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사랑방
복지관선배님들 4분과 나눈 수다 4편 중 하나
합창반 수업이 끝났다. 부족하고 허름한 실력이었지만 열정과 사랑의 나눔으로 카톡방에서의 뒤풀이 이야기를 내 나름으로 적어본다.
첫 번째로 맏언니인 철구언니되시겠다. 철구언니는 8학년 6반이시다.
딸만 줄줄이 있는 집이어서 아들을 낳으려고 내 이름은 영희, 순자, 미숙이가 아닌 남자이름인 김철구다. 당시 할아버지께서는 서당 선생님이셨다. 마루에 엎드린 한문책과 곰방대가 눈에 선하다. 나도 배우고 싶어 기웃댔지만 여자가 배우면 건방지다고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고 하신다. 또 시집가서 편지질하느라 시집살이를 소홀할까 봐 글자는 마당 끝 정지간 나뭇가지로 써봤다고 하신다. 동네에 야학이 들어왔다고 해 한밤중에 구경을 갔지, 그리고는 학교 보내 달라고 떼를 쓰고 울고 해서 겨우 학교에 다녔고 충남 예산에 장 서는 날 마당극을 구경했지, 그러다가 극장배우가 되면 하고 날도망을 했어, 한창때는 무섭거나 두려움이 없잖아? 처음엔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 그리고 바느질까지 그러다가 노래를 하게 되어 막 뒤에서 매일 연습을 했어, 주목받는 역할은 해본 적 없지만 노래하는 것이 좋았어 특히 그때는 미국민요, 고전극소품노래를 주로 배워 따라 불렀어, 가보지도 못한 미국이었지만 거기 가사에 나오는 이름들은 타미, 애니로리, 앨리스 같은 것이 부드러운 것 하고는 전혀 다른 철구인 내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6.25 전쟁을 겪음)
당시 야학구경을 안 갔으면 어쩔 뻔했냐고 하며 복지관에 다니며 이렇게 합창으로 만난 인연에 눈물 나게 고맙다고, 결혼을 안 해서 자식은 없지만 대신 시간이 많아 배움을 봉사로 이어가니 어찌 기쁘지 않겠냐고 하신다.
나는 먹먹했다. 창가에 어슷히 보이는 이팝나무가 당당한 철구언니 머리와 겹쳐 보였다.