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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소영 코치 Jul 27. 2022

서울과 해운대에서 동시에 살고 있습니다.

다른 공간, 다른 루틴, 다른 나.



나는 서울에  살고 있으며 부산 해운대에 방을 하나 구해서 왔다 갔다 하며 살고 있다.  작년까지 부산에 와본 적도 거의 없던 내가 건강상의  이유로 1월에 한 달 살기를 한 후에 몸이 건강해지는 기적 같은 일이 있었다. 그 이후 부산과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 살고 있다.  다행히 워케이션이 가능한 직업이다.


1. 부산에 도착한 날의 밤은  택시 안에서 꼭 치킨을 시켜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와 먹는다.  처음에는 밤에 도착해서 배달이 가능한 음식이 치킨이어서 시켰던 것 같은데 어느 날부터 치맥을 먹어야 부산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서울에서는 절대로 치킨을 먹지 않는다. 친구가 치맥을 하자해도 결국 다른 메뉴를 시킨다.  같은 사람이 입맛이 달라지는 것일까?   


2.  다음날 일어나면 자동적으로 해운대 바닷가를 30분 정도 맨발로 걷는다. 스벅에서 사이렌 오더로 커피를 시켜 가지고 들어온 후 베이글을 먹는다. 체력이 좀 남으면 홈트를 하고 아침을 먹을 때도 있다.  해가 떨어질 때쯤에도 내려가 30분 정도 걷다 온다. 앞에서 그랜드 조선까지 걷고  그 반대편으로 끝까지 걸으면 딱 30분이다. 가끔 1시간의 시간이 남으면 샌드위치를 사들고  돗자리 위에서 책을 읽으며 먹는다.  파도 소리가   asmr 이다.


서울에서는 왠만하면 걸으러 밖에 나가지 않는다.  나가서 걸을 수 있는 길도 아닐뿐더러 1분 마다 오는 차를 피하는 것은 더어욱 싫다. 꼭 일어나야 할 일이 없다면 기상 후 몇 시간 동안 직립 보행도 잘하지 않는다.  책보다 넷플릭스를 뒤젹인다.


체력이 안좋아 아침에 헤롱거리는 것인줓 알았는데 부산에서는 벌떡 일어나 걷기 위해 선크림을 먼저 바른다.  자꾸 나가고 싶은 이 마음.



3. 온라인으로 일을 마치면  다니는 한의원과 내려올 때마다 가는 마사지샵을 간다. 지금 다니는 한의원이 서울에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란 생각도 잠시. 이렇게 맞는 곳을 찾았으니 얼마나 좋나 싶고.  


물론, 서울에 더 좋은 한의원과 마사지 샵이 있겠는데 어디 가야 하나 찾아보기도  귀찮은  서울 일상이다. 부산이 더 시간이 많은 삶도 아닌데 걸어서 갈 수있는 곳 세팅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물론 가는길에 바다가 보인다.



4. 여기 와서 가는 식당도 동일하다. 밀면집, 브런치, 돼지국밥, 스페인식당,  친구 오면 가는 고깃집. 가끔 복국, 해장국.  회는 배달

서울에서는  같은 곳을 두 번 이상 간 적이 별로 없다. 어디 갈지 고민하기 싫을 때 정도 가는 곳인데  부산에 오면  리츄얼인 듯 도장깨기인 듯 한 번씩 간다. 뭐 먹을까 고민도 하지 않는다. 한번씩 가다 보면 서울로 돌아갈 날이 정해지고  새로운 곳을 도전할 시간 없이 돌아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인 @캥거루포인트 평일 9시에도 자리가 없어 웨이팅 하는 곳에서 혼자 당당히 먹는다.

5.  맥시멀 리스트의 집인 서울 집과 다르게 부산은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빨래도 거의 매일 해야 하고, 없는 것대로 살아야 한다.


서울은 더 이상 넣을 곳이 없을 정도로 물건이 넘쳐나고, 넘쳐난다. 그리고 그  두 공간에서 나는 너무나 편하고 익숙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부산에서 살다보면 “이렇게 없어 살는데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 서울 올라가면 안쓰는 것들  버려야지!”라고 다짐을 하지만 막상 서울 집에 올라가면 버릴 것이 없다.  버리는 것도 일이니까 그냥  나의 운명이려니

 


왜인지 모르겠다.


서울의 일상이 너무 바빠서 거의 두 달 만에 내려왔다. 오는 길은 너무 멀고 귀찮아서 아~ 너무 멀어.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이지?라고 하지만  막상 오면 너어어어어어무 ~~~~~ 좋다.  단전부터 흥이 올라와서 길 가다 춤추고 싶은 느낌이 든다.   서울과  부산의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인 듯하다.   공간이 달라진 것만으로  사람이 달라질 수 있을까?  



공간의 미니멀리즘이 일상의 루틴도 미니멀하게 만드는 것일까?  

서울 살며 일상의 루틴을 만들고자 몇 년을 노력했는데, 부산은 그냥 된다.

부산에 오면  해야 할 것이 딱딱 정해져서 그것을 하고 가는 느낌이다.

옷이던, 식당이던, 공간이던 선택지가 많은 서울에서는 오히려 더 집중하지 못해 이무것도 안하는 일상이란걸 부산을  통해 깨닫고 있다.


수건도, 옷도, 먹을 것의 선택지도, 쓸 수있는 것들이 서울의 1/10인 부산이라는 세컨하우스 공간에서 오히려 루틴과 리추얼이 생기고 있다.   두 공간, 그것도 맥시멀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로써 살아가고 있는 두 공간에서의 달라지는 나를 관찰하는 것 역시 나에게 의미있는 일이다.  


p.s.

제가 왜 부산과 서울을 왔다갔다 하며 살게 되었는지 궁금하면 아래 글에 있습니다 .

부산 한 달 살기가 나에게 준 것들.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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