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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Aug 26. 2023

허윤진,이라는 평론가

<5시 57분>(허윤진, 문학과지성사, 2007)

허윤진(의 요즘)이 궁금하다. 인터넷 검색하면 어딘가에 이렇게 뜬다. “《문학과사회》 2014년 여름호를 끝으로 평론 활동을 중단했다.” 허윤진이 펜을 꺾은(?) 이유 혹은 문단을 떠난(?) 이유가 아직도 궁금하다. 서강대에서 이청준으로 박사 논문을 쓰다 말았다는 이야기를 지인에게서 들은 게 마지막이다. 



허윤진 글을 처음 읽은 곳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해설이었지 싶다. 한강은 연작 소설 <채식주의자가>를 2007년 10월에 출간했고, 허윤진은 비평집 <5시 57분>을 2007년 8월에 펴냈다. 해설을 출판사가 제안한 것인지 저자가 요청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시기가 무언가를 가르킨다. 허윤진 해설에 꽂혔었다. 


"언어로 가득찬 자궁이 있는 남성들"


어느 시기 나를 ‘구원’한 말이자 문장이다. 허윤진의 비평집을 읽고, 이 문장에서 나를 찾고, 이 문장의 뜻이 내게 다가오기까지, 꽤 시간이 흘렀다. 유사 이례, 역사를 공부할수록 남성성 혹은 가부장제가 저지른 폭력과 폭력적인 체제의 기원과 사건이 가리키는 곳은 한결 같았다. 반복적인 경험과도 일치하고.



안타까움을 반복하던 시기, 한줄기 희망과 위로를 던져준 말. 노력하면•배우면•성찰하면•힘을 합치면•귀 기울이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기대, “언어로 가득찬 자궁을 가진 남성들”이 있다는 사실과 그런 남성이 되고 싶다는 기대와 그런 남성이 될 수 있다는, 어느 시절을 안도할 수 있었던 한마디 였다


"비평은 상호주관성에 대한 인식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김우창과 김현의 비평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는 것은 그들의 비평이 이룬 성취를 떠나서, 인간의 상호주관성과 윤리성에 대한 고민이 그들의 비평  텍스트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 타인과 불화하고 공존할 것인가에 대해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비평의 기본 조건이리라. 그들의 비평 텍스트는 나와 타인을 결부하고 장르와 장르를 결부하는 인식론적 네트워크다. 김우창이 개인-사회의 상호 구성과 장르 간의 인식론적 차이를 고민함으로써 비평의 윤리성을 고양했다면 김현은 개인의 심리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소통과 공감의 문제를 문체론적으로 구현함으로써 윤리 비평의 미학성을 현현하였다. 현재의 비평은 '비평의 시대'의 비평에 비해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가?(...)"('춤추는 우울증' 각주 11번 중에서, 「5시 57분」, 문학과 지성사, 2007년, 147쪽)


허윤진,의 일갈은 당당하고 자신만만하다.



허윤진이 남긴 비평집 하나만 덩그렇다.


덧)

혹시 허윤진 선생의 근황을 아시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셔요. 부산 동아대에서 강사로 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부산 동아대학교 홈페이지에서는 검색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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