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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긍정 Dec 31. 2021

이상하게 자꾸 알고 싶은 폴리아모리의 세계

긍정의 서재 책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지난해, 좋아하는 홍승은 작가님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접하고,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재빠르게 알아봤다. 제목은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폐쇄된 일대일의 관계가 아닌, 서로 상대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서로 합의 하에 만남을 시작하는 관계가 '폴리아모리'라는 것은 얼핏 들었던 팟캐스트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주제로 책 한 권을 써내다니! 빨리 읽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어쩐지 망설여졌다. 기존에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금기'를 깨버린 작가님의 당돌함이 궁금하다가도, 한 번 알아버리면 폴리아모리를 알지 못하던 이전으로 되돌아갈 순 없는 건 아닐까. '페미니즘'을 알기 전과 이후에 내가 달라졌듯 '폴리아모리'라는 것도 꼭 그렇게 돼 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웠던 것 같다.


처음 '폴리아모리' 관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건 전 남자 친구 때문이었다. 그는 나와 만나는 동안에 다른 여자와 관계를 새롭게 시작했고, 수개월 동안 그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이전 글에서 적었다시피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그와의 관계에 큰 환멸을 느꼈고, 그와의 만남을 정리하려고 했다. 이별한 동안 그를 미워하다가도 종종 이전에 관계를 그리워하곤 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인간이 동시에 두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중년 부부의 그토록 많은 불륜과 이혼 통계치를 살펴보면 인간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그쯤 '폴리아모리'라는 관계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와 헤어진 동안 그가 원했던 관계가 어떻게 보면 '폴리아모리' 관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만남을 이어가기 시작하면서 그에게 내가 그동안 정리한 생각을 전했다. 원하는 관계가 '폴리아모리'라면 서로 합의 하에 그렇게 시작하자고. 어떻게 보면 그게 합리적인 관계일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너가 나와 만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만나겠다면, 나도 똑같이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 외에 다른 여자를 만났으면서도,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나는 되고 너는 안 되는, 속칭 내로남불(내가 하는 건 로맨스, 남이하는 건 불륜)의 가치관인, 그냥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이후 그와의 만남은 몇 달 더 이어나갔지만, 관계의 끈은 낡고 헤진 단추처럼 툭 끊어져 나갔다. 그와 헤어진 뒤로 때때로 적적하기도 했지만, 홀로 지내면서 어떤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싶은지 여러 글을 읽으며 나만의 연애 가치관을 정립해 나갔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때는 그냥 음악 하는 남자가 멋있다는 환상에 빠져 별다른 고민 없이 음악을 한다 하면 호감을 느끼곤 했다. 그와 헤어진 뒤로는 남자 보는 눈이 조금 더 까다로워졌다. 기존에는 그 사람의 하는 일, 취향으로 간단히 평가했다면 점차 그 사람이 가진 가치관으로 기준점이 옮겨갔다.


그렇게 내가 정리한 나만의 남자 보는 기준은 이러했다.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나를 구속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사람,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규정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사람, 어떤 주제로든 막힘없이,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에 빠지고 싶다고 막연하게 꿈꾸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책은 '폴리아모리'라는 프레임을 바탕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세상에는 이렇게 관계를 맺는 사람들도 있대'하는 신기한 마음과 호기심에서 책장을 열었으니까. 책을 점차 읽으면서는 미디어에서 규정하는 정상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관계 이외에 삶을 용기 있게 선택하고, 창의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그 상상력에 감탄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 책장까지 덮고 나니 그저 작가 승은님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관을 존중할 줄 알고, 그 가치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연인들과 살아가는 하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읽혔다. 세상에는 다양한 외모의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모양의 사랑이 존재할 뿐이라는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달까.


처음 폴리아모리라는 단어를 알게 된 계기가 바람피우던 전 남자 친구를 이해해보려는 노력에서 출발했던 과거의 스스로가 안쓰럽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기존에 일대일 관계만이 정상이고, 다른 관계는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던 편협한 관계의 시각에 새로운 문을 열어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은유 작가님의 어느 문장처럼 우리는 쉽게 낯선 것은 비정상적인 것, 익숙한 것은 옳은 것이라는 오류에 빠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때때로 자신의 과도한 성적인 집착을 다양한 연인을 통해 해소하고 싶어 하는, 왜곡된 폴리아모리스트 때문에 폴리아모리가 일면 성적으로 방탕하고, 문란한 사람들이 맺는 관계라고 인식되는 것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가치관이 맞는 남자 친구를 만난 뒤, 우리는 함께 산행도 가고, 글도 쓰며 일상과 취미를 공유하면서 지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남자 친구에게 '폴리아모리' 관계에 대해 설명하자 만약 자신이 "새로운 사람과도 만나고 싶다고 하면 허락해줄 거야?"하고 물었다. 나는 "물론 질투도 나고, 당연히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내가 어떤 부분에서 너의 감정이나 욕구를 해소해줄 수 없다면 그게 맞는 방향인 것 같아"라고 애매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상대방의 진정 행복하길 바란다면 소유하지 않고, 존재로서 사랑하라는 책 속의 말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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