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주체성을 가지게 하신 타이밍

진짜, 예수님이 관계 맺는 방식은 놀라움의 연속

by 김혜진


20250212. 눅 8:40-48


> 묵상

서로의 사건 사고를 가지고 예수님에게 몰려드는 군중들

마치 공동체 같다.

우리가 예수가 없고 말씀이 없다면 이 모임에 무슨 생명이 있겠는가?

그냥 군중(무리)일 우리를 공동체(코이노니아)로 있게 하시는게 예수님이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45’

예수님은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줄만 아시는게 아니라 손을 댄 자가 누군지도 아셨을거다.

그런데 굳이 그가 누군지 묻고 여인이 스스로 나오게끔 하신다.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47)’


혈루증이 있었다면 당시 부정하다며 무리에 들수도, 사람앞에 나와 말할수도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데 그 여인에게 일부러 상호작용할 기회를 주신다.

평생을 죽어지내며 말 못했을 사람의 상처를 만지시고

그녀가 이제 예수님을 만나 주체성을 가지고 ‘사람 앞에서 말하니’하게 하신다.

거기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48)’해주시며

예수를 따르던 무리의 사람들이 그녀를 인정할 수 밖에 없게 해주신다.


우린 왜 다시 이곳에 왔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시누의 죽음 때문인가? 생각해 본적도 있지만

이혼, 재혼, 혼외임신, 시누의 죽음 등 각종 수치스러운 사건 속에서 주체성을 가지고 관계 맺고 말하고 (때론 다투며) 아픔과 상처가 회복되게 하셨다.’

결국 날 위해 우리 각자를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부르신게 아닐까?

예수님께 손댄 이유와 나은것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때 ‘독이 있나이다 할 수 있는 공동체로 가야한다’는 설교를 듣고 남편을 통해 결정하게 하신 거 같다.


> 삶

목장에서 잘 나누고 가고 지체들의 나눔도 잘 듣기

• 기도(ㅇㅇ집사님을 위해)


> 기도

주님, 이곳에 다시 부르신 이유가 나의 아픔, 예수님께 손을 내민 이유, 회복의 과정을 제가 말할 수 있도록, 그것을 담아두지도 없는 것처럼 부정하거나 억압하지도 않고 주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저 살으라고 여기 보내주셨군요. 그리고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이 있는 곳이 이곳이었고요. 주님 감사합니다. 그저 우리가 서로의 혈류를 하나의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구속사로 해석하고 어느 누구도 결국에는 판단할 수 없고 사랑할 수 밖에 없게 하는 이 곳을 주님이 세우시고 지키시고 저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저또한 지체들의 나눔을 어찌 그 여인이 예수님에게 손을 댔는지 잘 듣게 도와주세요. 그들이 주체성을 갖는 건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니 신뢰함으로 사랑하고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악을 행할 대상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