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토록 열심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망가, 일본 애니의 전형적인 말투, 오글거리는 대사가 불편하다.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시선도 마뜩치 않다. 세련된 작화에서 느닷없이 단순한 선으로 넘어가며 코믹한 장면이 연출될 때, 함께 피식 웃지만 동시에, 함께 '유치'해지는 듯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까지는 '참아'줄 수 있는데, 다른 애니들은 글쎄다. 학교 다닐 때 만화방을 들락거려본 적이 없는 딱한 범생이의 입장에서 추억이라고 떠올릴 것이랄 게 없다.
그러나 지난 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슬램덩크" 선풍에 얼떨결에 동참한 후 입장이 달라졌다. 그 전에 슬램덩크라는 만화책을 읽은 적도 없었다. 들어본 적은 있었다.
일본이란 나라, 일본 '것들'에서 지난 시절의 '향수'를 느끼는 시대가 도래했다.
언젠가부터 왠지, 일본에 가면 세련된 포장을 한 8-90년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잃어버린, 이 사회에서 이미 사라진 인간미가 아직 거기에 있는 듯한. 그야말로 격세지감.
몇 해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에노시마의 기차역을 간 적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멋진 기차역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지나갔다. 마치 80년대의 '학창시절', 하교 풍경처럼. 검은 교복에, 검은 교모를 눌러 쓴 텁텁한 복장이지만 개구진 몸짓으로 어깨동무하며 가는 남학생들. 한국에서는 더는 보기 힘든, 지난 과거의 모습 같았다.
슬램덩크에 나오는 그 기차역에 가 보았다는 이유로,
"슬램덩크" 영화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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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런 류‘, 오글거리는 만화책 원작의 영화를 찾아보게 될 듯한 예감이 들었다. 올해는 "블루 자이언트"가 그 분류에 해당되는 영화였다.
과도한 신파까지도 아닌데, 몇몇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가슴 쫄깃한 순간들도 더러 있었다. (이 정도면 티켓값은 충분히 한 것.) 개성이 다른 세 명의 청년이 재즈의 대한 열정을 불사르는 이야기, 그 예정된 성공담 안에 있는 뻔한 스토리 안에서도 영화는 활활 타오른다.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극히 전형적인 만화 캐릭터들. 휴먼다큐 주인공의 모범답안격인 인간승리형 주인공 1, 세련된 외모 그러나 다소 차가운 성격, 이미 탁월한 재능을 지닌 주인공 2, 그리고 어쩌다 합류하게 된 깍두기 역할이지만 결국 대열에 합류하는 후발주자 주인공 3. 이들 셋의 열정과 노력에 동참하고 감정이입하면서 재즈의 바다에 풍덩 빠지게 되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