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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지 Nov 05. 2023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악의에 물들지 않은 돌맹이 하나를 쥐고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호평과 혹평이 공존하기는 했지만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이라는데,

거장에 대한 예의로라도 일견이 필요했던 영화.


은퇴에 대해선 이미 번복한 전적이 있다해도 그의 애니메이션과 함께 인생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보냈으니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 지 들어볼 필요가 있다 싶었다.


제목이 워낙 '거창'하기도해서,

영화내내 다소 지루해지는 부분에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떠올리며

이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보았다. 하야오 감독이 던지는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살래?

이게 내 세계관이고 내 작품들은 이런 사고체계와 정서 속에서 만들어져 왔는데

너는 어떤 인생을 만들고 있니', 라는 질문을 곱씹으면서 말이다.


개인 소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하야오 감독의 전작들과 함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

<인터스텔라>, 디즈니의 <소울> 등의 영화 속 상징들이 오버랩되는, 윤회와 순환, 선형적 우주라는 동일 맥락에서의 한 세대와 인생의 마감과 계승에 대한, 그리고 그 이후의 '영생' 에 대한 해석과 적용을 제안한 영화, 라고 할 수 있겠다. (한 문장이 너무 길다!)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우리 세대에도 젊은 날이 있었어. 나름 치열하게 살았지"


 늘 등장하는 할머니 캐릭터들과 이들의 회춘 씬. 노화의 쓸쓸함에 대한 동질감, 그리하여 셀프 보상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달까. (드라이한 시각으로 보자면) 그리고 여성, 어머니란 존재에 대한 아련한 정서가 늘 눈에 띈다. (대개 젊고 예쁘고 유능한 여성으로 획일화, 미화되는 편인데 이는 하야오 감독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일본 애니에서 느껴지는 불편감이기도 하다. 여성에 대한 입체적 시각이 결여되어보이지만

이는 세대 나름의 최선일 것이다.)


'아버지가 좋아한 사람'


이 의미가 무엇일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엄마)가 아닌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모험을 감행하는 주인공 마히토의 영웅적 면모와 헌신적 모험심.


"나를 배우는 자는 죽는다"


무덤 앞에 있던 글귀. 배우지 않아도 어차피 죽는 건 매한가지, 배움의 과정에서 죽음의 매혹을 더해야한다는 것일까. 주인공 마히토의 이름표기는 真人. 왜가리의 말을 빌어 "참된 사람, 진실된 사람에게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 라고 암시하지만 그는 어차피 불멸의 계승자. 결국은 죽음을 초월한 존재이다.

(판타지라 감안해도..)


'악의' 에 물들지 않은 돌맹이 하나


영웅 조차도 '완벽'해지기 위해 '악의'를 차용한다. 100% 선의로 가득한 의도, 삶이란 그 자체로 존재불가, 무능이 될 뿐. 피할 수 없고 떨쳐낼 수 없는 '악'의 보편성이라지만 사실 절대선과 절대악의 구분이란 없다.

선과 악의 기로에 설지라도, '풍요롭고 평화로우며 아름다운 너만의 세계를 만들'라는 '심오한' 덕담이 담긴 노장의 '선의'다.


와라와라


디즈니 영화 <소울>에서 본 'pre-life'의 단계. 전쟁, 같은 필요'악'의 존재를 인정, 하고 수용하려는 심경 변화일까. 반전의식, 환경보전옹호 등의 메시지를 담았던 전작들로부터 국면 전환된 것일까. 체념일까. 와라와라를 잡아먹는 왜가리들이 있어 인구수가 조절된다는 논리는 이제까지 충실히 구축했던 판타지를 파괴하는 격이 아닐까. 해결되지 않은 모순들이 뭉그러져 있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수채화풍의 나무, 숲, 풀들의 배경 작화가 그러한 것 처럼.


같은 제목의 책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요시노 겐자부로의 동명의 책이 있으며 그 책은 <데미안>처럼 '일본에서 청소년 인생론의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는 책'

이라고 한다. 영화 속에서, 마히토의 엄마가 남겨 준

유물 중 하나로 등장하기도 한다.


출판사가 올려놓은 그 책 의 소개글에 의하면 헤르만 헤세 저 <데미안>의 일본판 쯤 되는 듯하다.


"코페르의 일상은 열다섯 살 또래들의 솔직함과 쾌활함으로 채워져 있으며, 외삼촌의 멘토링은 휴머니즘적 세계관, 진보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본이 인간성을 제압한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한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주인공 코페르와 외삼촌의 대화를 통해 청소년들의 고민과 방황이 올곧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진실된 소년 마히토는 문을 통해 환상에서 현실 세계로 복귀한다. 거대한 유산의 승계를 거부하지만 그가 이미 보고 체험한 사실은 그의 우월한 DNA 만큼이나 머리와 가슴 속에 영구 각인된 것. 평범한 악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이제 마히토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결론처럼 '삶이란 모험을 함께 헤쳐갈 친구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친구 되어 길을 가다 악을 만나 함께 싸우고 그러다 서로 지치고 실망하여 등 돌려 적이 되고, 다른 친구를 찾아 그 친구와 함께 잠시 악의 존재에 대해 잊고 살기도 하고.. 그동안 악인지 선인지 구분하기도 귀찮아지며 눈이 흐려지고 신경들이

무뎌지고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그렇게 돌아가는 게 인생인가 라는 쪽으로

생각이 흘러가기 전에,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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