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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Aug 26. 2023

메타피지카

형이상학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경영 혹은 사업 관련 책을 여러 권 뒤지고 읽다 보니 국내 시장은 거칠게 말하면 학자의 책과 장사꾼의 책으로 나뉘더군요. 학자의 책은 원없이 읽었습니다. 관심가는 주제는 탑 저널에 실린 논문도 찾아 더듬더듬 읽었습니다. 어쨌든 학문은 개별 경험에 대한 사후적인 종합과 해석(의 체계)입니다. 대개 '노하우에 대한(about know-how)' 이야기지요. 경영학자는 장사해서 돈 번 경험이 없고 직원을 고용해 매달 무섭게 돌아오는 월급을 챙겨본 적도 없습니다. 


반작용인지 요즘 너튜브나 경영 시장의 책들은 장사로 성공한 이들의 '개별 성공 사례(know-how)'가 판을 칩니다. 각종 신(장사의 신 등)들이 장악했습니다. 자극적인 표제어(썸네일; 몇 년 안에 수십억 버는 비결 등)가 등장합니다. 자신의 경험 혹은 운을 일반화하고 성공을 토대로 멘토와 강연을 자처합니다. 위험해 보입니다. 다행히 사업가나 기업가의 책도 보이지만 턱없이 부족합니다. 어떤 분야든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조금 더 대접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철학이나 과학에 빗대면 이렇습니다. 형이상학자는 세계를 종합적으로 설명합니다. 세계의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 가능하면 전부를 포괄할 수 있는 일반적이고 종합적인 개념을 사용합니다. 형이상학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래서 다의적이고 중의적입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이유이지요. 개별 과학자들은 세계의 어떤 측면을 자기 전공에 맞추어 개별화하고 축소시키고 정교화를 시도합니다. 


형이상학자들은 생명이나 우주에 대한 이해에다 역사•인간•의미•가치 등을 통합해서 종합하려 하지만, 개별 과학자들(특히 물리학자들)은 다른 측면을 모두 빼고 각 전공의 관심사에 맞는 부분만 문제 삼고 부분만을 위한 적확한 개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개별 과학자들은 자기 분야에 대해서 정교하지만 부분적입니다. 반면 형이상학자들은 종합적이지만 특정 부분에서 개별 과학자들보다 대체로 피상적이고 허술합니다. 


따라서 형이상학(철학이나 신학 등)과 개별 과학(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등)은 서로의 역할과 성격을 이해하고 서로에게서 배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형이상학이 개별 과학의 발전과 성과를 공부하지 않고 귀를 막으면 그게 바로 사이비입니다. 개별 과학이 정교함을 추구하는 대신 다른 영역에 함부로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일방적으로 투사해 형이상학 노릇(물리주의; physicalism)을 할 때 역시 사이비가 됩니다. 그 지점에서 둘 모두 무섭고 위험해집니다. 


형이상학은 인문•사회•자연과학(특히 수학•생물학)의 발전과 성과에 귀를 기울이고 참고하고 반영해야 합니다. 개별 과학은 자신의 연구 범위와 성격에 대한 인식론적 성찰이 있어야 하고, 어설프게 철학연하거나 가제트 만능팔처럼 굴면 곤란합니다. 형이상학은 top에서 down으로 'down'하면서 계속 'top'의 궤도를 수정하고, 과학은 down에서 top으로 'top'하면서 'top'의 요건을 부지런히 채우고 살피는 일이 필요하겠지요. 


매체는 메시지를 담는 그릇입니다. 어떤 분야의 책도 매(개)체입니다. 읽기는 매체에 담긴 메시지를 읽는거지요. 그래서 책이 전부이거나 유일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를 읽고•TV(드라마나 예능 등)를 읽고•음악을 읽고•춤(몸)을 읽고•사진을 읽고•그림을 읽고•음식을 읽고 경험을 읽고•사람을 읽고•자연을 읽어도 됩니다. 결국 다양한 매체에 대한 비평 능력을 기르는 게 중요합니다. 책 마저도 적극적으로 가려 읽는 훈련(혹은 지도받기와 도움)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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