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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게 필요했던 충성은

아무것도 안 할 줄 아는 것

by 김혜진


25.03.17,월 / 눅 16:1-13


> 묵상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는 종이 꾀를 부려 주인에게 빚진 이들이 후에 자신을 영접할 수 있도록 그들의 빚을 마음대로 줄여 증서를 써준다. 예수님은 그의 지혜를 칭찬하신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사실 모르겠다.

타인의 재물을 낭비하며 사용하던 자가, 똑같이 타인의 재물을 자기 것처럼 줄여준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예를 들고는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12)’하신다.

말이 안맞지 않나? 이 종은 남의 것(주인)에 충성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에게 빚을 진 자들이 채무관계 증서를 한결같이 종에게 턱턱낸다.

똑같이 돈을 두고 앞에는 자신을 위해 낭비했고, 뒤에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빚진 자들과 관계맺어 마음대로 탕감시켜 준 것이다.


설사 주인의 돈일지라도 개인이 사용한 것과 타인을 위해 사용하면서 자신의 안위를 예비한 것이 차이라면 차이이다.

그만큼 그는 지혜있고, 그 지혜를 위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나갔다.

그 안에 각종 꾀가 있다 하여도 뭏튼 그는 재물사용에 있어 엄청나게 지혜롭게 굴었다.

그의 방법의 타당함이 아니라 그 순간 엄청난 지혜를 보여 자기 살 길을 만드는 것에 대한 충성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참으로 지혜도 없이 무식한 충성을 보이던 자였다.

청렴, 결백, 무결같은 것들이 지배했던 거 같다.

물론 청렴하지도 결백하지도 무결하지도 않은데,

어떠한 지혜는 비겁하다 여기고, 어떠한 지혜에는 꼿꼿한 나 자신을 굽힐 수 없었다.



나의 안위를 생각하고, 비굴해야 하는 순간에 비굴할 줄도 알고,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을 뒤늦게라도 갖춰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었다.

이대로 죽어도 난 굽히지 않으리 하면서 신념으로 버티면서 정신승리를 하던 삶을 살던 자가 나다.



그런 태도는 내 마음 곳곳을 병들게 했다.

아파서 누군가를 원망할 수 있는 순간에도 ‘나는 너랑 다르다.’와 같은 것으로 날 억압했고,

남들이라면 처한 경제적 현실에 뭐라도 뛰어들어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무식함과 답답함이 내게 있었다. 그리곤 그런 나는 고결하다고 착각하며 42년 가까이를 살아왔다.

2023년 고결함이 깨질 일이 생겼다. 도저히 정신승리로 안되는 것을 작은시누의 죽음 이후 여러 처리할 일들을 통해 경험했다.

당시 주변에서 내게 바라는 것은 책임같은 것이었다.

내가 짓지 않아도 될 과도한 책임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포기선언’같은 걸 하나님에게 한 거 같다.





하나님, 저는 못하겠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과도한 책임감과 정신승리로 무장하던 삶이 해제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작년 가정내에서 이루어지는 가족 간 갈등 또한 고결하게 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의 것을 넘어섰다.


그리고 그때부터 난 그냥 힘든 나를 힘들다고 인정했고, 힘든 것들은 힘들다고 시인했다.

힘들때 꾸역꾸역 그냥 모든 걸 감내하는 어리석은 고결함에서

힘든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비로소 각자의 삶에서 필요한 섬김과 가능하지 않은 섬김 사이에 경계를 짓기 시작했다.



주님은 이제껏 얼마나 내가 안타까웠을까?

작년 목자님이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아무것도 안해도 돼.’

타인의 삶에 선구자적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게 내 어린 시절 경험으로 인해 하나의 도식처럼 되버려서 핵심신념으로 자리 잡아 있었다.

불필요한 것이고 왜곡된 것인데 나도 모르게 굳어져 있던 패턴이었다.

그런 내게 작년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게 그때는 무슨 현실감 없는 소리일까 생각했는데

당시의 나의 현실에 가장 현실적인 말이었던 거 같다.

감사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에…

그리고 내가 왜곡되어 병든 것인지도 모른체 그것을 고결하다 착각하며 오만한 자리에서 짓고 있는 수많은 죄들을

멈추고 인식하게 해주신 하나님에게 공동체에 감사하다. ㅠ _ ㅠ


> 삶

오늘 해야 할 일들 하는 것 (학부모상담,상담준비)

큐티 후 기도(일대일양육, 예목, 청소년부 기도)


> 기도

주님, 저는 불의한 것들을 멀리하다면 나만의 신념으로 불의를 규정지어 고결함 속에서 살아내느라 죽을 거 같이 힘들었습니다. 충성되다는 것이 내 어떤 신념을 충족시키는 삶이 아닌데, 어린 시절의 두려움이 제 사고패턴이 되고 행동이 되었습니다. 제 왜곡된 생각과 삶에 찾아와 주셔서 저의 치우침을 붙잡아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 제 삶을 잘 꾸려 나가길 기도합니다. 저한 현실과, 지금의 감정들을 무시하지 않은채 주님앞에 나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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