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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Sep 01. 2016

막심 벤게로프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천재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작곡가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오케스트라에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연습하느라 여념이 없기도 하고, 박자 감각이 조금 후달리는 탓에 곡을 몇 번이고 반복 재생해야 했다. 퇴근 후 집에 가서 명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따라하며 소리의 질감과 세기를 조절해가며 최소 1시간 씩은 연습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25살, 음악을 제대로 잘하기엔 늦은 나이지만 피콜로 파트도 겸한다는 부담감에 전공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는 것 같다. 7년만에 잡은 플룻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던 것도 잠시, 이번 한 달동안 참 다이나믹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음악에 대하여 특별히 조예가 깊은 편은 전혀 아니지만, 곡을 준비하며 느낀 바와 공부한 바를 풀어보겠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막심 벤게로프, 사라장에 대해 정확하고 자세하고 알고 싶다면 전문 평론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사라장이 연주하는 곡부터 시작해 여러 지휘자와 연주자의 동일한 곡을 듣고 있다. 요새는 막심 벤게로프의 곡만을 듣는 중.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바이올린과 격정적이고 달콤한 사랑에 빠진 것 같아 중독된 듯 계속 보게 된다. 사라장의 연주는 실패 하나 용납하지 않는 완벽함, 침착함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안정적인 연주가 특징인 것 같다. 그와 비교해 막심 벤게로프의 연주는 어딘가 조금 더 격정적이다. 화려하고 열정적인 러시아 음악가의 특징과 함께 막심만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색이 만났다고 해야 할까. 만화를 찢고 나온 듯 표정이 다양해서 그런 지 더 격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둘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취향에 따라 갈릴 순 있겠다) 명 연주자들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연주를 다 같이 들어보며 비교해봐도 좋을 것 같다.


막심 벤게로프의 연주는 https://youtu.be/YsbrRAgv1b4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러시아 연주만의 격정적이고 독특한 색깔이 좋다면 막심 벤게로프의 연주를 더 선호할 수 있겠다.

지휘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했다. 1악장에 플룻 파트1 주자가 실수로 한 박자 더 일찍 나온 것이 들린다.

이어서 클라리넷도 실수를 하는데, 이렇게 세계적인 거장과 함께 연주하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도 실수를 여러 번 한다는 것에서 이 곡을 연주할 나의 운명적 부담감이 조금 줄어들었다.


Sibelius Violin Concerto - Maxim Vengerov, Daniel Barenboim, Chicago S.O. (CSO)


사라장의 연주는 여기로. https://youtu.be/gpS_u5RvMpM 

지휘는 얍 판 츠베덴이 했다.


Sarah Chang playing the solo violin/Jaap van Zweden conducting the Radio Filharmonisch Orkest (RFO)


막심 벤게로프는 러시아(그것도 시베리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음악 천재가 그러하듯 다섯 살일 때 첫 리사이틀을 가졌고, 10살 때에 비니야프스키 국제 콩쿨에서 우승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여러 콩쿨에서 우승하며 영국 왕립 음악원에서 공부를 했고, 아주 바쁜 연주자로서의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한참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2007년 어깨 부상을 당하면서 더 이상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없다고 판단, 지휘자로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깨를 다친 이유는 정확하게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테니스 치다가 넘어지면서 다쳤다거나 헬스를 무리하게 하며 근육이 파열됐다거나 하는 썰은 돌아다닌다. 이후 2011년 재활에 성공하며 다시 바이올리니스트로 복귀를 했는데, 전성기 때의 실력에 더 깊어진 음악적 해석이 더해지며 화려한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막심은 어깨를 다치며 지휘자로써 활동할 때가 음악적으로 더 공부하고 성숙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회고한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중 추천할만한 음반은 정경화, 길샤함이 연주한 것이 가장 유명하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지금까지 아주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명곡 중 하나다. 시벨리우스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우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는데, 초연이 끝나자마자 마음에 안 들었는 모양인지 바로 다 뜯어고쳐버렸다. (초연 당시 다소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존재하긴 했다)

보통 작곡가들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할 때는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위해서 작곡하는데, 시벨리우스는 자기가 직접 연주하려고 작곡했다. 실제로 열 네살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너무 늦게 시작한 탓에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엔 한계가 있었다. 음악원에 있었을 때 그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목표로 바이올린을 주로 했는데,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독주를 맡았다가 망해버린 이후로 작곡과로 옮겨버린 것. 이후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꿈은 계속 품에 간직하며 틈틈히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비록 연주는 망쳤지만 바이올린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충분히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작곡가들과 달리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작곡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국회 연금을 받고 퇴임했고, 활발한 작곡 활동 덕분에 경제적으로 여유로웠으나 그를 상쇄할만큼 큰 낭비벽이 있었다. 술과 담배를 좋아해 항상 손에서 떼지 않았다가 43세에 후두암 진단을 받았는데, 이 때 금주 금연을 선언했으나 수술로 암이 완쾌되자 바로 술담배를 시작했다. 세계 1차 대전과 암이라는 위기에서 벗어난 그는 92세의 장수를 누리고 숨을 거뒀다. (그의 아내 아이노 시벨리우스는 남편보다 더 오래 살아 98세로 생을 마감했다. 굉장한 장수 커플)


말년에는 작곡 활동을 중단해버리는데,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다. 유행에 뒤쳐진 음악만 써내다가 세계 1차 대전이 벌어지며 급변하는 조류를 따라가지 못해 결국 작곡을 관둔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그의 음악 스타일은 당시 스타일에 비해 좀 구식이었다. 시벨리우스의 아내 아이노의 회고에 따르면 1940년 대 초-그러니까 시벨리우스 말년-에 시벨리우스가 갑자기 악보들을 마당으로 가지고 나가서는 불질러 태워버렸다고 하는데, 그때 그가 받은 스트레스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그의 말년 음악에 대해서 가디언지는 "다른 작곡가들이 칵테일을 만들어 줄 때 시벨리우스는 맑고 차가운 물을 줬다"고 회고한다.




연주를 준비하기 전에는 굉장히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곡인데, 연주 때문에서라도 반복적으로 듣다보니 이 곡의 매력을 차츰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클래식은 반복해서 듣고, 직접 연주를 해보아야 그 매력을 알 수 있게 된다는데 확실히 많이 들어봐야 미세한 차이까지 알게 되는 것 같다.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다면 흥미를 가지고 무한 반복하며 듣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클래식으로 입문하는 장벽이 높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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