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서재 책 리뷰 책 <밝은 밤>
“할머니 치매 판정받으셨어.” 수화기 너머 엄마가 전하는 소식에 무거운 마음이 같이 전해졌다. 통화하는 중에 나는 전화받는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리라고 생각했다. “헉 정말? 그러면 어떡해?” 충격받은 마음에 서둘러 뱉은 질문에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떡하긴 뭐 어떡해. 요양원 가셔야지… 돌봐줄 사람이 누가 있어? 엄마가 요리도 자주 못 해드리는데.”
할머니가 요즘 자주 숫자를 잘 못 센다고 했다. 엄마와 이모는 삼촌과 할머니와 함께 공동으로 농사를 지었다. 농산물을 밭에서 수확해 엄마와 이모가 창고에서 그램 수에 맞게 소분하면 할머니는 곁에서 파를 까거나 고추 봉투를 끈으로 묶고, 개수를 셌다. 주로 농협에 가서 스티커를 뽑고 출하하는 건 엄마의 몫이었는데 할머니가 개수를 셀 때마다 틀렸다고 했다.
엄마는 그날 할머니를 데리고 동네 앞 의원에서 링겔을 맞혀드리고, 치매 검사를 했다. 아무래도 치매가 오신 듯해서 의사 선생님께 한번 검사해달라고 부탁했다고. 간단한 사칙연산이나 본인의 생일, 올해의 연도 등 쉬운 인지 테스트였다. 할머니는 덧셈에서도, 인지테스트에서도 애를 먹었고 결국 치매 판정이 났다고 엄마는 근심 어린 말투로 내게 말했다. 의원에서는 치매 예방약은 꼬박꼬박 챙겨 드시는지, 약이 충분히 남아 있는지 물었다. 할머니는 집에 약이 없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 댁에 가보니 그동안 챙겨 드시라고 했던 치매 예방약은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할머니는 엄마가 몇 통씩 남아있는 약을 보여주자 눈에 안 보여서 다 먹은 줄 알았다고,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더이상 할머니가 요리도, 청소도 예전만큼 못하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았다는 말에 어쩐지 할머니가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조금 멀어진 듯 느껴졌다.
지난 추석에는 엄마랑 이모에게 줄 추석 선물을 고르다 할머니 것도 하나 집었다. 가볍게 입기 좋은 경량 패딩이었다. 추석이라고 회사에서 보너스 같은 게 나오진 않지만, 이런날이라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할머니가 예쁜 옷을 입으시면 얼마나 더 입으실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진분홍색 핑크빛이 어쩐지 할머니와 잘 어울릴 것 같아 선물하기로 했다. 택배 상자에서 막 뜯은 비닐 포장 상태로 할머니에게 가져갔다. 곧 있으면 추워지니 사 왔다고 하자 할머니는 또 매번 같은 목소리로 “아유, 만날 보영이한테 받기만 하네 짜장”하고 말문을 열며 혼잣말 같은 대답을 느리게 이었다. 나는 또 “ 괜찮아요.” 하면서 얼른 입어보시라며 사이즈가 잘 맞는지 색깔은 괜찮은지 물었다. 할머니는 “고오맙다”고 했다. 엄마는 늘 할머니 취향이 까다롭다고 했는데 그런 할머니의 취향에 합격점을 받은 듯해서 다행스러웠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고 내가 현관으로 나서자 할머니는 늘 비슷한 자리에 어정쩡하게 서서 고맙고, 조심히 돌아가라는 말을 현관문이 닫힐 때까지 길고 길게 이었다.
주말마다 집에 가면 할머니는 핑크빛 조끼를 입고 밖에 나와 있었다. 주로 빨래를 널고 계시거나 주차장 너머 농산물이 있는 하우스에 가려고 지팡이를 쥐고 걷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아침에 주차장에 나와 계시길래 아침은 드셨냐고 묻자 “너는 먹었어?”하고 물었다. “빵 하고 수프 먹었어요.”했더니 할머니가 “그럼 빵 조금 있으면 줘보던가.”라며 멋쩍은 듯 웃으셨다. 한번도 할머니가 먹을 걸 달라고 한 적이 없었는데 그 말이 어딘가 할머니가 평소 차리던 체면 없이 가벼워 보여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오전 내내 창고에 앉아 할머니 곁에서 파 다듬는 일을 도왔다. 할머니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파의 지저분한 쭉정이를 다듬고, 파 끝에 시든 것들을 잘라냈다. 일을 돕고 배고파진 나는 “집에 가서 동태탕이나 끓여야겠다”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는 된장을 조금 풀라고 비법을 알려주었다. 엄마의 비법을 따라 푸짐하게 동태탕을 끓여 점심을 해결했다. 엄마는 할머니도 동태탕을 좋아한다고, 갖다 드리면 좋아하실 거라며 양동이 한소끔 퍼주었다. 할머니 댁에 도착해 동태탕을 드리자 할머니는 다른 냄비에 동태탕을 옮겨 담고 내가 가져온 양동이를 깨끗이 씻어, 골라내고 있던 땅콩을 한 움큼 주셨다. 엄마는 무슨 땅콩을 A급으로 받아왔냐고 그러면서 맥주랑 같이 곧바로 먹어치웠다.
엄마는 어떡하냐는 내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간단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할머니 생신이었다면서 새벽 6시에 일어나 소고기 미역국부터 갈비찜, 조기를 구워 할머니 댁으로 보냈고, 할머니를 병원으로 데려가 링겔을 맞히는 날마다 꼬박꼬박 동행했다. 그날마다 할머니는 곱게 차려입고 나가 외식을 했다. 지난번에 중국집을 갔다고, 이번엔 생일 기념 갈비탕을 먹으러 갔더니 문을 닫아 또 중국집에서 먹고 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엄마는 할머니의 생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늘 할머니가 없는 자리에선 할머니를 ‘노인네’라고 부르고, 챙길 여유 없다는 듯 야박하게 말해도 늘 뒤에서 묵묵히 할머니를 챙기는 건 엄마의 몫이었다. 본가에서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 다음 주엔 꼭 할머니 선물을 챙겨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극세사 파자마와 빵 한 봉지를 사들고 가는 게 좋겠다. 조만간 근사한 식당에서 엄마와 할머니와 같이 외식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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