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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Aug 26. 2023

지강유철,이라는 작가

<장기려 평전>(지강유철, 꽃자리, 2023)

도사님, 날이 덥습니다. 그 사이도 무탈하시지요? 계곡이나 바다에 발 담글 여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무더운 여름도 이내 스러지고 쓸쓸하지만 그윽한 가을이 곧 오겠지요? 8월 첫날 달력을 뒤적이니 8/8(화)이 입추더군요. 세월이 정말이지 화살 같습니다. 더운데 건강 챙기셔요. 


<장기려, 그사람>(지강유철, 홍성사, 2007)


오늘 새벽에 2007년에 출간한 <장기려, 그사람> 프롤로그를 다시 읽었습니다. 아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그때 이 책을 읽은 저와 마주 앉았습니다. 그때는 책에 줄도 긋고 글도 쓰던 시절이었습니다. 민망하게 책에 이름도 큼지막하게 보란듯이 써 넣었던 부끄러운 시절이었습니다. 2007년 이후도 이사하면서 그 시절 읽은 수많은 책을 정리했습니다. 2009년 대구에서 서울 갈때는 거의 모든 책을 정리했다고 봐야겠지요. 그 와중에도 <장기려, 그사람>은 살아남았네요. 책을 들추니 <장기려, 그사람> 초판 펴낸날이 2007. 2. 20이고 제가 프롤로그를 읽은 날은 2007. 3. 5. 월. 아침 7:05분이라 씌였습니다. 출간 소식을 듣고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읽은 게 분명합니다. 



오늘 새벽에, 지금의 제가, 2007년에 이 책을 읽은 저,를 우두커니 지켜 봅니다. 묘한 생각이 일렁입니다. 책 시작하자마자 놓인 짧은 머리말이 무척 좋았습니다. 평전과 전기 사이 어정쩡하다는 말이 특히 좋았습니다. 저는 감사의 말을 거쳐 프롤로그로 곧장 달렸나 봅니다. 단숨에 읽었고 여러 번 읽은 게 분명해 보입니다. 그 시절도 다음 걸음을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데 이런 저런 고민이 많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다시 보니 그 때 만난 장기려는 제게 하나의 이정표가 된 듯합니다. 프롤로그에 펜으로 긋고 출친 부분이 가득입니다. 곳곳에 제 생각이나 결심도 적었습니다. 


“과오나 실수에 대한 인정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켜 내야 할 선생의 가치였기 때문이다.”(34쪽)_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내가 잘못했다’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자‘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 외과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선생이 ’전문‘이라는 단어를 대단히 싫어했다는 점이다.”(38쪽)_’학벌 경계, 학위를 따는 게 아니라 분명한 경험과 탄탄한 실력을 쌓자’


책 이곳 저곳에 책 읽고 느낀, 부끄럽지만 크고 작은 결심들을 적어 두었습니다. 그 시절은, 변할려고 달라지려고 책을 읽던 시절이었습니다. 책을 대할 때 자세나 마음 가짐이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 변치 않았지만 요즘은 습관처럼 읽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때도 어렴풋이 그 생각을 했는데, 오늘 다시 읽으니 이후 제가 사건을 겪으며 내린 몇 가지 선택에 이 프롤로그의 내용과 메모가 고스란히 겹칩니다. 다행이고 고마운 일입니다. 



도사님, 오늘 아침 <장기려, 그사람>의 프롤로그를 다시 살피며 든 생각은 이렇습니다. 저의 무의식에 이 프롤로그가 제 인생 어느 시절을 단단히 붙들었나 봅니다. 이정표라고 하지요. 글이 좋아서, 내용이 좋아서, 몇 번이고 두고 두고 읽은 듯합니다. 아마 캠퍼스 간사로 마지막 시기와 대표 간사를 시작한 해라 더 그랬을 겁니다. 


그러면서 연이어 든 생각은, 어쩌면 저는 장기려가 아니라 장기려에 대해 쓴 글을  통해 도사님을 새롭게 읽고 만난 듯 합니다. 도사님이 장기려 평전을 쓰고 장기려의 인생에 대해 정리한 몇 가지 특징, 소제목은 고스란히 도사님의 시선이자 안목입니다. 


•이면과 표면의 경계를 허문 사람

•사람을 사람으로 대했던 사람

•아마추어리즘을 고집했던 의학도

•평생 간직한 교회 개혁의 열망

•이념에 얾매이지 않았던 사람

•비기독교인을 위한 삶


경험과 실력을 갖춘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말을 그때부터 참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제목 하나 하나가 제 가슴 깊이 꽂힌 게 분명해 보입니다. 15년 이상 지난 짧지 않은 세월이 그 사이에 놓여 있으니까 더 분명해지네요. 한 사람의 삶을 훓고 따진 이후 그의 삶을 몇 마디로 요약하기란 쉽지 않지요. 실은 그렇게 요약할만한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 허다하니까요. 그 시절 평전을 많이도 읽기 시작했습니다만, <장기려, 그사람>만한 평전이 없었나 봅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프롤로그에 담긴 글의 형식도 한 몫했지 싶어요. 


도사님, 고맙습니다. 제 인생에 격랑이 치던 시절, 얼빠진 선택이나 결정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었네요.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결과물이라고들 하지요. 거창할 것 없는 제 인생이지만, 선택의 기로마다 장기려와 도사님의 이 글이 저를 지켰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맘편히 흐뭇할 수 있는 아침입니다. 며칠 전 비슷한 일을 겪은 후배와 차를 몰던 중에 짧게 통화를 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저보다 더 어른스럽게 그 사건을 겪었고 씩씩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저의 안녕을 물었고 언젠가 만날 날을 손꼽으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2023년 7월 15일, 긴 시간이 흐르고 새로 나타난 <장기려 평전>을 새벽마다 다시 또박또박 읽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아니까 순서대로 읽지 않고 목차를 보며 흥미로운 시기부터 앞뒤를 왔다갔다 읽습니다. 마치 영화를 편집하듯 말이지요. 돈 주고 살 수 있지만 꼭 선물해주십사 보채었지요. 그냥 도사님께 선물 받고 싶었습니다. 뒷장에 잉크가 배어 나올 정도로 도사님이 꾹꾹 눌러 쓴 ’간사‘라는 말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친애하는‘이라는 말이 민망스럽긴하지만요. 도사님, 고맙습니다. 장기려를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해주어 고맙고 다시금 그 시절의 제 결심을 되새길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얼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우정, 감히 나이를 잊은 우정이라고 부르고픈 우리 사이가 무탈하기를, 쓰신 글처럼 더 낫기를 두 손 모읍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날이 대단합니다. 책에 집중하기 쉽지 않은 날씨에요. 8월도 그렇고 올해 하반기 대구에서 자주 뵐 일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또 조만간 뵐께요. 건강 잘 챙기셔요.


2023. 8. 첫날.


기성 드림.


덧) 

제 마음의 준비와 필요한 조건이 맞아 떨어지는 어느 멀지 않은 미래, 도사님을 꼭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도사님도 마음의 준비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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