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할 때는 누구나 최악이 된다>
토요일 열두시 테니스가 게임이 끝났다. 뜨거운 햇빛 아래 두 시간 동안 야외 테니스장에서 게임을 했더니 머리가 띵하니 두통이 일었다. 서브에서 몇 번의 실수로 점수를 잃기도 하고, 몇 번은 공이 라켓에 어설프게 맞아 점수를 따내기도 했다. 더 잘 치고 싶었는데 아쉬움을 남기고 코트를 떠났다. 테니스 클럽의 코치겸 리더역할의 문님은 매번 점심을 먹고 갈 거냐고 물었는데 남자 친구 엽이와 나는 토요일마다 먼저 가보겠다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 우리에겐 오늘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토요일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손님이 오는 날이었다. 이제 매주 토요일마다 오전에는 8시부터 12시까지 테니스를 치고, 오후에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지난 몇 주는 김밥을 포장해 집에서 라면과 함께 때우곤 했는데, 요즘은 식사가 빨리 나오는 식당에서 빠르게 점심을 해치우고 집으로 향한다. 그러면 시계는 보통 한시를 가리켰다.
집에 도착하면 우리는 루틴대로 움직인다. 루틴은 대게 이렇게 흘러간다. 첫 번째. 축축하게 젖은 운동복을 벗고 샤워를 한다. 두 번째 빨래를 돌리고, 단백질 셰이크를 마신다. 세 번째 손수건을 머리에 두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악을 켜고 청소를 시작한다. 이게 두 달 사이 만들어진 우리의 에어비앤비 청소 루틴이다.
청소를 시작하면 대게 남자 친구 엽이는 화장실과 침실, 거실을 맡고 나는 부엌을 맡아 청소했다. 처음 몇 주간은 청소할 때마다 싸우곤 했는데, 아무래도 테니스를 오래 쳐 피곤한 데다 손님이 오는 4시 전에 청소를 끝마쳐야 하다 보니 서로 예민해지곤 했다. 게다가 깨끗하게 샤워한 뒤에도 너무 습하고 더워 청소하는 중에 땀이 삐질삐질 났다. 목표는 세시 반. 30분마다 ‘댕~댕~’ 울리는 괘종시계는 늦었다며 나를 재촉하는 것 같았다.
청소하며 피곤한 데다 예민해진 우리는 서로를 종종 날카로운 말로 서로를 베었다. 엽이는 가끔 “네가 너무 느려서 내가 청소 다 하는 거 같아.”라며 나를 찔렀고 그러면 나는 “부엌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알기나 해?”하며 받아쳤다. 지난번엔 너무 느리다고 해서 빨리하려고 급하게 “부엌 청소 끝!”하고 외쳤는데 갑자기 매니저처럼 오더니 “냉장고는 왜 다 안 비웠어? 쓰레기통도 아직 안 비웠잖아.”라면서 나무랐다. 갑자기 직장 상사 같은 엽이의 발언에 나는 “그건 나중에 하려고 했어. 빨리하래서 빨리 했더니 왜 그런 식으로 말해?”하면서 나도 소리를 빽 질렀다.
같이 협심해 행복하자고 시작했던 에어비앤비였는데 청소를 끝내면 둘 다 기분이 엉망이 되곤 했다. 서로 뾰로통한 표정으로 건조하게 “나는 엄마 집으로 갈게”하고 말하면 엽이는 “그래”하고 대답하곤 가방을 챙겨 집으로 홱 돌아 들어갔다. 그러고 나면 머리가 띵하고, 체했는지 속이 더부룩했다. 오후 다섯 시 무렵인데도 기운이 없어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작년 이맘때쯤, 에어비앤비를 업으로 삼은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집에 가면 늘 오후 3시 무렵부터 힘들다며 침대에 누워 골골대는 모습을 보았는데, 오빠가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토요일을 보내고 나면 일요일이 찾아왔다. 일요일 오전에도 어김없이 테니스를 가는데 전날 싸웠던 우리는 아무 일도 없는 듯 공을 치고 게임을 했다. 그리고 오전 11시면 손님이 나갔다는 알림이 울렸다. 오전 내 땀을 흠뻑 흘리고, 클럽 사람들과 함께 점심 먹고 커피까지 마신 뒤 집으로 돌아가면 3시 무렵이었다.
떨어져 시간을 보내는 동안 문제가 무얼까 고민한 나는 우리에게 일할 때 기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남자 친구 엽이에게 우리 에어비앤비의 미션과 비전을 적어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엽이가 사 온 작은 화이트보드에 하나씩 합의한 내용을 손글씨로 적어내려 갔다. 글로벌 기업의 미션과 비전을 검색해보고는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을 하나씩 말했다. 내가 “우리는 한 팀이야. 손님과 너와 나.”하고 말하면 그는 “속이지 않는 게 중요해. 그것도 적어놓자.”하고 말했다. 그렇게 합의를 하고 나니 싸우는 일도 줄어들었다. 청소하기 전 루틴이 하나 추가됐다면 적어놓은 미션을 한 번씩 외치고 시작했다. “우리는 한 팀이다!”, “서로를 믿는다!”, “비용을 절약한다!” 대게 이런 식이었다.
체크아웃 시간이 지나 집에 도착하면 엘리베이터부터 두근거렸다. ‘집이 깨끗하려나?’, ‘아직 계시진 않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먼저 지난밤 별일이 없었는지 확인했다. 두고 간 물건은 없는지, 잠가둔 방문은 열어보진 않았는지, 손글씨로 쓰는 방명록은 쓰고 갔는지 살펴보면서 손님의 흔적을 살펴보았다. 지난번 손님은 남자 친구가 군인인데 외박을 나와 오게 되었다며 첫 방명록을 손글씨로 꼼꼼히 적어주었다. 남자 친구가 핫한 곳에 가고 싶다 하여 이곳을 예약했다며, 외박 나올 때마다 이곳에 또 올 거라며 공간이 좋았던 점을 다섯 가지나 적어주었다. 손님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회사 일할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뿌듯함에 몇 번이나 후기를 읽고 또 읽어보았다. 우리는 하이파이브도 하고 눈으로 한번 읽고 소리 내어 한번 더 읽으면서 손님이 적은 좋았던 점을 나열했다. 토요일엔 서로 잘해보겠다며 다투었는데, 일요일엔 손님이 적은 코멘트 한 줄 한 줄에 사르르 녹아버렸다. 월요일엔 에어비앤비에서 입금 문자가 울렸다. 그러고 나면 청소하면서 힘들었던 마음이 싹 씻겨 내려갔고, 다시 손님을 받을 기운이 솟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