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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Aug 02. 2023

평범한 직장인이 세 권의 책을 쓰기까지

반짝이는 삶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방법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건 2019년 2월쯤이다. 작가 승인이 난 날 기뻤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모든 게 잘 풀릴 것 같았다. 그런데 글쓰기의 세계는 그렇게 호락하지 않았다. 작가 승인 이후 글을 발행해도 아무도 내 브런치에 찾아와 주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만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일기가 아닌 이상 반응이 너무 없으면 지속할 동력을 잃게 된다. 당시 가뭄의 단비처럼 달리는 좋아요 몇 개와 응원의 댓글들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내 브런치에 발길이 생기기 시작한 건 첫 글을 쓰고 1년 뒤였다. 17번째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독자를 찾아 직접 나서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1년쯤 됐을 때 안 되겠다 싶었다. 아무도 안 찾아오니 직접 독자를 찾기로 했다. 포기하기 전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탐색해 보니 페이스북에 활성화된 국내 디자인 커뮤니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페이스북에 가입했다. 그중 가장 구독자가 많은 디자인 커뮤니티 세 곳에 가입했고, 글을 직접 공유하기 시작했다. 2020년 1월, ‘모바일 UX/GUI 디자인’이라는 커뮤니티에 올린 글들에서 거짓말처럼 공유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노란색으로 통일한 브런치 썸네일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커뮤니티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공유


당시 브런치 글에는 '공유'아이콘 옆에 숫자가 찍혔다. 지금은 공유수가 나오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글의 인기도를 알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지표였다. 1년 동안 올린 모든 글의 공유수보다 커뮤니티에 올린 글 몇 개로 생긴 공유수가 훨씬 많았다. 사람들이 내 브런치를 찾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준다는 사실에 힘이 나기 시작했다. 당시 커리어 플랫폼 ‘서핏‘도 등장해 디자이너들의 글을 피쳐드 하기 시작했다. 나도 큰 수혜를 입었다.

     브런치에만 글을 올리는 것으로는 큰 트래픽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쓰는 사람만 있고 읽는 사람은 없는 브런치 특). 특히 디자인이나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같은 전문분야 글쓰기는 에세이가 주류인 브런치에서 관심 밖이다. 물론 브런치가 구글 검색에 잘 잡히긴 하지만, 글 주제와 관련 있는 외부 트래픽을 꾸준히 끌고 올 수 있는 구조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얼마 안 가 아래 글 세 개가 커뮤니티에서 많은 공유를 기록하며 내 브런치는 여러 매체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뉴모피즘은 새로운 UI 트렌드가 될 수 있을까?'가 발행됐을 때는 큰 관심을 받았다. 지금도 저 글은 국내 뉴모피즘 트렌드를 이끈 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많은 공유수를 기록한 대표적인 글 세 가지


제일 어려웠던 글감 찾기

글을 꾸준히 쓰는데 가장 어려운 건 역시나 글감 찾기다. 가장 먼저 버려야 하는 건 엄청난 걸 쓰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이런 압박감은 글 쓰는 재미를 반감시킨다. 당시 나는 주중에 회사나 일상에서 얻은 배움이나 영감을 브런치 저장글에 단문으로 모아놓고, 주말에 글 한 편을 무조건 완성시켰다. 주중에 모은 단문들은 백지의 공포를 없애줬다. 사소한 생각도 도움이 됐다. 중요한 것은 남의 말이 아닌 내가 직접 한 생각이었다. 이러한 습관은 생각 근력을 만들어 주었고 덕분에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다.


2년이 걸린 첫 번째 책

뉴모피즘 글을 발행하고 얼마 안 가 IT 전문 출판사 루비페이퍼에서 출간 제안이 왔다. 사실 루비페이퍼 전에도 몇 번의 제안이 왔지만 대부분 내 글을 정말 읽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성의가 없었다. 그런데 루비페이퍼의 편집자님은 정말 내 글들을 읽고 관심을 가진 느낌이 들었다. 책 계약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감사한 마음에 덜컥 사인을 해버렸다. 이 사인이 어느 정도의 무게인지 당시로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많은 감정이 들었던 출간 제안


