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도, 염치도 버리고 예수님 부를거야.
25.03.26, 수 / 눅 18:31-43
> 묵상
예수님은 말씀대로 죽으실 것이고 수치, 능욕을 당하실 것이다.
예수님도 그것을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보지 못하는 맹인이 예수님에 대해 듣자
그는 예수를 부른다. 꾸짖고 더욱 크게 소리 질러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9)"한다.
체면도 염치도 그에게 없어 보인다.
매 주 예배 드리고 목장가고 하지만, 과연 난 체면도 염치도 없이 예수를 부르나?
목장에 나가서 불편감이 들면 피하고 싶고, 묵상 되고 적용된 것들을 정갈하게 잘 나누고 싶은 마음에는
체면, 염치를 내려놓고 예수를 소리쳐 부르는 마음이 아니었던 거 같다.
물론, 그런 날들도 있었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얼마나 ’반듯함‘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나!
'예수님 이것보세요. 전 큐티를 위해 주석성경도 많이보고, 적용거리를 찾아서 매일 적용하고, 가정예배도 성실하게 꾸준히 드리며, 주님만 보고 있어요!' 하는 나를
물론 주님은 사랑하셨겠지만, 나에게 손을 한번 더 뻗고 싶으실 때 손을 잡을 빈 자리를 못느끼시지 않았을까?
내 자식이 아침에 일어나서 스스로 밥먹고 설거지하고 방도 말끔히 정리해두고 학교에 가서 우수한 성적에 돌아와 집에서 잠시 휴식 후 운동도 하고 자기관리를 하며 하루를 흠 잡을 데 없이 살았다면 ?
부모로서 뿌듯이야 하겠지만, 걔한테 내가 무슨 손이 필요하겠나? 싶은것처럼
난 주님한테 그런 아이였을 거 같다.
아, 씨발 더는 못해먹겠네.
하고서야 주님이 일하시는게 있는 거 같다.
반듯하게 살며 해야할 것들을 잘 수행하던 때 되지 않던 것들이 그냥 내 힘이 다 빠져서
나는 진흙탕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나죽겠네 나는 못하겠네 어떻게 좀 해봐요 하나님 하고 있으면 되는 게 있어서 신기하다.
남편 예목도, 남편의 적용도 (적용을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목자나 목사님의 입을 통한 처방), 지게차 합격도 그런 것 중 하나같다.
남편이 어제 네 기도 때문에 내 앞에 7번부터 나잇대가 비슷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떨어지는데
긴장이 되서 처음으로 시험전에 기도했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집이 이 지경인데 자기가 그럼 이제까지 면접보고 시험볼때 기도도 안했다는 건가… 기가 막혔다.
그 말을 듣는데 또 짜증이 올라왔지만 “하나님이 오빠 기도를 받고 싶었나보다.”라고 했는데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하나님은 나의 기도도 받고 싶은거다.
모양은 다르지만 둘다 하나님한테 매달리는 기도, 우리는 못한다고 하는 기도.
그러니 안되는 나도 마음껏 누리고 싶다.
목장에 오픈하고, 누가 뭐라 하든지 체면도 염치도 없는 맹인처럼 “예수여!!!” 하면서
예수를 보고싶다.
> 삶
목장에서 진솔한 오픈들을 하기 (안되는 것들 잘 정리해서 나누지 말고 그냥 편하게)
지게차 시험건이 있어서 대체 오늘 용접시험에는 뭐라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이것도 그냥 마음 가는대로 있는 나 그대로 기도하기
> 기도
주님, 수치와 능욕을 예수님도 받아들이시는데 저는 대체 뭐라고 남편이랑 사는 이 삶 자체가 수치로 여겨질때가 너무 많습니다. 2년간 무직이면서도 태평해 보이기만 하는 남편의 태도는 제게 미치도록 비참함을 안깁니다. 이런 저를 어떻게 해보려고 너무 애쓰지 않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체면도 없이 예수를 더 소리높여 외치는 그 맹인이 바로 제가 되고 싶으니 주님, 제가 더욱 진솔하게 나를 고쳐달라 외치게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