면접을 보고, 오라는 제의를 거절하기도 하고 불합격 통보를 받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모두 하나 같이 "전공은 화학공학인데 왜 마케팅을 해?"하고 물었고, 나의 대답은 설득력이 없었다. 구체적인 경력이 있음에도 구체적이지 않으며 모호하고 몽롱한 "꿈"이라는 말 때문에 모든 것이 뜬구름 잡기에 그치는 느낌.


어수선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1주일 정도 해남 여행을 다녀왔다. 해남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는 친구 덕분에 얻은 휴가였다. 너무 더워서 어디 나가는 것조차 겁났음에도 친구는 바다도 보여주고 먹을 것도 바리바리 챙겨서 입에 넣어줬다. 황송한 호강을 1주일이나 누리고 나니 몸과 마음이 다시 제정신을 차렸다. 서울에 올라온 지 일주일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고맙다는 말로도 다 전하지 못할 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잘 전할 수 있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취업하면 제일 먼저 이 친구를 신라 호텔 라연으로 데려가 대접하겠다는 생각을 혼자 간직하고 있다.


해남 땅 기운이 참 좋다고 하던데, 해남에서 1주일 간 놀고 먹으면서 QA/QC 직무 교육 합격 통보를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러니까 직무 교육을 두 개나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침 화상영어와 시간이 겹치지도 않고, 자소서 컨설팅까지 도와준댔다.


마침 슈피겐코리아 입사지원서를 쓰고 있던 참이었다. 휴가 가서 무슨 입사지원서냐 싶긴 한데,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일을 찾아서 해댔다.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만드니 자꾸 욕심이 생겼다. 술 한 잔 하고서도 만들고, 일어나서도 만들고, 청소하고서도 만들고, 의욕이 생기더니 주체적으로 열심히 노력을 들였다. 


제출을 하고, 친구와 놀다가, 무사히 서울로 올라와서 직무 교육을 듣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직감이 찾아왔다. 무소식이 곧 불합격. 입사지원서를 확인했다는 메일을 받은 지 3일 째 되는 날에 딱 직감이 강림했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다. 어차피 안될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학교 취업진로팀에 가서 "자소서 참 잘 쓴다"는 말을 매번 들었음에도 번번히 서류전형에서 탈락하는 것은 분명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리고 후회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기에 마케팅은 고이 접어두기로 마음 먹었다. 경영학을 부전공이라도 하지 그랬냐는 사람들의 말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단순히 취업 스펙이 모자라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였기 때문에 더이상 불합격에 상처받지 않는다. 


다시 전공으로 돌아왔다. 한 번 공대생은 영원한 공대생인 것 같다. 기술영업직부터 품질관리까지 최대한 화학공학에 초점을 맞추어 다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다짐을 얻기까지 오랜 쉼과 생각이 있었고, 무엇보다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분명 엄청나게 어려운 길임은 확실하다만, 그래도 전공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소서조차 읽히지 않는 불상사는 안 생기지 않을까 내심 욕심낸다. 


이번 하반기 공채에서는 제발 좋은 결과가 생기길 간절히 바란다. ㅜㅜ 

학자금대출금 눈치가 너무 보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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