책을 쓴다는 건 브런치를 쓰는 것과는 무척 달랐다. 브런치 글들이 재료가 되긴 했지만, 책을 위한 글감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출판사에 글을 보내면 돌아오는 원고는 늘 빨간 줄 투성이었다. 어떨 때는 한 페이지에 살아남은 문장이 두세 개일 때도 있었다. 상업적인 글의 수준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퇴근 후 매일 울다시피 글을 썼다. 혹독한 시간이었다. 출간은 원래 예상했던 1년을 훌쩍 넘겼다. 퇴고를 무한 반복하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겨우 첫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눈물 났던 편집자님의 마지막 메일


역설적으로 첫 책 '사용자를 사로잡는 UX/UI 실전 가이드'를 쓴 2년은 글쓰기 실력이 가장 많이 향상된 기간이기도 하다. 마감일자를 맞추기 위해 매일 기계적으로 글을 썼고, 편집자에게 피드백을 받았다. 자동으로 글쓰기 트레이닝이 된 셈이다. 글쓰기 실력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쫓기듯 한 권의 책을 써보는 게 아닐까?

    그런데 월급 외 수입으로 출간을 생각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반대다. 적게는 1년, 많게는 수년이 걸리는 책을 만드는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수익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이다. 울며불며 썼던 애증의 첫 책은 금전적 보상대신 성장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열어주었다.


소중한 기회들을 만들어준 첫 번째 책


조금 특별했던 두 번째 책

두 번째 책인 'GEN Z 인문학'은 내 브런치 글 중 인기 없는 주제인 '디자인 윤리' 덕분에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당시 디지털 프로덕트를 만들며 영어권 국가에 비해 디자인 윤리라는 중요한 디자인 어젠다에 한국만 소외된 느낌이 들었다. 지금이야 다크패턴이나 당겨서 새로고침 UI가 주는 중독성 같은 개념들이 익숙하지만 당시만 해도 유통되는 국내 정보가 거의 없었다. 오기 같은 것이 생겨 해외 디자인 윤리 아티클들을 번역해 다양한 채널에 공유했고, 브런치에 관련 주제를 직접 쓰기 시작했다. 디자인 윤리라는 주제를 통해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고 지금도 신세를 지고 있다.


떨림이 느껴졌던 편집자님의 메일


사실 첫 책 이후 이곳저곳에서 출간 제안이 왔었다. 그런데 2년간 보낸 고된 시간 때문인지 두려움이 크게 앞섰다. 다시 터널로 들어가는 게 두려웠다. 더불어 첫 책이 디자인 실무와 관련된 것이라 중복되는 출간 제안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서사원 출판사의 한 편집자님께 장문의 메일이 왔다. 디자인 윤리에 진심이 느껴졌고, 만나보고 싶다는 끌림이 강하게 들었다. 얼마 안 가 편집자님과 한 카페에서 만나 두 시간 넘게 해당 주제에 대해 뜨겁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편집자님은 열정뿐 아니라 해당 주제에 대한 지식도 무척 해박했다. 중간에 저런 농담을 던진 기억이 난다.

이 정도면 편집자님이 직접 쓰시는 것이..

편집자님은 성인이 아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이 주제에 관한 책을 내보자고 했다. 세상에 꼭 필요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 번째 책은 일 년 정도가 걸렸다. 지인에 지인을 통해 인터뷰한 젠지들이 아직도 생생하다(그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생명체다). 요령이 생긴 건지 두 번째 책은 첫 책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GEN Z 인문학을 내며 사실 책이라는 게 유능한 편집자의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편집자는 작가만큼이나 빛나야 한다.


브런치북, 세 번째 책

세 번째 책은 브런치북을 통해 낼 수 있었다. 다른 말 보다 감사한 마음뿐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첫 순간부터 현재를 회고하며 많은 감정이 들었다. 체감상 4년 전에 비해 전문분야 글쓰기 시장은 크게 변화가 없다. 업계 동료, 후배님들이 빛나는 글을 쓰고 있지만, 관심을 받지 못해 지속력을 잃고 포기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런 마음이 든다면 완전히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니, 떠났다가 무언가 쓰고 싶을 때 다시 돌아와도 상관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 분야의 성숙도는 그 분야를 표현하는 글쓰기의 다양성에 비례한다고 믿는다.

    글은 빠르고 정확하게 한 사람의 사상을 나타낸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도 특별함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무언가 빼곡히 적혀있다면 당장 오늘이 기회일지 모른다.



'평범한 직장인이 세 권의 책을 쓰기까지' (끝)


[우디가 낸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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