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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긍정 Sep 15. 2021

그날 문방구에서 그 젊은 남자에게 뺨을 맞지 않았다면

긍정의 서재 <어린이라는 세계> 책 리뷰

 재택근무를 끝내고, 남자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중이었다. 퇴근 시간이라 도로에 차가  있었다. 대화를 하던   왼쪽에 앉은 남자 친구에게 고개를 돌려 얘기하는데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뭐지?’ 싶어서 그의 뒤쪽을 쳐다보았다. 우리  차선에 정차한 택시 안에 어린 여자애가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초등학생쯤 되었으려나. 그토록 해사한 웃음은 오랜만이라 나도 똑같이  웃어버렸다. 파란불로 바뀌고  택시가 앞으로 출발했다. 그러니까  여자애는 우리에게 방긋 웃어 보이면서 손을 양쪽으로 흔들었다. 마치 택시를 처음 타본 사람마냥, 택시밖에 지나가는 사람을 처음 보는 것처럼 신이나 손을 흔들었다. 나와 남자친구는 같이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를 해주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묻지 않은 순수함 덕분인지  또한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버렸다.  어린 소녀를 보니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릴 적, 주말이면 우리 가족이 살던 성남에서 할머니 댁이 있는 남양주로 놀러 가는 날이 많았다. 보통 엄마와 청량리로 가서 버스를 타고 가곤 했는데, 가끔 작은 이모와 이모부가 차를 태워줄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이면 오빠와 둘이서 신이나 차 뒷좌석에서 장난을 치며 지루한 도로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차가 막히면 장난기는 더 심해졌다. 옆 차선에서 차가 끼어들면 메가폰을 든 사람처럼 “아아- 차량번호 0000 옆으로 비키세요.” 하면서 장난을 치면 다 같이 한바탕 웃어 넘기곤했다.

  오빠와는 주로 인질극을 하며 놀았다. 어린 우리에겐 차가 방처럼 크게 느껴졌는데 오빠와 나란히 차 뒤에 창문 쪽으로 돌아앉아 놀았다. 우리는 지금 나쁜 사람들에게 잡혀 인질로 끌려가는 설정이라면서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표정을 짓고, 손짓으로 뒷 차 사람들에게 사인을 보내며 장난을 쳤다. 뒷차 사람들은 우리를 봤는지 아니면 브레이크 등에 눈부셔 못 봤는지 늘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나면 어느새 남양주에 도착해 있었다.


 그런 장난기는 학교를 다니던 평일에도 계속됐다.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나. 학교 등하교 길에는 ‘국화 문방구’라고 우리 동네에서 나름 크고 번듯한 문구점이 있었다. 학교를 갈 때면 동네 친구와 함께 늘 그 앞을 지나다녔다. 그 문방구에는 사장님처럼 보이는 아줌마와 그녀의 아들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일했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 젊은 남자에게 등하굣길마다 장난을 쳤다. 아마도 친해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겠지. 우리가 장난을 친 방식은 굉장히 유치했는데 유리문 밖에 붙어서 메롱을 하거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그 젊은 남자가 나오려는 제스처를 취하면 재빨리 도망가는 방법으로 장난을 쳤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굣길이었다. 늘 그랬듯 그 문방구 앞을 지나가면서 친구와 함께 장난을 쳤다. 우리는 또 잽싸게 도망가려고 뛰었는데 그 젊은 남자가 재빠르게 뛰어나오더니 우리 가방을 빠르게 낚아챘다. 당황한 우리를 그 남자는 문방구 안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하굣길이라 문방구에는 애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남자는 나를 한쪽에 몰아세우더니 큰 손으로 양쪽 뺨을 한 대씩 때리고 발로 엉덩이를 세게 차고는 나가라고 소리쳤다. 친구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맞았다는 사실에 제일 먼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 맞아보는 싸대기에 볼이 얼얼하다는 건 뒤늦게 알아차렸다. 친구도 맞았는지, 나만 본보기로 맞았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로지 빨리 집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당황스럽고 놀란 마음에 집으로 오는 길 엉엉 울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와 거울에 비춰보니 한쪽 볼이 더 세게 맞았는지 빨갛게 손바닥 자국대로 물들어 있었다. 다행히 한쪽은 멀쩡해 보였다. 놀란 나는 ‘이걸 엄마에게 들키면 얼마나 혼날까’하는 겁나는 마음에 비밀에 부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거울을 시간마다 비춰보며 시뻘게진 볼이 빨리 가라앉기를 바랐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나는 함부로 까불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어디서든 웬만하면 잘 나서지 않고, 말실수를 할까 봐 말을 아끼는 사람으로 자랐다. 얼마 전 읽은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작가 김소영은 어린이들에게 정중하게 대한다고 말했다. 정중하게 대하는 어린이는 어디 가서도 정중하게 타인을 대할 거라는 믿음에서 그렇게 한다고. 글쓰기 수업에 온 어린이의 옷을 받아주고, 나갈 때면 뒤에서 옷을 입혀주는 일을 즐긴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그런 태도가 놀라웠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P 41 <어린이라는 세계>


 책을 읽으면 장난기 많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만약 내가 그날 그 문방구에서 젊은 남자에게 뺨을 맞지 않았다면 어떻게 자랐을까. 그 젊은 남자가 나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요구했으면 어땠을까. 어린아이 었던 내가 그날 당한 폭력이 이상하다고 느꼈다면 어땠을까. 엄마가 가족이든, 낯선 타인이든 누군가 내 몸에 손을 대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면.

 수많은 만약으로 시작하는 물음들이 내 안에 쌓였다. 만약 그랬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 그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몇 년 전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한 블럭 아래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화 문방구’ 앞을 지나갔다. 그 젊었던 남자는 중년의 얼굴로 문방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린이라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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