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북부에 집을 사게 된 이유
남자 친구 엽이와 점점 가까워지면서 주말이면 엽이네 집에서 자고 가는 날이 늘었다. 엽이네 집은 경기도 북부, 끝자락에 위치한 아파트였다.
엽이네 집을 드나들면서 이곳이 살만한 동네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생각하기까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가 자취하는 성남과 비교했을 때 입지는 성남이 좋았지만, 성남은 결코 살기 좋은 동네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길을 걸을 때면 인도를 주행하는 오토바이부터 시작해서 다가구 주택이 모여있는 골목 앞 주차난, 높은 오르막이 살기 좋지 않은 동네라는 인식을 주었다. 더군다나 살만한 집이라곤 오래된 빌라나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 혹은 좁은 원룸의 신축 오피스텔이 대부분이었다. 살면서 최악이라고 느낀 건 수돗물이었다. 배관이 노후한 탓에 물을 틀면 주황빛의 녹물이 나왔는데, 필터를 통해 정수해준다는 수도꼭지로 갈아 끼워도 필터가 갈색으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에 반해 이곳은 노후한 주택과 아파트, 소형 주택, 신축 아파트 단지가 골고루 자리했다.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이면서 공기는 꽤 맑았다. 주로 차를 타고 이동하긴 했지만, 성남처럼 오토바이가 도로 위를 주행하는 걸 보진 못했다. 남자 친구네도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임에도 관리가 잘 되었고 물은 깨끗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더 좋게 보았을 수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본가가 위치한 인근 남양주에 비교했을 때 도로와 동네가 쾌적하고 대형마트가 곳곳에 자리했다.
경매사이트에서 발견한 물건은 집 앞에 시장이 자리한 소형 아파트였다. 역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방 2개 화장실 1개에 옵션으로 세탁기, 가스레인지, 냉장고, 에어컨이 달린 집이었다. 큰길을 따라 걸으면 지하철역이 나왔고 깨끗한 내부,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일단 그 시기엔 괜찮다 싶은 물건은 하나씩 캡처해 남자 친구 엽이에게 보냈다. 성남 부근에는 경매로 물건이 잘 나오지 않기도 했고, 나왔다 하면 몇억씩 하는 비싼 값 때문에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에 반해 비교적 괜찮아 보이는 가격의 빌라나 소형 아파트, 대단지 아파트 등 괜찮은 물건들이 간혹 나와 마음을 들뜨게 했다.
현재 나와 있는 매물을 일일이 클릭해 권리관계를 분석했다. 붉은색으로 지분경매, 유치권이라고 적힌 어려운 물건은 일단 피하고, 쉬워 보이는 것만 골라 보았다. 날마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며칠이 지났고, 이제 과거에 비슷한 부동산은 어느 정도 가격에 낙찰되는지까지 보기 시작했다. 이곳은 감정가의 얼추 80% 대에서 낙찰되는 것 같았다. 그중 선호도가 높은 대단지 아파트는 100%를 넘기기도 했다. 모르는 건 경매 관련 책을 읽으면서 도움을 받아 더듬더듬 읽게 됐는데, 보통 감정을 1년에서 6개월 전에 감정을 하다 보니 그사이 시세가 급격히 오르면 100% 넘게도 낙찰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감정가는 부동산에 걸린 채무를 받기 위해 넉넉잡아 감정을 매기기 때문에 감정가는 해당 부동산의 시세가 아님을 알아둬야 했다.
나는 정말 경매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는 안됐는데, 남자 친구는 이 물건을 하나 받아보자 했다. 우선 돌아오는 주말에 남자 친구와 해당 부동산에 가보기로 약속하고, 만약 낙찰받을 경우 어느 정도 대출이 나올지 대출상담사에게 물어보라 했다. 그리곤 매수가를 알아보기 위해 부동산 주변의 위치한 공인중개소에 전화를 돌렸다. 한 번도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시세를 물어본 적이 없다 보니 꾸물대다가 점심시간이면 한 번씩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다. 온라인에 검색하면 6개월 전 거래된 금액은 확인할 수 있지만, 최근 시세는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걸 때마다 중개인은 대답을 얼버무렸다. 매물이 나온 게 거의 없어 가격을 몰라서 대답을 회피했다는 건 낙찰받은 뒤 알게 되었다.
남자 친구는 얼굴을 볼 때마다 “대출 얼마 나오는지 전화해 봤어?”하고 물었다. 나는 정말 공부만 하고자 내용을 공유한 건데, 대출까지 물어보고 나면 정말 받게 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부동산 투자를 통해 돈은 벌고 싶은데, 막상 행동하려니 겁부터 났다. 치밀하게 공부하고 알아보면서도 왠지 공부가 부족한 것 같았다. 엽이는 막상 하나 받아야 앞으로 더 공부할 수 있을 거라 했다. 지금은 받은 게 없으니 그저 남 얘기 같다고, 받아보면 내 일이 되고, 그러면 더 공부에 전념하게 될 거라며 조언했다.
나는 그 말에 힘을 얻었다. 엽이에게 경매 공부해서 하나 낙찰받아 이사 가고 싶다고, 말만 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 그저 칭얼거리는 것뿐이었다. 내가 행동해야 뭐라도 바뀌는데, 행동하지 않으면서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는 꼴이었다. 나는 숨고 싶었지만, 동시에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고 있었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더 주저할 수가 없었다. 타인은 나를 주체적인 여성으로 바라보길 바라면서 행동은 주저하는 게 앞뒤가 맞지 않았으니까. 그 후론 대출상담사의 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돈을 쓰지 않으면 더 이상 경매 공부를 지속하지 않을 것 같아 수업도 등록했다. 수업에 등록하자 선생님은 대출상담사 연락처를 정리한 파일을 공유해주셨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심호흡으로 가다듬고 제일 친절할 것 같은 이름을 하나 골라 통화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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