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적인 것으로부터의 균열

by 김혜진


25.4.22,화 / 눅 24:36-53



> 묵상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 가운데서 말씀을 전하신다.

그런데 자신을 보고 두려워하고 놀라워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41)’하시곤

구운 생선을 제자들이 건네니 그 앞에서 잡수신다.


그리곤 계속 말씀으로 구원, 복음, 사명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 얘기들 속에서 갑자기 쌩뚱맞게 먹을 것을 찾고있나 싶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믿어지는 것에 대한 어려움, 생경함

결국 이 상황 안에서 제자들이 가졌을 감정이나 생각을 주님은 아시니

그들의 마음에 안심을 주기위해 먹을 것을 찾으셨단 생각이 든다.



‘얘들아, 나 밥을 먹어야 되는 너희같은 몸으로 살아난거야. 그때 내가 그렇게 아프게 고통받다 죽어서 너희들 괴롭고 슬펐지? 그런데 봐봐. 나 살아있잖아.’ 하는 듯 하다.

결국 생선으로 이들과 교제하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신 이후에 ‘또 이르시되(44)’를 하신다.



어제 장례식장에 가는데 남편이 말도 없이 사라졌다.

말없이 나가있는 때가 많으니 옥상에 가서 담배피고 있겠지 했는데 아무리 불러도 없었다.

아무 말 않고 먼저 주차장에 갔나보다 싶어서 주차장으로 갔다.

길을 건넜는데 좌회전 신호를 받는 남편과 차를 봤다.

어젠 내 핸드폰이 분실되서 연락도 못하는데 남편은 아무런 소통도 없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뭘 하는건가?

기가찼다. 매번 상호작용 없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게 짜증났다.

그 생각과 행동이 예수님처럼 제자들의 마음을 만지고 진정 시켜주는 거면 말을 안한다.

굳이 왜 이런짓을 하나? 싶은 것만 골라서 한다.



먹기 싫은 생선을 계속 먹이는 거다.

남편이 주로 주는 생선은 이런식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거 (싫다고 말해도 소용없음), 자기 생각해 이렇게 하면 좋겠지 ? 싶은것들

결국 그 배려의 행동안에 배려를 받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편은 그 존재에 대해 알고싶지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자기 생각에 이게 필요한거고 좋으거면 아무 말 없이 그걸 하고 상대방인 나는 황당하다.

어디어디서 만나자라고 했는데 본인 생각에 처음 얘기한 곳 말고 다른 곳이 편하겠지? 싶으면

아무 말도 안하고 자리를 이동하는게 내 남편이다.


진짜 돌아버릴 거 같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이런 행동이라 어제 열받아서 다시 돌아가 차 범퍼를 발로 차버렸다.


난 남이 주는 생선이 먹기가 싫다.

내가 원하는 생선이 아니라면 그건 줘도 받은게 아니다.



이게 하도 반복되니 10에 7,8은 그냥 싫건 좋건 받는 척이라도 하는데

여전히 1,2번은 생선을 받지 않는 걸 넘어서서 눈앞에서 생선을 뼈까지 바스러트려야 직성이 풀린다.


도대체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다. 마음을 열어 성경을 못깨달은건지 깨달아서 이정도라도 하고 사는건지…



그런데 이런 생각과 감정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하다.

평생이 엄마는 내가 원하는게 아닌 자기가 원하는 것들로 나를 채웠다는 것에 심각한 분노 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우리엄마가 기이하다고 여겨졌다.

원하는 걸 물어보고 원하는 걸 해주지 않고 다른 것들로 채워놓고 ‘이것봐 너무 좋지?’하는 식의 더블 바인드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사용한다.

그 경험과 감정이 지배적이어서 몰랐는데, 최근에 그렇지 않은 장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몇 가지의 인상적인 사건들로 관계와 내 삶을 정의내리고 있었단 걸 발견했다.




엄마도, 남편도 결국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만 자신의 생각대로 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랬던 것만 나에게 지배적으로 남지 않고, 그렇지 않았던 순간들도 떠올릴 수 있는 여유공간이 생겼다.


이건 하나님이 내게 약속처럼 보내주신 성령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주지화의 방어기제를 쓰면서 평생을 머리로 이해하면서 살아서 이해의 시도를 해도 안되었던 것에 균열이 갔고

다른 경험과 정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건 성령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거였다.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심은 남도 살리기 위함이지만 결국 가장 근본적으로는 나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 삶

원치않는 생선만 줬다는 지배적인 생각에 균열이 가게 하신 것에 감사기도 하는 것 / 바쁠때는 큐티를 읽고라도 나가는 것

그냥 지금처럼 큐티, 기도, 예배, 목장 나가는 것.


> 기도

주님, 사실 안먹어도 되는 생선인데 제자들을 생각해서 달라고 하시고 드시는 예수님과 달리 저는 제 생각과 다르면 이딴거 필요없다고 분노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욕구와 다른 욕구가 채워지고 살았고,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여기고 믿었던 저인데 제 생각에 균열이 가게 하시고,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43년만에 기억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제가 먹고 싶은 생선을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각자의 사연들을 제가 이해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제게 엄마와 고통스러웠던 관계 뿐 아닌 다른 관계와 경험이 있었음을 기억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니 남편과 자녀에게도 그러한 날이 오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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