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쯤 됐나. 실직한 지 말이다.
팀장님의 어두운 얼굴과 잦은 자리 비움. 10여 년의 회사 생활로 짐작하건대, 불길한 징후였다. 불안을 애써 외면한 채 바쁜 연말을 붙잡고 있었다. 결국 회사 대표님의 면담에서 '경영 악화'로 팀 전원은 권고 사직을 통보 받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름 회사 네임 밸류도 있고, 30대 중반으로 젊다고 느꼈기에 실직만큼은 방심했지 싶다. 정확히 이주 뒤, 인사팀장의 안내에 따라 퇴사 사유에 '회사 경영 악화' 여섯 글자를 꾹꾹 눌러 쓰며 고용 불안을 뼈저리게 느꼈다.
사실 겨를이 없었다.
당시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린 직후였다. "이번 기회에 겸사겸사 쉬면서 태교해."라며 주위의 위로도 잠시, 입덧의 고통과 무기력함에 시달렸다. 숙취를 매일 하는 기분이라는데. 술은 잘 못하지만, 이런 게 숙취라면 너무 괴롭겠다 생각했다. 매일 체기를 경험했다. 그리고 처음 느껴보는 체력의 한계였다. 100%였던 내 몸의 배터리가 날마다 10%으로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집안일은 엄두도 못 냈다. '입덧은 언제 끝나고, 태교를 하라는데 그게 무엇일까?' 답답한 시간만 흘러갔다. 조바심이 났다. 엄마로서도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덧없는 두 달이 지났다.
거짓말처럼 입덧은 사라지고 체력이 회복되고 있었다. 여전히 태교는 막막했다. 남들이 말하는 클래식을 듣는다든가, 바느질을 한다든가, 출산 용품을 미리 준비한다든가 하는 그런 태교 말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채워나갔다. 아침 느즈막이 일어나 요거트와 견과류, 사과로 배를 채우고, 청소를 하며 집을 간단히 정리한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집 근처 도서관으로 향한다. 내 취향으로 읽고 싶은 에세이, 철학서 등을 대여해 읽는다. 아직 육아 도서는 눈길이 잘 가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 번은 필라테스를 하며 몸을 움직인다. 첫 수업 날, 선생님이 "아기를 품고 올라 오실게요." 말씀할 때 생경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아기와 내가 같이 호흡을 내쉬고 뱉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개운하게 씻고 오후 4시,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 라디오를 배경 음악 삼아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10년 동안 콘텐츠 에디터로서 회사의 글을 썼다. 내가 매일 써야 하는 주제가 있었다. 이제는 그저 내가 겪는 일과 감정을 자유롭게 기록할 뿐. 나와의 모든 지금을 기억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태교'였을지 모른다.
나를 소중히 돌보는 일,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너와 먹고, 움직이고, 정리하고, 읽고, 쓰는 시간. 이미 엄마가 될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