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외물을 따라 일어나는 심리 작용
촉(觸)은 불교 용어입니다. 인간의 정신과 인식 작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쓰는 말(단어)입니다. 촉은 좋다, 나쁘다,라고 합니다. 감,은 좀 약하고 직관,은 좀 딱딱합니다. 촉은 무언가를 간파하다, 꿰뚫어보다는 의미로 확장합니다. 보통 촉이 좋다,고 할 때는 어떤 상황에서 발휘되는 동물적인 감각처럼 씁니다만, 촉은 더 깊고 단단한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오랜 세월 지적인 수련으로 머리를 통과하고 넉넉한 경험이라는 몸의 통증을 거쳐야 발휘되는 마음(心)의 역량입니다.
나이가 들면 대체로 다 나쁘지만 특히 나쁜 것은 촉이 생긴다는 겁니다. 사람을 볼 때, 글을 볼 때, 어떤 사태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지적 자살을 하거나 스스로를 속이거나 모른 척 하지 않는다면 촉은 틀림없습니다. 특히 세월을 견디며 쌓은 관계나 조직, 게다가 한발짝 물러나 지켜볼 기회를 가졌다면 더더욱 그럴테지요. 저는 없는 것에서 있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 부럽습니다. 글을 짓거나 음악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추거나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제게는 그런 재주가 없습니다. 그래서 촉이 생기나 봅니다. 부러워하고 우러르는 마음이 낳은 결과일까요. 하고 싶은 말을 매체에 담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글과 사진, 그림과 음악, 디자인과 건축, 그리고 영화, 제가 읽은 책의 목록은 이야기를 담은 그릇(매체)에 대한 관심따라 확장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발레를 곁눈질합니다.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에 전율한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서야 말이지요. 아직은 그야말로 힐끗힐끗입니다.
촉이 오는 사람과 그가 남기고 있는 흔적, 그게 글이든, 사업이든, 장사든, 작업이든, 여럿이 힘을 합쳐, 구체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어, 격려와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자기 한계를 훌쩍 넘도록,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그 진가와 진면목을 알 수 있도록 말이지요. 돕는 게 아니라 힘을 합치고 싶습니다. 서로 배우고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천하가 아니라 강호가 변화와 창조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짜릿하게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시장에서 교환되지 못한 노동, 대가없이 이바지로 주어진 노동, 충분히 이해받거나 감사받지 못한 노동, 기존 교과서에 등재되지 못한 노동, 작은 기미와 희미한 보살핌으로만 드러난 노동,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조차 몰랐던 노동, 그리고 어떤 미래에 다가올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만 그 가치와 의미가 수용될 노동(김영민)"이, 그 사람이 원한다면, 그 사람이 원하는 만큼 제 값어치를 받도록 갖은 애를 쓰고 재주를 부리고 힘써 볼 참입니다.
그나저나 촉은 지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